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세 번째 독백
급식소에서 카레가 나오는 날은 입구부터 그날의 메뉴를 알 수 있을 만큼 카레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묵직한 존재감만큼 다른 식재료와 어울리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보기와 달리 한없이 너그러운 편이다. 고기 대신 쫄깃한 표고버섯을 넣거나, 애호박 대신 단호박이나 고구마를 넣기도 한다. 또한 카레는 다른 음식들과도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예를 들어 노릇하게 구운 계란프라이라든가, 온몸에 칼집을 두른 소시지라든가, 통통한 새우튀김 그리고 바삭하게 구워진 마늘 후레이크, 닭고기, 돈가스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듯해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겠다.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소:담백의 세 번째 독백의 주제가 카레인 이유를 설명하자면 나의 스무살로 돌아가야 한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대학생으로 처음 맞는 봄의 어느 날이었다. 농번기를 앞두고 농촌봉사활동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떴고, 나는 주저없이 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내향적이던 내가 무슨 용기로 신청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무튼 낯선 타인들과 함께 1박 2일-사실 1박 2일이었는지, 2박 3일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의 농촌봉사활동을 떠나게 된다.
마을회관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동네 어르신의 트럭에 올랐다. 울퉁불퉁한 농로를 따라 좌우로 덜컹이는 차 때문인지, 낯선 환경으로 인한 긴장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속이 울렁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정신없이 밭일에 몰두하다보니 너나할 것 없이 땀에 절여진 서로를 보자 별안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긴장감과 어색한 기류는 어느새 온데간데 없었다.
“카레 만들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사람?”
저녁 식사를 앞두고 누군가 물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대학생이라 해봤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이었고, 고학년이라고 해도 고작 스물둘, 스물셋의 젊은이들이었다. 아직은 부모님의 챙김을 받는 것이 익숙한 나이일터. 게다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본전, 맛이라도 없으면 뒤이어 따라올 민망함은 또 어떻고. 이러니 누가 당당하게 자원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걸 해낸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주방보조로 활동한 덕에 웬만한 요리는 자신 있었다. 뭐, 카레 그까짓 거. 끓는 물에 카레가루 푼 다음 야채만 숭덩숭덩 썰어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너 요리 잘해?”
카레에 들어갈 야채 손질을 시작하려는데 동갑내기 동기가 의심의 눈길을 던졌다.
“잘은 아닌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닌데?”
갑자기 훅 들어온 녀석의 공격에, 칼을 쥔 나의 오른손이 살짝 떨렸다는 것을,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는 것을 그는 영원히 모르길.
본격적으로 카레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달궈진 냄비에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비슷한 크기로 썰어둔 당근, 감자 그리고 양파를 넣어 살짝 볶아주었다. 야채가 어느 정도 익은 듯해 물을 부은 뒤 화력을 최대치로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한 손으로는 카레가루를 조금씩 넣어주고, 한 손으로는 가루가 뭉치지 않도록 국자로 저어주었다. 한소끔 끓은 국믈을 조금 덜어내어 간을 보았다.
어라? 이상하다. 너무나 밍숭맹숭한 맛이다.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카레가루를 조금 더 털어 넣은 뒤 가스불의 기세를 추켜올렸다. 카레의 색이 짙어진 듯 해 다시 한 모금 호로록 맛보는데.
어라? 이번에는 짜다.
물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땐 물을 더 부으면 된다. 국그릇에 물을 가득 받아 냄비에 부었다. 부족한 간을 조금씩 보충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식사 시간이 임박해오고 있었다. 조급해진 마음을 뒤로한 채, 간절한 마음을 담아 국물을 음미했다.
“됐다.“
두 번의 고배를 마신 뒤 드디어 이뤄낸 성공이었다. 하지만 비주얼만큼은 완전히 실패였다. 준비된 야채에 비해 물의 양이 많아져 버린 탓이다. 한강처럼 드넓은 카레 국물 위, 듬성듬성 보이는 야채들. 감자가 몇 개인지 한눈에 셀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밥상 위에 올라온 카레(국)을 보자 누군가는 당황한 듯 했지만, 맛이 괜찮았던지 숟가락의 움직임이 바빠졌다는 해피엔딩.
이제 나는 그때처럼 ‘카레국‘을 만들지 않는다. 국물과 속재료의 적당한 비율로 ‘카레’를 만들 뿐이다. 나이가 묵직해지면서 요리에 대한 감도 꽤나 무거워졌달까. 한데 카레를 먹을 때마다 스무 살의 봄, 그날이 떠오르곤 한다.
생김새도, 성격도, 전공도 달랐던 사람들이, 봉사활동이라는 계기로 만나 짧은 시간동안 잘 어우러졌다는 점이 카레와 닮아서일까. 나의 서툰 카레를 맛있게 먹으며 요리하느라 수고했다고 말해주던 고마운 마음이 그리워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