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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Sep 10. 2021

고맙다 고마워

실패한 묵 소생술


    예뻐서 라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조금만  주워서 도토리묵을  해봐! 은근히 욕심을 부리며 도토리를 . 목적은  정상을 오르며 솔잎을 따오는 것이니까 도토리에 눈을 돌리며 솔잎도 조금씩 . 머리숱 치듯이 살짝살짝 땄으니  정도는 소나무도 괜찮을 거야. 살짝  상처는 아프지 않냐고 누가 묻는다면  말은 없지.

아프지 왜 안 아파!

미안하다 소나무야.


솔향기 나는 쫀득쫀득한 송편, 낭창낭창한 순도 100% 도토리묵 생각을 하니 마음이 즐겁다. 지금까지  손으로 만들어 먹고살았으니 뭐라도 하면 되겠지 믿었다. 솔향기 솔솔 나는 송편은 문제없었다. 그런데 도토리묵이 문제였다.



도토리를 굴려가며 말리는 중에 속속들이 파고드는 벌레들을 물리치며 성한 것만 골라 바짝 말려서 방앗간으로 . 방앗간 주인은 "너무 말라서 빻을 수가 없네요. 물에 불려서 오세요.” 물을 갈아주며 이틀을 불렸다 이제는 물끼가 너무 많아서  되겠네요.  이틀 말려서 오세요.” 물에 불려서 오라고 해놓고 이제는 말려서 오라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번이나 퇴짜 맞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도토리를 왜 주웠을까. 그래도 도토리가 있을  한번 만들어 보자. 이미 시작된 일이니  때까지 가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막연한 믿음과 열정만 넘쳤다.

     

방앗간 주인이 시키는 대로 도토리를 말리고 다시 가서 빻았다. 요리책을 폈다 도토리가루  컵에  여섯 컵을 넣고 채에 걸러 끓이라고 그다음은 저어주면서 농도를 보면 되니까  문제없을 .


빻아 온 가루가 두 양푼이다. 그러면 물이 열두 양푼이라야 된다는 건가? 아니 그렇게나 많이 어마어마한 양인데 반쯤 넣었는데도 엄청 많다. 이건 아닌데 물은 그만 넣고 가루를 채에 걸러 끓여보는데 웬 걸 엉길 것 같지 않다.


, 이상하네. 당황스럽다. 혼자도 아니고 도토리묵 안주해서 동동주 한잔해야 되겠다.”라면서 면장갑을 끼고 젓고 있는 남편 보기 민망하다. 도대체 묵이  것인지   것인지 속은 타고 난감하기 짝이 없다. 생초보 둘이서  솥이나 되는 시커먼 물을 들여다보며 생각해  것이 녹말가루를 넣어볼까? "그래 " 녹말가루  봉지를 넣어도  차이가 없다. 가루가 작은가 밀가루를 넣어볼까 밀가루를 조금 넣어도  변화가 없다.


다시 녹말가루 한 봉지 더 사다 넣어도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정말 황당하다. 이대로 버리자니 수고한 공이 아깝고 아무리 끓여도 뻑뻑해지지는 않고 어쩜 더 멀겋게 되는 느낌이다. , 모르겠다. 밀가루를 좀 더 풀어 넣고 이젠 그대로 되던 말 던 끝내자.


가루 넣을 때마다 도깨비방망이는 뜨거운 묵 솥에서 빙빙 바쁘게 돌았다. 너무 무리했는지 마지막 딱 한 번만 더하면 끝나는데 그걸 못하고 죽겠다고 윙윙 헛바퀴만 돈다. 왜 그러지 도깨비방망이도 그만 병이 나 드러누워 버린다. 묵 만든다고 좋아하며 도와주던 양반도 지쳐서 큰 대자로 누웠다.


에고, 묵인지 뭔지 한다고 난리법석만 떨었다. 묵이 될 둥 말똥! 애타는 이 심정을 그 누가 알아줄까!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맘엔 안 들지만 대접마다 떠 놓고 내일까지 기다려 보기로 한다.


순도 100% 도토리묵을 나누어 먹을 꿈을 꾸며 주말 내내 도토리묵 쇼를 했지만 묵은 영 아니다.


다음날 아침 도토리묵이 어떻게 되었을까? 살살 조심스럽게 흔들며 만져보는데 별로 신통치가 않다. 낭창낭창한 촉감과 맛은 아니다. 도토리만큼이나 쓰디쓴 실패를 인정하며 무식이 낳은 결과물은 많기도 많다. 이걸 다 어쩌지.

