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증 이야기로 '버전 3'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4번에 붙었고, 미국에서 땄다. 3개월 만에 집으로 참 어렵게 배달됐던 녀석인데.. 나름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친구다. 그 친구 이야기를 하며 실패이력서를 마무리한다.
면허증 이야기
사실... 운전은 지금도 잘 못한다. 운동신경이 제로다. ⓒ청자몽
20대, 남들 다 운전면허 공부해서 딸 때 나는 관심이 없었다. 운전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시간에 컴퓨터 관련 자격증 공부를 했다. 사실 별로 자신도 없었다. 운동 신경 쪽에 문제가 있는지, 내 몸 하나 컨트롤이 안 되었다. 그냥 대중교통 이용하련다. 그러고 무시했다. 그러고 보니 점점 더 면허증 딸 기회나 시간도 없었다.
미국 가기 한 달 전, 남편이 먼저 미국에 가면서 운전면허증 따 가지고 오라고 했다. 한 달 안에요? 안 될 텐데.. 하면서 운전학원에 가서 가격을 알아봤다. 도로 주행만 백만 원 넘게 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달 안에 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어차피 미국 가면 남편이랑 24시간 같이 있을 거니까, 면허증 없이 살다가 천천히 따지 뭐. 하면서 안 땄다.
실제로 미국 가니까 면허 딸 이유가 없어 보였다. 차는 남편이 운전했고, 우리는 늘 같이 있었다. 면허증 대신 신분증 대용으로 들고 다닌다는 ID카드라는 걸 발급받았다. 그렇게 편하게 살다가 마침내 일이 터졌다.
미국 간지 1년도 안 되어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 한국에서라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별일 아니겠지만, 미국에서는 그것도 취업비자를 받고 간 경우 회사를 그만 두면 큰일이 나는 거였다. 취업비자를 서포트해 주는 회사를 다시 찾지 않은 채 그만두면, 퇴사 후 2개월 안에 출국을 해야 한다.
다행히 회사 대표님이 바로 퇴사 신고 안 하고 두어 달 더 있다가 신고를 하시겠다고 했다. 출국까지 시간을 번 셈이었다. 그 사이에 다음 회사를 구하면 옮기는 거고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했지만... 미국 취업한다고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 정리하고 미국 온 지 1년도 안 돼서 다시 한국 가기는 왠지 아쉬웠다. 그렇다고 다음 회사를 바로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미국은 땅떵이가 커서, 면접도 서류 통과되면 1차 전화 인터뷰를 한다. 1차 합격하면, 2차는 비행기 타고 현지로 가서 인터뷰를 한다고 했다. 물론 모든 것은 오래 걸리며, 쉽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취업비자를 서포트해줘 가며 우리 같은 외국인을 고용하는 회사를 찾기란 더 어려운 일이었다. 보아하니 이대로라면 조만간 한국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인터뷰 연락도 안 오고, 와도 잘 안 되고. 잔고는 떨어져 가고 한숨이나 쉬던 어느 날. 문득 어차피 돌아갈 거 면허증이나 따 가지고 한국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면허증을 한국에 가지고 가면 5만 원에 바꿔준다니까 좋을 것 같았다.
필기시험은 족보를 달달 외워서 한 번에 붙었다. 문제는 실기시험이었다. 남편한테 운전을 배웠다. 가족한테 운전을 배우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다. 목덜미 잡히고 험한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운전대를 잡으면 내 안에 숨어있던 괴물이 튀어나와서 상황은 더욱더 안 좋았다.
실기시험은 매일 떨어졌다. 면허시험장에 실기시험을 보러 매일 갔다. 2번은 시험도 보지 못한 채 쫓겨나고, 3번 떨어진 다음 4번째에 붙었다. 까칠한 시험관한테 걸려 운전도 못하고 영어도 못한다고 무시당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갑자기 용기가 나서 더듬더듬 물었다. 내가 뭘 고치면 되겠냐고. 뭐를 제일 못하냐고. 당신이 말해주면 고치겠다고 했다.
그래? 그러더니 시범을 보이며 이거 이거를 연습하고 오면 좋겠다고 했다. 잘 보고 알았다고 한 다음 정말로 하루종일 연습했다. 그리고 다음날 4번째 시험을 봐서 붙었다. 바로 그 까칠한 시험관이 합격시켜 줬다. 잘해서 붙여준 거 아냐. 앞으로 잘하라고..라고 했다.
그날! 정말 운이 좋았다. 원래 실기시험 3번 떨어지면, 원칙대로 하면 필기도 다시 봐야 한다는데.. 역시 시험 접수하시는 분이 며칠 연달아 가니까 얼굴이 눈에 익었는지 그냥 가라고 하시긴 했다. 사실 붙을 때까지 매일 시험 보러 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