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음식에 대한 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독백을 시작합니다
Chapter 0. Prologue
어릴 적 나는 음식을 정말 좋아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것도, 잘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것도 말이다. 식욕이 한창일 때는 가장 먼저 식탁 앞에 자리를 잡았고, 가장 오래 식탁 앞에 머물렀다.
그래서인지 나의 기억 속엔 음식이 항상 빠지지 않고 자리하고 있다.
5년 정도 됐을까. 갑작스럽게 바뀐 업무와 주변환경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이는 곧 소화기능의 급격한 저하로 이어졌다. 대단한 걸 먹지 않아도 늘 소화불량이 따라왔고, 정도가 심한 날엔 먹은 것들을 다 비워내고 나서야 겨우 혈색을 되찾았다. 급체하는 날이 늘어가자 음식을 마주하고도 식사 후 이어질 후환이 먼저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가장 먼저 수저를 내려놓고, 가장 먼저 식탁을 떠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아니, 나는 여전히 음식이 좋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것도, 잘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것도.
다만 다음 끼니를 무사히 먹을 수 있도록 한 끼에 먹는 양을 줄였고, 하루에 한 끼 또는 두 끼만 먹는 것으로 나의 예민한 위장(님)과 적당한 타협을 보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일이 생겼다. 예전만큼 마음껏 먹을 수 없게 되니 나도 모르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이는 것일까. 계절이 바뀌고 출퇴근길 주변 풍경이 달라지면, 먹고 싶은 음식들이 갑작스레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음식들이 식욕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해마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옛 추억을 데려왔다. 예를 들어 이제는 함께하지 못하는, 정성스레 음식을 차려주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과 같은.
사람의 기억은 영원하지 못하다. 오래돼 빛바랜 기억들은 반질반질한 새 기억에 덮여 언젠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사실, 누구에게는 별 거 아닌 소박한 음식이고 기억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날을, 함께했던 순간들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고 어딘가에 기록해 두고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싶었다.
메모장을 펴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음식들을 무작정 써 내려갔다. 적어 놓고 보니 개수가 제법 되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제각기 다른 에피소드와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꽉 채워진 메모장을 뒤로 넘긴 후, 앞서 적어둔 음식들을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시간선에 따라 그룹을 지었다. 그렇게 계절별로 다섯 가지의 에피소드가, 사계절에 총 스무 개의 제목이 만들어졌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소소한 음식들과 함께했던 나의 일상과 추억을 담은, 아주 담백한 독백이다.
내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하는,
내가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어서 하는,
계절의 흐름에 따라 읊조리는 나의 독백.
지금부터 소:담백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