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대사, 유전, 염증까지… 난소가 말하는 몸의 복잡한 신호들
PCOS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내분비 질환이다. 그 원인을 단일한 요소로 설명하기가 어렵고,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의대생 때 배웠던 것과는 달리, PCOS는 단순히 '난소에 물혹이 많이 생기는 병'이 아니다. 유전자, 호르몬, 환경 등 다양한 요인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만들어내는 복잡한 증후군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PCOS 환자 한 명 한 명의 상태가 다 다르고, 치료 방법도 개인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 진료실을 찾는 여성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PCOS 진단을 받았어요”라고 말한다.
“초음파에서 난소에 물혹이 많다는데요”,
“피검사에서 남성호르몬이 높다네요”,
“다이어트를 해도 체중이 안 빠져요.”
PCOS는 흔하지만, 말처럼 단순한 질환은 아니다.
진료실에 앉아 마주한 이 복잡한 증후군의 원인을 설명하려면 종종 나도 숨을 한번 고르게 된다. 단순히 ‘난소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복잡한 퍼즐을 이해하기 위한 여섯 조각을 설명해 보려 한다.
여성의 호르몬 시스템은 오케스트라처럼 정교하게 움직인다.
시상하부에서는 **생식선자극호르몬 분비호르몬 GnRH(Gonadotropin-Releasing Hormone)**라는 신호를 일정한 간격으로 ‘펄스’ 형태로 분비하고, 이 신호는 뇌하수체를 자극해 **LH(황체형성호르몬)**와 **FSH(난포자극호르몬)**의 분비를 조율한다. 이 두 호르몬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 난소는 매달 난포를 키우고, 배란을 준비한다.
그런데 PCOS 여성의 경우, 이 GnRH의 분비 리듬이 정상보다 빠르게 반복되며 뇌하수체는 LH를 더 많이, FSH는 상대적으로 적게 분비하게 된다. 이런 불균형은 난포의 성숙을 방해하고, 대신 난소에서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결국 생리불순, 배란장애, 여드름, 다모증 같은 증상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생리 문제 같지만, 그 이면에는 시상하부부터 난소까지 이어지는 복잡하고 민감한 호르몬 회로의 미세한 어긋남이 자리하고 있다.
호르몬 이상 뒤에 숨어 있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 있다. 바로 인슐린 저항성이다.
겉으로는 혈당이 정상이지만, 몸속에서는 인슐린이 과하게 분비되고 있는 상태. 이 과도한 인슐린은 난소를 자극해 남성호르몬 생산을 촉진시키고, 동시에 간에서 **SHBG(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을 억제해 유리 안드로겐 농도를 높인다.
비만이 있으면 이 문제는 더 악화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른 체형의 여성에게서도 인슐린 저항성은 꽤 자주 발견된다. 겉모습만으로는 절대 판단할 수 없는 숨은 메커니즘이다.
인슐린 저항성은 다낭성 난소증후군의 원인으로 중요하기에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많은 분들이 묻는다.
“물혹이 많으면 무조건 병인가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난소는 단순한 기관이 아니라, 몸 전체의 상태를 반영하는 민감한 거울’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PCOS에서 난소의 변화는 단순한 구조적 이상이라기보다는 **기능적 불균형(functional dysregulation)**의 결과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배란장애이며, 이는 난포가 성숙하지 못하고 배란 직전 단계에서 멈추어 버리는 ‘미성숙 난포 축적’의 형태로 나타난다.
난포의 발달은 **FSH(난포자극호르몬)**의 적절한 자극과 함께, **LH(황체형성호르몬)**와 인슐린, 안드로겐, 에스트로겐 등 다양한 호르몬들의 복합적 조율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PCOS에서는 LH가 상대적으로 과도하고, FSH는 부족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지배난포(dominant follicle) - 배란이 되기 위해 커지는 난포**로의 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5~9mm 크기의 미성숙 난포들이 난소 피질에 줄지어 존재하게 되고, 이것이 우리가 초음파에서 보는 진주 목걸이 처럼 난포가 줄지어 있는 듯이 보이는 '다낭성 난소(polycystic ovary)'의 모습이다
배란하지 못한 난포들이 쌓여 다낭성 난소의 모습을 만들고, 난소는 더 많은 안드로겐을 분비하게 된다.
이처럼 난소는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몸 안의 교란된 메시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기관이다.
뇌에서 오는 신호, 인슐린의 영향, 스트레스 그리고 체내 건강 상태에 따라 난포 발달이 멈추고 배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PCOS는 가족력이 자주 보이는 질환이다.
“엄마도 생리가 들쭉날쭉했어요”
“언니도 시험기간마다 생리를 몇 달씩 안 했대요.”
특정 유전자의 이상이 직접적으로 PCOS를 일으킨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LH 수용체, 인슐린 수용체, 난소 반응성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관여하고 있다는 연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
누군가는 조금만 체중이 증가해도 생리가 멈추고,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곧바로 피부에 반응이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일상은 호르몬에도 흔적을 남긴다.
불규칙한 수면, 가공식품 위주의 식사, 만성 스트레스, 운동 부족은 모두 PCOS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게다가 **환경 내분비계 교란물질(예: 비스페놀 A, 프탈레이트)**은 화장품, 플라스틱, 식기류를 통해 체내에 흡수되어 난소 기능과 대사에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내가 처음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을 때 보다 요즘 PCOS가 늘고 있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우리 삶의 리듬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저등급 만성 염증(low-grade inflammation)**이 PCOS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 되고 있다.
CRP, IL-6와 같은 염증 마커가 올라간 상태는 인슐린 저항성과 연결되고, 안드로겐 분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장내 미생물 불균형, 고당 식단,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적 자극도 염증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PCOS는 단순한 생식질환이 아니라, 전신 대사와 면역 반응까지 아우르는 내분비 질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생리가 불규칙한 사람들이 진짜 PCOS인 건 아니라는 거다. PCOS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질환들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갑상선 기능 저하증, 고프로락틴혈증, 선천성 부신 과형성증 등은 PCOS와 유사한 임상 양상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철저한 병력 청취, 신체검사, 호르몬 검사, 영상 검사 등이 필요하다.
다음 장부터는 각각의 PCOS 원인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인슐린 저항성이 PCOS에 미치는 영향, 부신과 PCOS의 특징, 피임약과 PCOS의 관계, 그리고 만성 염증이 PCOS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복잡한 것일수록 더 잘게 쪼개서 하나씩 짚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내 몸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난소에 물혹이 많으니까 PCOS인가요?”, "생리를 안 하는데 PCOS 인가요? "라는 질문에서
“내 몸의 인슐린은 어떤 상태일까?”,
“요즘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있나?”,
“내 생리 주기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지?”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자.
참고문헌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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