 

실패 후 깨달은 것은 가루란 체에 걸러서 가라앉힌 그 앙금, 도토리 녹말가루 한 컵에 물 여섯 컵 분량으로 끓이라는 뜻인가 보다. 맙소사. 그런 걸 모르고 껍질 벗긴 알맹이만 빻았으니 당연히 가루라고 생각했다. 가루라고 다 가루인 것은 아니었다. 찌꺼기가 얼마나 나갔는데 그 작은 알맹이에 앙금이 있었으면 또 얼마나 있었을까. 생초보의 아쉬운 한숨!


그 물, 물 조정만 잘했으면 그다음은 일도 아닌데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여덟 그릇이나 되는 무늬만 그럴듯한 도토리묵을 어떻게 다 처리할까. 고민이다.


예쁜 도토리 한 알에서 시작된 일이 이렇게도 크게 벌어지다니. 정상적이었으면 얼마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녹말가루, 밀가루, 녹말가루, 밀가루를 번갈아 퍼 넣었으니 많이도 나왔다. 


찐득한 것이 묵도 떡도 아니지만 떫지 않아 먹을만하다. 남 주자니 민망하고 식구들에게 도토리묵 요리라고 내놓을 용기도 없다. 묵 그릇을 생각하면 애가 탄다. 애타는 내 마음 알아주는 이는 없고 외롭고 쓸쓸하다. 어느 세월에 누가 다 먹지. 누구는 “약이라 생각하고 숟가락으로 팍팍 퍼먹어 없애라” 말하지만 냉장고 안에 그릇그릇 들어앉아 있는 묵 대접을 생각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아, 그렇지 식성 좋은 우리 친구들! 뭣이든지 맛있다고 잘 먹는 나의 광팬들이 있었지. 작업장 친구들이 생각난다. 



월요일 아침 참기름, 깨소금 등등 최대한 맛있게 만든 양념장과 각종 채소 쓸고 김 부스러기와 묵 대접을 고이고이 모시고 출근한다. 배고픔이 느껴질 때쯤 묵무침을 해서 친구들에게 오전 간식으로 주었다.

선생님 묵이 참 맛있네요.”

“도토리묵 선생님이 만들었어요?”

자신 없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응, 대충 대답한다.

“야, 우리 선생님 묵 잘 만드네요.”

“우리 엄마는 묵도 안 해주던데”

“할 줄도 모르는데

얘들아, 묵 진짜로 맛있니?

“예~”

그럼 내일 또 해줄까?

“예, 예, 예. ”

그래 알았다.


우리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 묵 그릇이 하나 둘 비워질 걸 생각하니 은근히 즐겁다. 내일이 빨리 왔으면 싶다. 이틀째 묵 대접을 또 들고 출근이다. 얘들아 손 씻고 오너라.’ 했더니 엄마 따라 쫄랑쫄랑 따라오는 병아리들처럼 어제 안 먹었던 친구들까지 모두 다 자리에 앉는다. 친구들 덕분에 덩달아 입맛이 당겨  먹어 본다. 낭창낭창하지도 않고 끈기 없는 묵이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실패한 묵 소생술에 과한 칭찬을 받고 나니 실망에서 용기를 얻고 마음은 기쁘다. 나에게 힘이 되어 준 우리 친구들이 정말 고맙다.


한 그릇 더 달라는 그 소리를 기억하며 내년에는 묵을 제대로 해서 우리 친구들 진짜 진짜 맛있는 묵무침을 해줘야지. 인간에게 주어진 본능 먹는 기능만으로도 이렇게 큰 기쁨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


먹성 좋은 우리 친구들 덕분에 힘을 얻어 집에 놀러 온 딸내미 친구들에게도 묵무침을 해주었다.

씹을 필요도 없고 이 없는 사람도 잘 먹을 수 있는 이건 완전 퓨전요리다 하하하”


한바탕 웃으면서 모두 맛있게 먹었다. 덕분에 부스러기 한 점 버리지 않고 도토리 묵 파티는 며칠에 걸쳐 깔끔하게 끝났다. 후유!


이 아이들이 묵 맛을 알기나 했을까! 진정 묵 맛이 있었을까? 손맛이었을까? 양념 맛이었을까? 여러 재료들이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배고픔이 한몫했을까. 무늬만 도토리 묵이었던 묵 파티는 아름답게 끝났다.


맛있게 먹어 주는 것도 큰 힘이 된다는 사실!

맛있게 먹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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