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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Oct 09. 2021

나는 일름보가 될 것이다

왜 차별주의자들은 지치지도 않을까

 프랑스에서 다양한 종류의 불쾌한 일을 겪었지만 불평 많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말을 아낀 적도 많다. 듣는 친구들도 매일 힘든 일이 있을 것인데 프랑스 살이 초기도 아니고 나도 슬슬 '어른스럽게' 살아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서 그랬다. 나름대로 경험이 쌓인 만큼 '좀 꺼림칙한 상황' 정도는 금방 털어낼 수 있게 됐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며칠 전처럼 '아, 이 미개한 새끼들 지랄을 해도 분수가 있지' 싶을 때가 어찌 없겠는가. 나는 그날 15분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었다. 일을 시작한 초기에 검진을 받을 거라 기대했으므로 계약도 다 끝나가는 마당에 별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출석하지 않을 시 월급에서 85유로를 차감하겠다는 말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녀왔다. 프랑스에서 예전 직장을 다닐 때 했던 건강 검진(말이 건강검진이지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했던 신체검사 수준에 가깝다)이 10분을 넘기지 않았고, 주변 직장인들 역시 회사 건강검진이라 하면 가벼운 문진 정도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에 뭐 별일이야 있겠냐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이런 방심의 막을 뚫고 들어오는 차별보다 불쾌한 것이 있을까?


 센터 입구에 수문장처럼 앉은 사람이 내 직업이 뭔지 세 번 넘게 물어봤을 때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화할 마음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리셉션(이하 리): "직업이 뭐죠?"

나: "000이에요."

리: "그러니까 당신 계약서에 뭐라고 적혀있느냐고요."

나: "000이요. 0~0~0이에요."

리: "그런 직업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을 하느냐고요?"

나: "나는 A에 관한 서류를 검수하고 서류 관리를 해요. B분야의 회사를 위해 일하고요."


 그 여자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쓸어내리더니 대기실로 손짓하며 저기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나를 제외하면 대기실에는 백인 남자들만 앉아있었다. 여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기실로 쫓아와 너무 뻔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뻔한가 하면 여자가 물은 정보들이 내가 이 센터에 들어오자마자 그녀에게 건넨 신분증에 또렷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리: "이름이 뭐예요?"

나: "00이요."

리: "그러니까 당신 법적 서류에 있는 이름이 뭐냐고요?"

나: "00이라고요."

리: "신분증에는 당신 남편 이름도 같이 나와있는데 이혼했나요?(프랑스에서 결혼을 할 시 남편 성을 따르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도 적지 않다. 그런 경우 별성을 쓰거나 부부 두 명의 성을 합치거나 하는데 나는 원 가족의 성을 그대로 사용한다.)"

나: "아뇨 이혼은 안 했고 내 이름은 000에요."


여자는 한참 후 다시 오더니 내가 사는 곳이 몇 구인지 물었다. 그 또한 그녀가 볼펜으로 무례하게 두들겨댄 내 신분증 뒷면에 분명히 쓰여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냥 눈이 나쁜가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이 촌극에 놀아나는 동안 주변의 백인 남자들은 내가 받은 질문의 1/10조차 받지 않고 빠르게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일찍부터 이 단체에 어떤 기대도 갖지 말아야 함을 깨우쳤다. 곧 의사가 있는 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의사 또한 내 직업이 뭔지 고장 난 라디오처럼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까지 나의 이혼설을 주장하던 리셉션의 그녀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건 나보다는 의사가 더 화내야 하는 상황 아닌가? 나는 옛날 옛적 히스로 공항의 어떤 입국심사관으로부터 집요하게 신문을 당한 나머지 그날의 마지막 비행기를 놓쳤던 어느 날이 생각났다-한국인 입국심사 면제 이전의 일이다-. 그 남자도 자기 직업이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로 내가 실수를 하거나 평정을 잃을 때까지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었다.


리: "아니 내가 말했잖아요? 직업 뭐냐고-그리고 나는 여섯 번을 똑같이 대답했지- 선생님, 맞죠? 그런 직업은 들어본 적도 없다니까요."

나: "내 프랑스어는 완벽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좀 천천히 말하던지 내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줘요."

리: "(말하는 속도는 전혀 느려지지 않았고) 당신이 잘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무슨 계약인지 그 직업 이름을 알아야 된다고요 우리는."

나: "계약서를 보여줄 수 있어요 내가 당신들한테 - (리셉션의 여자가 내 말을 막으면서 내 팔을 만졌다)"

리: "그러니까 내가 리셉션에서 세 번이나 물어봤다고요 선생님."

의사: "계약서나 급여 명세서 복사본 같은 거 있어요?"

나: "네, 잠시 기다려 주세요 계약서 보여드릴 수 있다니까요. 말했잖아요 (아직 계약서 파일을 찾는 중에 리셉션 여자가 내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을 채갔다)"

리: "이거 보라고요 선생님 뭔가 이상하다고요"

나: "아니 .. 이건 오늘 검사 소환장이지 계약서가 아니니까."

