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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간다고 전해라
구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작사: 김종완, <백세인생>
백세인생 노래 가사가 재미있다고 화제가 되었던 게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이제는 120세 시대를 논하는 콘텐츠들도 가끔 보게된다. 그리고, 조금 막막하기도 하다.
고등학생 때는 나의 인생을 피자에 비유해서 생각하곤 했었다. 피자는 보통 8조각인데, 80살 정도까지는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다면 10대였던 나는 여태 2조각 째를 먹고 있는 셈이니 아직 인생이 한창이나 남았다고 여길 수 있었다. 그렇게 '절대 늦지 않았다!', '나에게 가능성은 무한하다!' 라고 용기를 가졌던 것.
작년엔가 김미경 대표님께서 저서 <김미경의 마흔수업> 발간 후 강연하셨던 내용을 보면 인생시계라는 개념을 들어 100세를 24시간에 비교하신다. 그렇다면 나의 시간은 아침 9시를 갓 넘겼다. 피자 반판 다 먹었어야 할 나이, 아니 실제로 반판 정도는 먹어치운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아침 9시라니.
내가 FIRE족이 되리라 다짐한 것은 정확히 2020년 6월이었다. 그 때에도 파이어란 말이 국내에 이렇게 유행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인생에서 버릴 수 있는 것 중 가장 버리고 싶은 것은 "회사 생활"이었다. 직업 생활은 좋았지만, 회사 내에서의 조직 생활은 싫었다. 그리고 회사원이 아니라면, 이제 그만 서울을 떠나도 되었다. 매달 생활비 정도는 어딜 가서 무얼 해도 해결이 될 것으로 보였다. 50세 정도까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캐릭터가 나와 흠칫 했었다―을 줄곧 해온 것도 빠른 은퇴를 계획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선택하면서 그 생각은 떠나보냈고, 백세시대를 천천히 받아들이면서 조기 은퇴의 계획도 불투명해졌다.
조기 은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두 번째 직업으로 만들어 노년을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직장 생활을 유지하면서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해서 직업 활동을 할 정도의 수준으로 높이는데에 5년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활동으로 고르고 싶다고 생각하니, 그게 과연 무엇인지부터 알아내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그렇다보니 취미를 선택함에 있어, 두 번째 직업에 대한 갈망이 아주 자연스럽게 엉겨붙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의 수익 창출까지 생각하면서 취미를 고르자니 그 의도가 변질되어 버린다. 구체적으로 어느 세부 분야를 특화해야 수요가 있을지, 플랫폼을 어떻게 해야할지, 저작권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늦게 시작해서는 돈 벌기가 쉽지 않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쓸데없는 걱정들이 먼저 앞서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일을 하자는건지 취미를 가져보자는건지 알 수 없어진다. 취미를 고르는 데에 있어서는 두 번째 직업을 배제해야만 한다는 결론이다.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일하셨다는 이근후 교수님은 '의무와 책임이 없는, 재미있는 무언가'를 찾으라고 하셨다. 나는 두 번째 직업보다는 취미로의 역할만을 충실히 할 취미를 찾는 데에 열중하기로 해본다. 물론 46세 즈음 두 번째 직업을 가지고 싶고 그것을 위해 5년을 준비해야 한다면, 지금부터 새 직업을 탐색해보는 것이 시기 상으로는 적절하다. 하지만 여태 일에 매진해서 살았는데, 제대로 된 취미도 없는 채 바로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하며 또 일에 빠져 살고싶지는 않다. 취미를 취미로 보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