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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Dec 25. 2021

나는 왜 화가 났을까?

學而篇 (2)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심란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5명 정도의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는데, 매달 1회 정기모임을 가진다. 모임 날짜는 단톡방에서 대화로 가급적 모든 회원이 참석할 수 있는 날로 정해왔다. 농사일이 집중되는 시기, 일손이 들어오는 때 등 불규칙적인 영농 리듬과 아이를 돌보거나 시어른을 모시고 있어 생활의 변수가 많아서였다.


이번 1월 모임도 그렇게 12월 초부터 언제로 하면 좋을지 의견을 주고받았다. 얼추 가닥이 잡혀가고 있어 남은 한 명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그날은 다 안 될 건데, oo모임 있거든요."

"예?"


그제야 알았다.

3명의 회원이 다른 독서모임에 참가하기로 한 날짜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1월 모임 날짜에 관해 의견을 물었을 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당혹감과 불쾌감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


1. 다른 독서모임에 회원의 과반 이상이 참여한다는 것을 나만 몰라서?

2. 그 독서모임에 나는 초대하지 않아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의 2가지 이유는 아니었다.

첫 째는 관심과 사랑이 즐겁고 행복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 외에 다른 것은 안 된다는 집착을 가진 정도의 나는 아니다. 둘 째는 제안 여부와 상관없이 나의 현재 상황이 그 독서모임에 참여할 시간과 여력이 없다. 현재 이끄는 독서모임을 잘 이끌어가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화가 났을까?

황당함과 당혹감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니 답이 떠올랐다.

1월 모임 날짜를 정할 때에 공통의 약속이 있었다면 먼저 알려주면 되는 거였다. 별일 아닌 것을 최소한의 예를 지키지 않아 상대로 하여금 갖은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들이 새로운 모임에 마음이 기울어 기존의 모임을 소홀히 대한다는 느낌을 받아야 했고, '다 안 될 텐데'라는 말에 묘한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행동을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으로 일어난 나의 모든 불쾌감은 그러니 나의 오해인 것이다. 그들의 진의와 사정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어도 봤다. 그녀가 다른 누군가로부터 내게 전달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 다른 누군가에게도 물어봤지만, 내가 알고 있을 줄 알았다는 말만 들을 뿐. 정확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 각자가 서로에게 불편한 말을 미루었던 것일지도.




仁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형태.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사회와 상황에 맞춰 적정한 형태를 구현한 것이다.


제 때에 표현하지 못한 것, 알리지 못한 작은 禮가 불필요한 오해와 감정을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많은 관계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가깝거나 친근한 사이일수록 '다 알고 있을 줄 알았지'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자신이 행하지 못한 禮에 대한 이유를 상대에게 슬며시 미룬다.


그녀의 그 말을 들었을 때, '아, 그렇군요.'라며 모른 척 아는 척 넘어가도 되는 것을 나는 구태여 집고 넘어갔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풀지 못한 오해의 뭉치가 단단히 마음에 박히면 아예 관계를 덜어내 버리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것은 둥글둥글 넘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좀 더 침착하고 차분하게 다루지 못한 점이다.

(아직도 인간 되려면 멀었구나)


혼자 서지 못하니 서로 기대어야 비로소 사람(人)이 되고, 두 사람이 모이면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기울지 않는 관계가 되니 仁이 생겨났을 것이다. 마음, 생김새, 욕망이 제각각이니 적절한 기준점으로 禮가 있다. 독심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우리들의 예를 찾아가나. 대화와 소통, 진부하겠으나 그것 말고는 없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조금 화를 진정하고,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것.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유자왈 예지용 화위귀)
 유자가 말했다. 예를 실천하는 데에는 조화로움이 중요하다.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선왕지도 사위미 소대유지)
선왕의 도도 이 조화로움을 소중하게 여겼고, 크고 작은 일들이 다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유소불행 지화이화 불이예절지 역불가행야)
하지만 조심해야할 것은 조화로움만 알고 예로 조절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헛일이다.

學而篇 12장
<논어집주>, 성백효역, 전통문화연구회
<논어>, 조광수역,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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