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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담백 03화

소:담백#봄 02 쑥국에 고추장 한 숟갈

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두 번째 독백

by 버들

Chapter 2. 쑥국에 고추장 한 숟갈


식탁 위에 쑥국이 올라왔다는 건, 매서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바깥공기에 잔잔하게 꽃향이 배어들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쑥을 담뿍 넣은 된장국을 끓여주셨다.

집된장의 구수함과 풋풋한 쑥향이 어우러진 국물 한모금을 머금으면, 입 안 가득 봄내음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늘 고추장 한 숟가락을 국물에 풀어내었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나도 고추장 한 숟가락을 퍼올려본다.


“아야, 고추장 많이 여면 짜야“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한마디에 고추장 삼분의 일만큼을 덜어낸 뒤, 국그릇에 수저를 담근다. 고추장을 마주한 쑥국이 불그죽죽해졌다.


고추장의 얼큰함이 더해진 뜨끈한 국물을 한입 머금으면, 식도를 따라 온몸에 열기가 차오르며 나도 모르게 ‘크-’하는 추임세가 흘러나온다. 술이라곤 입에 대보지도 않은 미성년자가 속이 풀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얼마 전 부모님댁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쑥국 이야기가 나왔다. 대충 쓱쓱 비빈 비빔밥에 곁들여도 좋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꾹꾹 말아 후루룩 먹는 것도 좋던 국이었노라고. 가족들과 함께 옛 추억을 나누고 있자니, 어디선가 쑥향기가 흘러나오는 듯 했다.


그러고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봄 쑥국을 맛보지 못했다. 직장인이라면 응당 그러하듯이 하루의 대부분의 끼니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쑥국을 보기 여간 어렵다. 시간은 어느새 고추장을 풀어 먹는 쑥국은 그런 맛이었지, 하고 어렴풋이 떠오를만큼 흘렀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겨울은 미련이 남은 모양인지 코끝이 빨개질만큼 여전히 바깥 날씨가 춥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현재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 내일 아침에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을 것이다. 영하의 온도에 얼어붙은 도로는 제법 미끄러울지 모른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가 대지를 꽁꽁 얼리고, 따스한 햇빛이 언 땅을 녹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겨울은 저 만큼 멀어져 있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갔음을 눈치챈 쑥이 빼꼼 고개를 내미는 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고추장 한 숙가락을 풀어낸 쑥국과 함께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저녁에 쑥국 끼려 줄까?“

묻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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