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건강은 무슨 관계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어서려는 순간. “안 되겠다. 응급실로 가자.” 간헐적으로 통증이 온다며 그때마다 배를 끓어 안고 끙끙 앓더니 긴긴밤이 두려운지. “나는 이제까지 감기도 한번 안 걸리고 잘 살았는데 왜 이러지.” 늘 청춘인 줄 알고 건강을 자랑삼아 큰소리치더니 요즘 들어 소소하게 병원을 찾는다. 은밀히 따져보면 그때마다 술이 연관되어 있다. 술이 문제의 중심에 있는데도 술이 문제라면 열을 팍 팍 올리며 술을 보호한다.
수십 년을 함께하며 내장을 훑어도 질리지 않는 술. 술 너는 무슨 요술단지니 아파 죽어도 술은 지키려 하고 사랑하니 말이다. 술이 뱃속에서 무슨 작당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한 사랑으로 술을 지키려 애를 쓴다. 탈이나도 술은 잘못이 없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그런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전자제품이었으면 여러 번 신제품으로 바꾸었을 세월을.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줄 알았던 구시대 인간이라 오작동도 받아들이고 맘에 안 드는 기능도 끌어안고 살아간다.
응급실을 찾을 정도라면 몸이 보내는 초기 신호에 감잡아야 할 텐데 “내 알아서 한다."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술을 버리지 못하니 뒤틀린 내장을 껴안고 끙끙거리며 또 응급실로 가는 것이다.
앞서 공휴일 기간 중에 응급실을 찾아갔고 혼을 뺐다. 그 후 한 달이 채 안되어 또다시 응급실 행이다. 무슨 음식을 먹었던 어떤 상황이었던 두 번 다 술과 연관된 것이다. 술을 보호하고 지키고 싶은 그는 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술이 문제라 생각하는 나와는 생각이 다르다.
응급실 다녀온 지 이틀 만에 또다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본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고 오만상 소리 질렀다. 아무리 힘든 일을 했어도 그 피로를 왜 술로 풀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께 배를 껴안고 응급실까지 다녀왔으면서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그럴 수 있느냐고.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을 보고 ‘참 잘했어요. 건강을 위해서 조금만 드세요.’ 고분고분 사랑스러운 말로 부드럽게 격려해 줄 천사가 있겠는가? “내 몸은 내 알아서 한다.” 무한 긍정 철없는 술바보를.
천사 같은 인격을 갖추지 못한 나는 그 상황을 본 순간 꼭지가 돌아서 한바탕 고함을 처지르고 말았다. 화를 내고 나니 그 여파로 내 기분도 더럽다. 너는 너 나는 나. 그러면 아무 일 없을 텐데 왜 그렇게 분리가 안 되는지. 죽던지 살던지 맘껏 드세요 놔두면 되는데 그게 왜 안 될까. 누구에겐 좋은 술이 누구에겐……
아플 때 아프더라도 술 마시는 당사자는 즐겁기만 한데 술도 안 먹는 내가 왜 속앓이를 하고 더 괴로워하는지. 한없이 싸워도 끝나지 않는 술과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술잔을 부딪치며 “청바지, 건강하게 살자. “ 수없이 외쳤을 텐데 왜 건강은 손사래를 치고 청춘은 자꾸만 멀어져 가는가.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지만 두들겨 패서 고쳐진다면 정말 두들겨 패주고 싶은 심정이다. “늙은이는 웃어도 밉다.” 는데 청춘도 아니고 웃어도 얄미울 나이에 뭘 믿고 한결같은지 “내가 알아서 다 한다.” 큰소리치며 이득도 없는 술이나 호로록 마시고 있으니 얄밉고 답답하다. 화가 불같이 나다가도 미워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어찌할 수가 없다.
세탁해 놓은 오리털파카를 내버리라고 내놓는다. 유독 털이 뭉친다는 게 이유이다. 야무진 구둣주걱 끝자락으로 죄 없는 그놈의 앞판 뒤판 양팔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미운 사람에게 못한 화풀이 옷에다 했다. 버리라던 오리털파카는 두들겨 맞고 오히려 봉긋하게 더 잘 살아났다. 뭉친 털은 매 맞고 다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가 골고루 펴졌다. 술에 딴딴하게 뭉친 얄미운 그도 구둣주걱으로 두들겨 맞고 제대로 풀어진다면 맘껏 두들겨 패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