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에는 밖으로 나오려는 화를 억지로 쑤셔 넣었던 목구멍에게 참 애썼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 혼자 끙끙 앓아버린 시간에게 애썼다. 힘들지 않은 일도 억지로 하면 힘들기만 한데, 억지로 힘내온 당신의 마음에게 참 애썼다. 또, 힘내라는 말을 억지로 이해시켜버린 머리에게 참 애썼다.
그러니 그렇게 치열하게 애쓴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오늘은 더 이상 그만 애쓰면 싶다. 애써 자책하지도 말고 애써 헛되게 생각하지도 말고, 애써 아쉬워하지도 말고. 애써 뒤돌아보지 말고. 오늘 하루도 그렇게나 애썼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애써 자신에게 말을 건네면 좋겠다.
난 오늘 참 잘 했다고. 실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아서, 뒤처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멈춰 서지 않아서. 참 잘했다고 말이다. 애써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책 ‘나를 사랑하는 연습’에 나오는 글이다. 내겐 일종의 처방전이다.
힘들 때마다 이 글을 읽으면 코끝이 찡해진다. 볕이 안드는 그림자 속에서 시렵게 떨고 있던 내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는 것 같다.
회사 상사가 내가 쓴 인터뷰를 뺏었다. 본문과 바이라인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내 이름은 기사 맨 아래에 ‘정리’라는 수식어와 함께 표기했다. ‘경리’처럼 ‘정리’라는 직업도 있나? 취재원 섭외부터 사전 질문 작성, 인터뷰, 기사 작성까지 전 과정을 해낸 건 나인데, 그걸 왜 정리라는 말로 치부해버리지?
상사가 한 것이라고는 인터뷰에 동행한 것인데, 그 마저도 전날 과음을 했다며 내게 인터뷰 주도권을 넘겼었다. 물론 나보다 선배인 그에게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요령을 배우긴 했지만, 주말을 반납하고 월요일 낮까지 기사를 완성해낸 건 다름 아닌 나다.
심지어 갑자기 형식을 바꿔 작성하라고 해서 다 쓴 글을 뒤엎기까지 했는데, 그 기사를 자신이 쓴 걸로 해버리니 폭발할 수밖에.
표현 그대로 상사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는 글을 ‘정리’하기만 했다면 이처럼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머릿 속에 상상 속 나래가 펼쳐진다. 내가 상사가 옆에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안녕하세요 ★★★ 정리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면, 상대방은 왜 정리라고 하냐고 묻는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저희 부장이 저를 정리라고 부르시더라고요.”
내일 상사에게 어떤 뉘앙스를 표현해야 하나도 고민했다. 대놓고 “이러시는 거 아니죠”라고 화를 내버릴까, 아님 “당신이 ~~라고 말해서 나는 ~~한 감정이 들었다. 앞으로 ~~해주면 좋겠다”라고 ‘나 메시지’ 화법을 쓸까.
이런 저런 생각에 이르다 보니 결론이 딱 하나 나왔다.
오늘 하루 애쓴 나를 궁지로 내몰지 말자. 쉬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제 할 일을 끝까지 해낸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누군가를 향해 화를 내고 싶었지만 정말 화를 낼 이유가 충분한지 돌이키며 냉정한 시간을 보낸 건 멋지다. 감정에 앞서 행동해 후회할 짓을 만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잘한 일이지 않은가!
불평과 걱정,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는 대신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찬 바람을 맞으며 걷고, 집 안의 온기를 느끼며 맛있는 밥을 먹는 이 모든 행복을 누리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