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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Aug 13. 2021

파리의 일꾼들

보통 매운 녀석들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인내심이 깊어졌다고 느끼는 순간은 꽤 자주 있다. 식당에서, 순수하게 입구에서 자리까지 안내받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려 내가 지금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나(1) 고민해야 할 때가 그럴 것이고, 엄연히 말하면 브레이크 타임은 아니지만 한창 한가하던 차에 손님이 들어와 심기가 불편해진 웨이터가 개인적인 통화를 마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2), 30분 기다린 주문이 누락되거나 식사를 모두 마치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상황(3)이 그러할 것이다.

 얼마 전 다니엘이 내가 약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듣더니 '프랑스에는 이런 말이 있어, 고객은 언제나 틀리다는 말이.'라고 하길래 한참 웃고 진짜냐고 물었더니 방금 지어낸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금 지어낸 말 치고는 정말 프랑스다운 문장이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오늘 포스트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약국에 갔던 날 나는 PCR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주말에 다니엘과 포르투갈에 갈 예정이었는데 2차 백신을 맞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국에 가 PCR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약국 사람이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포르투갈에 간다니 약국 사람이 포르투갈은 간이 검사 키트 결과만 있어도 갈 수 있단다. 자기가 포르투갈 사람인데 지난 주에 다녀와서 잘 안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녀가 포르투갈에 다녀온 건 당시 시점으로 지난 주였고 내가 정책을 확인한 건 바로 전날 밤이었다. 그녀가 모든 세세한 예외 조항이나 최신 동향까지 파악하고 하는 말이 아닐 경우 곤경에 처하는 것은 나뿐이다. 결국 PCR이 꼭 필요하고 출장 차 가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 회사에서 요구받아서 어쩔 수 없다는 얘기까지 지어내서 겨우겨우 PCR을 받았지만 나는 프랑스 생활의 이런 점이 불만이다. 공무원도, 약사도, 경찰관도 다 자기 '감'이나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일을 하는데 그게 틀려서 내가 손해를 본다 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내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라는 게 말이다. 나 역시 사전에 안내받은 바가 있고 정부 관련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어 행동하는 것인데도, 심지어는 그 웹사이트의 해당 조항을 프린트해서 들이대도 '나는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내가 맞다' 식으로 나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여기서 계속 저항을 할 수도 있지만 무시당하거나 자리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뭐, 내가 불만을 품는다고 바뀔 일은 아니므로 넘어갈 수밖에. 내가 콧구멍에 들어온 면봉 때문에 눈물을 참는 동안 한 남자가 약국 안으로 들어왔다. 직원들이 어딜 가느냐고 묻자 그가 포르투갈이라고 말해서 약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 역시 나와 비슷한 종류의 실랑이를 했다. 겨우 검사를 마치고 약국을 나서는 데 나를 검사한 직원의 동료가 날 보며 사요나라라고 했다.그녀가 진열대를 정리할 때 폴리폴리 프로폴리 프로폴리스~ 라고 노래한 걸 보면 원체 장난기가 많은 성격이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흔하고 불쾌한 일이다.

 포르투갈에 가기 몇주 전에 다니엘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었다. 날이 찌는듯이 덥고 햇살이 쨍쨍해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두피가 타는 듯한 햇살이었다. 여름 들어 두피가 많이 건조해진 탓에 슬슬 모자를 들고 다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낯익은 점원이 밖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반대편으로 줄을 서세요!! 싫으면 기다리지 마시고요(Ou n'attendaz pas)!" 그녀는 거듭 이렇게 소리쳤고, 나는 퉁명스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파리 사람들이 그저 궁시렁대거나 자리를 뜰 뿐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명 쯤은 '말을 왜 그렇게 하느냐'라고 짧게라도 뭐라고 하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다들 어지간히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던 것일까.

 오랜 시간을 기다려 겨우 우리 차례가 왔다. 나는 캬라멜 맛을, 다니엘은 체리 요거트 맛을 골랐는데(원래는 한 명이 두 가지 맛을 고를 수 있다) 점원이 아이스크림을 담으며 동료에게 '나는 단순한 사람들이 좋아. 담기 편하잖아' 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필 그날따라 나도 다니엘도 한가지 맛만 먹기로 한 탓에 우리 얘기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다니엘 말로는 딜리버루로 들어온 큰 컵 주문을 담으면서 한 말이었다고 했다. 그나마 우리 얘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좀 헷갈렸다.

 이런 까칠함이 가끔은 통쾌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빵 터지는 날도 많다.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더 판다고 해서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땡볕에서 사람들이 줄 선 방향을 바꾸느라 고래고래 소리치는 일은 어느 모로 보나 유쾌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말이 곱게 나가기 힘들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만 매워도 너무 매운 프랑스의 일꾼들이 조금이나마 온화해지는 날은 과연 올까.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1) 지베르니에 갔을 때 벌어진 일이다. 주말이고 사람이 많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지만 가게 사람이 우리와 계속 눈을 마주치면서도 마치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이상하던 차에-보통 이 시점에 '조금 기다리세요' '오늘 사람이 많네요' 정도는 이야기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을 넘기자 이제 인종 차별에 관해 생각해야 할 순간인가.. 싶었다. 특히 딸이 흘리고 간 물건을 찾기 위해 나와 다니엘 뒤에 선 프랑스인이 기다린지 얼마 되지 않아 점원에게 말을 걸 수 있었을 때 우리는 이곳이 꽤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가게를 나와 다른 곳으로 갔다.
 
(2)다섯시가 될락 말락한 무렵에 찾은 어느 바였다. 웨이터는 바 스탠드에 서서 큰 소리로 통화를 했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므로 손님들이 바 스탠드와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원하는 맥주를 나르고 있었다.

(3)저녁 식사에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 또한 지베르니에 갔을 때 벌어진일이다. 아마 우리 테이블을 맡은 사람이 레스토랑에 관한 아무 경험도 없이 첫 출근한 날이었던 것이리라.  다니엘이 키르(샴페인에 알콜 시럽을 탄 음료이며 프랑스의 모든 바와 레스토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음료이다.)를 주문하자 그녀는 키르가 뭐냐고 되물었고, 결국 키르 주문은 누락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 후 전채요리를 주문했는데 그녀가 메인 요리인 오리를 두 접시 들고 와서 당황을 했는데, 음식을 더 주문하고 싶어도 그녀가 우리 테이블 주변에 오지 않아 결국 그녀의 동료들이 주문을 받았다. 결국 먹은 건 식전주와 전채 요리, 메인 요리가 전부였는데 여기에 소요된 시간이 디저트를 먹고 차까지 마신 시간에 상응했기 때문에 식사를 마친 후에는 정말 피곤했다. 호텔과 레스토랑같은 시설이 다시 문을 연 후 딱 이틀정도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레스토랑 측도 준비에 시간이 모자랐던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안녕하세요, 체리입니다.. 원래 오늘은 올리는 날이 아닌데.. ㅋㅋㅋㅋ 그림 다 그려서 그림파일 삽입하다가 잘못 눌러서 오늘 올라갔네요..이렇게 된거 그냥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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