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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May 09. 2023

이역만리의 금쪽상담소

한국인 현자와의 만남

마을 가운데에 있어 관광객보다는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단골들이 많은 한 카페에 들렀다. 인도네시아 원두로 내려주신 커피맛에 감탄하던 중, 남매 사장님 두 분이 갑자기 나란히 서셨다. 누나가 한편에 놓여있던 색소폰을 들어올렸고, 남동생은 목을 가다듬더니 이내 차분히 노래하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울려 퍼지는 '넬라판타지아' 앞에서 어안이 벙벙하기도 잠시, 생전 처음 노래를 듣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악기와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미세한 떨림들이 진지함과 정성으로 가득해서,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엄두도 나질 않았다.

대략 이런 분위기. 출처 : 구글맵 리뷰(@Sahar mohamed)

노래가 끝난 후에도 감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국말이 들려왔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10년째 이곳에서 '수련' 중이시라는 한국인 여성분이었다.




알고보니 이곳은 그냥 카페가 아니라 기 치료, 명상, 수련을 겸하는 클리닉이었다. 발생한 질병을 조치하는 서구 의학이 아닌, 증상의 원인을 찾아 스스로 치유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동양의학에 기반한다고 한다.


조금 전 감동을 준 인도네시아인 남매는 원래 로봇공학자였지만 자국과 태국 전통의학을 다시 전공하신, 독특이력의 아버지와 함께 이곳을 운영 중이었다.  그러고보니 모두의 포스가 범상치 않았다.


마침 수업을 마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서로 즐겁게 인사를 나눴고 한국인 여성분은 능숙한 영어로 이들을 배웅했다.




환경공학 박사까지 수료했던 그녀는 우연히 치앙마이 여행을 하고 나서 '여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부모님 모두 힘겨운 암 투병끝에 떠나시는 걸 지켜보며 삶의 노선을 바꾸셨다고 한다. 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불편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삶으로. 온/오프라인 강의와 본인 수련을 병행해야 하기에 이곳과 한국을 자주 오가시는 듯했다. "'힐러'네요?"라는 물음에 "그보다 스스로 치유하게 돕고 싶은 거죠."라고 하셨다.



대화 주제가 전방위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왜 사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갈팡질팡한다'털어놓게 되었다. 듣고 나시더니 대뜸 굳이 행복을 찾으려 하지 말라 하셨다. 행복은 상대적이라 정의하는 순간 외의 것들이 다 불행 축에 속할 수 있기 때문.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정하고 나면 돈이 얼마나 있든, 결혼을 했든 말든, 자녀를 낳든 낳지 않든 다 순간적인 조건에 불과해져요..
그 방향을 정하는 능력을 '인간성', 'spiritual power'라 생각하는데, 타고난 공격성이나 방어본능과는 달리 의식해서 갈고닦지 않으면 무뎌지고요..



맞는 말이었다. 관성으로 살다보면 방향을 찾을 생각조차 않게 된다. 그저 생존하고 또 생존하고자 '필요할 것 같은' 조건을 축적하는데만 혈안이 되는데, 정작 왜 생존하는지는 궁금해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원동력이 관성뿐인 삶에서 탈출하고 싶어 휴직을 했고, 당장 행복하면 된 거라 여겼는데 어느새 스멀스멀 무언가 부족하다 느끼는 게 사실이다. 어딜 향해 가고 싶은 지.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  대략적 답이라도 내린 후 아이를 가지면 좋겠는데 말이다.



"여행 와봤더니.. 여기는 살아야겠는 거예요."


당시의 강렬한 느낌이 아직 생생한 듯 회상에 잠기신 모습이 부러웠다. 느낌을 확신으로, 확신을 결심과 실천으로 바꾸기까지 많은 고민들과 씨름하셨을 거다.



"근데 종교나 비물질 현상에는 관심이 0이신 공학도 남편분과.. 전생, 시간여행, 5차원까지 관심 있으신 부인분 간에 간극이 크겠어."


이어, 아이 낳기 전 접점을 찾으셨으면 좋겠다 덧붙이시는데 속을 들킨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글을 남기고 있는 브런치를 시작하기까지도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의지만큼이나 남편에게 나를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남편은 글 쓰는 게 좋다는 아내에게 노트북과 거치대, 무선 키보드를 사주고 손수 설치까지 해주지만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해하진 않는다. '노잼' 이란다.


 T(사고형)와 결혼한 극 F(감정형)으로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차이겠거니 mbti를 뒤적이며 대충 넘기던, 형태 없던 허전함의 경계를 처음 만난 분이 더 또렷하게 그려주셨다. 동시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이해를 받은 느낌이었다.


치앙마이를 떠나기 전 이 카페에 와보고 싶었던 것이, 분과 스친 것이, 에라 모르겠다 마음을 연 것에 이유가 있었나보다. 떠밀려 살기보다 어떤 방향으로 걸을지 고민하고, 너무도 다른 동반자와 포기 말고 소통하며 이해해 보라는 맞춤형 조언겸 위안위해.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기대와는 달리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 간극은 좁힐 게 아니라 그냥 둬. 너넨 서로가 있어야 중심이 맞아."


한 무리의 단호박 같으니.. 주변에 T가 너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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