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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국 Jul 12. 2024

빨강불에도 달리고 달린다

술과 건강은 무슨 관계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어서려는 순간. “안 되겠다. 응급실로 가자.” 간헐적으로 통증이 온다며 그때마다 배를 끓어 안고 끙끙 앓더니 긴긴밤이 두려운지. “나는 이제까지 감기도 한번 안 걸리고 잘 살았는데 왜 이러지.” 늘 청춘인 줄 알고 건강을 자랑삼아 큰소리치더니 요즘 들어 소소하게 병원을 찾는다. 은밀히 따져보면 그때마다 술이 연관되어 있다. 술이 문제의 중심에 있는데도 술이 문제라면 열을 팍 팍  올리며 술을 보호한다.


수십 년을 함께하며 내장을 훑어도 질리지 않는 술. 술 너는 무슨 요술단지니 아파 죽어도 술은 지키려 하고 사랑하니 말이다. 술이 뱃속에서 무슨 작당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한 사랑으로 술을 지키려 애를 쓴다. 탈이나도 술은 잘못이 없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그런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전자제품이었으면 여러 번 신제품으로 바꾸었을 세월을.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줄 알았던 구시대 인간이라 오작동도 받아들이고 맘에 안 드는 기능도 끌어안고 살아간다.


응급실을 찾을 정도라면 몸이 보내는 초기 신호에 감잡아야 할 텐데 “내 알아서 한다."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술을 버리지 못하니 뒤틀린 내장을 껴안고 끙끙거리며 또 응급실로 가는 것이다.


앞서 공휴일 기간 중에 응급실을 찾아갔고 혼을 뺐다. 그 후 한 달이 채 안되어 또다시 응급실 행이다. 무슨 음식을 먹었던 어떤 상황이었던 두 번 다 술과 연관된 것이다. 술을 보호하고 지키고 싶은 그는 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술이 문제라 생각하는 나와는 생각이 다르다.


응급실 다녀온 지 이틀 만에 또다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본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고 오만상 소리 질렀다. 아무리 힘든 일을 했어도 그 피로를 왜 술로 풀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께 배를 껴안고 응급실까지 다녀왔으면서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그럴 수 있느냐고.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을 보고 ‘참 잘했어요. 건강을 위해서 조금만 드세요.’ 고분고분 사랑스러운 말로 부드럽게 격려해 줄 천사가 있겠는가? “내 몸은 내 알아서 한다.” 무한 긍정 철없는 술바보를.


천사 같은 인격을 갖추지 못한 나는 그 상황을 본 순간 꼭지가 돌아서 한바탕 고함을 처지르고 말았다. 화를 내고 나니 그 여파로 내 기분도 더럽다. 너는 너 나는 나. 그러면 아무 일 없을 텐데 왜 그렇게 분리가 안 되는지. 죽던지 살던지 맘껏 드세요 놔두면 되는데 그게 왜 안 될까. 누구에겐 좋은 술이 누구에겐……


아플 때 아프더라도 술 마시는 당사자는 즐겁기만 한데 술도 안 먹는 내가 왜 속앓이를 하고 더 괴로워하는지. 한없이 싸워도 끝나지 않는 술과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술잔을 부딪치며 “청바지, 건강하게 살자. “ 수없이 외쳤을 텐데 왜 건강은 손사래를 치고 청춘은 자꾸만 멀어져 가는가.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지만 두들겨 패서 고쳐진다면 정말 두들겨 패주고 싶은 심정이다. “늙은이는 웃어도 밉다.” 는데 청춘도 아니고 웃어도 얄미울 나이에 뭘 믿고 한결같은지 “내가 알아서 다 한다.” 큰소리치며 이득도 없는 술이나 호로록 마시고 있으니 얄밉고 답답하다. 화가 불같이 나다가도 미워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어찌할 수가 없다.


세탁해 놓은 오리털파카를 내버리라고 내놓는다. 유독 털이 뭉친다는 게 이유이다. 야무진 구둣주걱 끝자락으로 죄 없는 그놈의 앞판 뒤판 양팔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미운 사람에게 못한 화풀이 옷에다 했다. 버리라던 오리털파카는 두들겨 맞고 오히려 봉긋하게 더 잘 살아났다. 뭉친 털은 매 맞고 다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가 골고루 펴졌다. 술에 딴딴하게 뭉친 얄미운 그도 구둣주걱으로 두들겨 맞고 제대로 풀어진다면 맘껏 두들겨 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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