리: "(무시하고) 이건 오늘 검사 소환장이지 우리가 필요한 문서가 아니네요."


 위와 같은 환장스러운 대화를 마치기까지 리셉션 여자와 의사가 번갈아 가며 내 말을 끊었다. 나는 내 프랑스어가 완벽하지 않다고 여러 번 말을 했지만 여자가 말하는 속도와 자꾸 내 말을 가로막는 태도 등을 보았을 때 여자의 목적이 그저 내게 굴욕을 주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내 클라우드에 저장해둔 계약서 파일을 보여주는 것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시간을 들이고 나서야 나는 내 계약서 사본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부터 일관적으로 답변했던 000라는 직업명이 맨 위에 쓰여 있는 계약서 사본을 본 리셉션 여자는 짤막하게 "Excusez nous(아 실례했네요)"라고만 했다. 그 후로는 왜 자기가 내게 똑같은 질문을 여러 번 했는지 정당화를 하기 시작했고 말이다.


리: "만약에 제가 잘못 받아 적기라도 하거나 실수가 생기면 다시 와야 하는 건 당신이니까요."


 아마 3년 전 프랑스어를 아주 못했을 적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얼굴이 울기 직전까지 상기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여자가 나를 붙들고 소리를 지르지 않나 말을 끊지 않나, 핸드폰을 채가지를 않나. 서른을 넘기고 이런 일을 겪을 거라는 생각은 잘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오늘의 나는 호흡도 골랐고 좀 짜증이야 났지만 얼굴이 빨개지지는 않았다. 덕분에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동안 리셉션 사람은 주절주절 자기는 정말로 내 직업을 문서 상에서 본 적이 없어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변명했다. 마치 본인이 전 세계 1만여 개의 직업을 빠짐없이 기억하기라도 한다는 듯.


 결혼을 했는지, 몇 년에 했는지, 형제는 몇 명인지-이 질문은 신기하게도 가족력을 묻는 질문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필수 백신을 맞았는지, 몇 년에 맞았는지 등의 질문을 거치는 동안 나는 마지막 직장의 검진에서 가족관계나 백신 접종 연도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프랑스에도 엄연히 백신 접종 증명서가 있지만 접종 연도까지 물어볼 거라면 미리 그 증명서를 준비하라고 언질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날 검진은 시작부터 상당히 불쾌했기 때문에 (내 직업에 대해 언쟁했을 때) 내가 맞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갑자기 온화해진 그들의 능청맞은 웃음이 역겨웠다. 의사가 내 버섯 무늬 양말이 귀엽다며 애써 화젯거리를 착즙해냈지만 나는 형식적인 웃음마저도 꾸며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내가 틀렸어도 말이다.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소리를 치고 말을 끊고 몸에 손을 대는 행동의 그 어디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특히 이 코로나 시국에 말이다.


"아이고, 꼴랑 너 불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너무 무례하네."


 퇴근한 다니엘이 한숨을 쉬며 안아주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나저나 다음 프랑스 대선에서 인종 차별주의적인 후보가 당선되면 이게 내 생활이 되는 걸까?? 농담처럼 던진 말에 다니엘은 '아니야, 사람들은 지금과 똑같이 차별할 거야. 특별히 지금보다 더 하진 않을 거야.'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나는 동정받는 것이 싫고, 누군가 나를 봤을 때 내가 최근에 당한 부당한 일을 먼저 떠올리는 게 싫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이야기 방향이 먼저 그쪽으로 가지 않는 한 먼저 이야기를 꺼내려 하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내가 아낌없이 일름보를 자처해야 할 주제가 있다면 바로 이런 일 아닐까. 그런다고 차별이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놈들 얼굴에 똥칠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오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사양 않고 쭉쭉 써 내려갔다. 더 많은 인종차별주의자 놈들에게 더 많은 똥칠을 해주고 싶다는 일념만으로.


 코로나가 확대되기 시작했을 때, 길모퉁이와 슈퍼 복도 등에서 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내 피부색을 보고는 자기 애들을 황급히 자기 등 뒤로 숨기던 어떤 부모들이 내 생활의 달갑지 않은 일부가 되었을 무렵. 나는 다니엘에게 물었었다.


"나는 불어를 못하는 거지  생각처럼 멍청한 게 아니에요는 어떻게 말해?"


 다니엘은 대답하지 않고 내가 먼저 문장을 만들게 했다. 당시에는 그저 겁에 질려서. 어떤 정신 나간 차별주의자가 내 피부색을 보고 쫓아오면서 고함을 지르기라도 할까 봐 물어본 거였는데 잠들기 전 그날 일이 생각났다. 그래도 그날의 겁에 질린 나는 연필을 들어 불어를 공부했고, 지금은 나름대로 많이 늘었다. 즉석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공격적이거나 기발한 말을 뽑아내지는 못하지만 내가 당한 일 앞에서 울지 않았다. 정당히 받아야 할 내 몫의 존중을 요구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를 더 좋아할 수 있었다.  


체리야, 잘했어. 너 오늘 잘했어. 생각하면서 잠들었다.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


검진 센터 올라가는 길
날씨만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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