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진단, 다른 이야기
“원장님, 초음파에서 난소에 물혹이 많다고 하던데요.”
“PCOS 진단을 받았는데 꼭 치료해야 하나요?”
“생리는 하긴 하는데, 옛날에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다. 그런데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같은 사람인데 병원마다 진단이 다르기도 하고, 예전에는 PCOS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렇다고 하거나, 반대로 "그때는 그렇다고 했는데, 지금은 아니라네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PCOS는 진단 기준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진단 기준만 해도 세 가지가 있고,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도 진단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보수적인 기준이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제시한 이 기준은 PCOS를 ‘배란 장애 + 남성호르몬 과다’가 함께 있을 때 진단한다.
생리가 들쑥날쑥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
여드름, 다모증, 혈액검사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높은 경우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초음파에서 난소에 다낭성 물혹이 보이더라도 생리가 규칙적이고 남성호르몬이 정상이면, PCOS로 진단하지 않는다. 질환의 핵심적인 병태생리에 충실하지만, 다소 좁은 스펙트럼이라는 한계가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가장 포괄적인 기준이다.
유럽 생식의학회(ESHRE)와 미국 생식의학회(ASRM)가 공동 제안했다. PCOS 진단을 위한 세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희발배란 또는 무배란
임상적 또는 생화학적 남성호르몬 과다
초음파상 다낭성 난소 소견
이 중 두 가지 이상이 충족되면 PCOS로 진단한다.
예를 들어, 생리가 불규칙하지만 남성호르몬은 정상이더라도 초음파에서 다낭성 난소 소견이 있다면 진단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 기준을 적용하면 더 많은 여성이 PCOS로 진단받게 된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쓰는 기준이기도 하다.
“안드로겐 과다가 핵심이다”라는 입장을 강조하는 기준이다.
AE-PCOS Society는 남성호르몬 과다 없이 진단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다음 두 가지 조건을 반드시 만족해야 한다.
임상적 또는 혈액검사상 남성호르몬 과다
배란장애 또는 다낭성 난소 중 하나
즉, 남성호르몬 과다가 없다면 아무리 생리가 불규칙하고 물혹이 많더라도 PCOS로 보지 않는다.
이 기준은 단순한 진단보다는 질환의 원인과 경과, 치료 방향을 이해하는 데 더 적합한 틀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나는 어디에 해당할까?
진료실에서는 보통 로테르담 기준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가장 포괄적이고, 다양한 임상 양상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단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 남성호르몬이 실제로 얼마나 높은지, 인슐린 저항성은 있는지, 부신이나 난소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더 정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진단 기준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건,
“왜 내 몸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어떤 기전을 중심으로 치료를 설계해야 할까?”
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2장의 각 단락에서, 공식 진단 기준 너머의 관점,
임상 현장과 기능의학 분야에서 실용적으로 나누고 있는 네 가지 PCOS 유형을 소개하려고 한다.
인슐린 저항성형
염증형
피임약 중단형 (Post-pill type)
부신형 (Adrenal type)
물론 이 분류는 아직 학술적으로 공인된 기준은 아니다.
Rotterdam, NIH, AE-PCOS Society 어떤 기준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진료 현장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보다 보면,이 네 가지 렌즈로 보는 것이 훨씬 실용적일 때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 진료실에서 만난 많은 환자들은 이 중 한 가지 타입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겹쳐져 나타난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네 가지 타입을 각각 소개하되, 그 사이 회색지대도 함께 설명하려 한다.
PCOS는 복잡하다. 하지만 내 몸이 어떤 상태에 더 가까운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치료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진단보다 더 중요한 이유다.
※ 참고로 덧붙이자면,
지금까지 발표된 주요 의학 기준들—예를 들면 Rotterdam(2003), NIH(1990), AE-PCOS Society(2006) 기준—에서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을 '타입'별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들 기준은 ‘어떤 증상이 몇 가지 충족되었는가’에 따라 진단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타입은 인슐린 저항형, 저 타입은 염증형'처럼 나누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다 보면, 그런 기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최근 기능의학, 자연의학 분야에서 제안되고 있는 ‘4가지 PCOS 유형 분류’를 참고하고 있다. 이 접근은 Dr. Lara Briden, Dr. Fiona McCulloch 같은 여성호르몬 분야의 전문가들이 교육용으로 소개하는 방식이며, 아직은 학계의 공인 기준은 아니지만, 환자 상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