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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Aug 13. 2024

할머니는 이맛을 몰라

말은 늦었지만(35개월)

너 참 많이 변했다. 어린이집에 다닌 지 11개월째. 오늘은 친구 생일파티 한다고 아침에 선물을 챙겨 들고 기분 좋아 싱글벙글이다. 친구들과 함께 먹고 놀고 낮잠도 같이 자고 여럿이 함께함이 좋은 모양이다. 하원할 때 손에는 막대사탕 하나를 들고 왔다. 사탕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목소리도 커진다. 생일파티 하고 생일케이크도 먹었는지 도시락에 생크림 흔적이 뽀얗게 남아 있다.


단맛에 길들여질까 봐 한 번도 준 적이 없는 사탕인데 오늘은 기어코 먹을 모양이다. 좋아하는 하리보 젤리도 마다하고 막대사탕껍질을 까달라고 매달린다. ‘안돼 그 사탕 먹지 말고 다른 간식 줄게.‘


그때 눈치 없는 할아버지는 손녀의 마음을 얻고 싶은지 “이리 와 까줄게” 할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옆에 착 달라붙어 앉으며 하는 말이 걸작이다

“할머니는 이 맛을 몰라”

그 한마디에 우리는 빵 터졌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그 사탕 맛을 너는 알기나 해.

사탕 하나 뚝딱 끝내고 거부했던 하리보까지 순서만 바뀌었을 뿐 결국은 다 먹었다. 사탕 못 먹게 하려고 잔꾀 부리던 할머니 덕분에 단것을 배나 먹게 된 셈이다.

“할머니는 이 맛을 몰라.”

집에서는 피해 갔지만 한 번 두 번 먹어 본 실력이 아닌 모양인데 할머니만 몰랐네.


저런 말을 어떻게 때에 맞게 사용할 줄 아는지. 정말 참 많이 컸구나. 말을 알아듣고 대응하는 것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말하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늦게 트인 입이 야무지기는.


맞아 할머니는 그 맛을 몰라.

막대사탕 그 맛은 몰라도 할머니도 청포도, 누룽지, 레몬, 박하, 커피, 소금 사탕 이런 맛은 알지. 마산땅콩캐러멜, 밀크캐러멜, 초콜릿, 카카오 82 이런 맛도 알아. 너도 씁쓰름한 카카오 82도 좋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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