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지다.
[이미지 출처: 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전시 <이계진: 우연한 삶> 포스터. 전시는 8월 18일까지이다.]
매주의 루틴 - 모닝페이퍼(매일), 아티스트데이트(1시간), 산책(20분×2회)
모닝페이퍼를 쓰다보면 '내가 이 일을 이렇게까지 생각했었나?' 하는 느낌의 문장들이 튀어나오곤 한다. 이렇게까지 깊게 파고들어도 되나, 하루를 이렇게 시작해서 오늘 나의 정서는 괜찮은 건가, 하고 걱정이 되지만 노트를 덮고 나면 그 깊은 생각들은 함께 닫히고 일상으로 완전하게 돌아오게 된다.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다.
아티스트데이트 두 번째 장소는 공립미술관, 여러 개의 작은 전시가 무료인 곳이다. 사실 나는 미술관, 박물관을 1시간 이상 보면 급피로해져서 전시 관람은 나와 잘 맞지 않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무료이고 작으니 부담없이 한 번 가보았다. 전시실에는 구역마다 두 세 분이 상주해계셨고 나는 조용히 투명인간처럼 다녔다. 그러다 첫 전시관에서 적극적으로 설명해주시는 한 분을 마주한 후, '아, 이 분들도 본인의 업무를 하고 계신거니, 관람객과 상호작용이 있어야 더 보람이 있으시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에서 나오면서부터는 계신 분들께 먼저 눈인사나 감사 인사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 데이트 일정도 미리 잡아두었다.
산책은 아예 하질 못했다. 주말엔 장거리 일정이 있었고 이후엔 코로나에 골골거린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계속 신경은 쓰고 있었지만 날씨를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결국 나가질 않았다.
7~9세의 삶을 회고했다.
지난 번에 비하면 기억나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키워드를 꼽자면 가족과 음악.
아빠와 아빠 지인분의 대화 자리에 끼어있다가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대체 그 어린 나이에 그 대화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어린 내가 느꼈던 엄마의 슬픔, 형제들과의 거리감 등 모든 위화감들을 '이복형제'라는 하나의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기 시작한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막내언니와 나 사이에 무언가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어도 참았던 것 같고 그런 순간들이 너무 슬펐던 것 같다. 어쩌면 '알아서 잘하는 말 잘듣는 아이'가 된 것도 이 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있는 테이프 중에 푸른하늘 6집 <Final Sound> (1993)을 자주 들었는데, 이 중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나의 음악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작점이 된다. 나는 그 곡을 악보 없이 따라치기 시작했는데, 완벽하게 연주하고 싶어서 이걸 악보로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큰 보표로 옮길만한 능력은 아직 없을 때였다.
불현듯, 내가 10대에 하늘을 유난히 좋아했던 이유는 푸른하늘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오랜만에 이 앨범을 다시 들었는데 수록곡의 멜로디와 가사까지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서 아주 신기했다.
이 시기의 학원, 유치원, 학교 선생님들의 영향도 상당히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웃으며 이해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 지나치지 않나 싶게 엄하게 다스린 선생님 등, 그 선생님, 하면 딱 그 장면만 떠오른다. 그 때 잘못했다고 느낀건 이후 절대 하지 않았다.
이 나이대는 스펀지 같은 나이가 아니었나, 새삼 보육과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출근 후 장점 쓰기를 시작했다.
나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는 활동을 리스트업하고, 그 중 하나를 골라 일과에 포함하였다. 나, 신랑, 양가 부모님, 그 날 회사에서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의 장점을 세 개 씩 적어보기. 출근 이후 오전 시간대에 5분 정도 내어 하고 있다.
김주환 교수님의 '존중' 관련 강의를 듣다가, 나는 나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긍정적으로 보는 데에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는 판단을 스스로 했기 때문에 장점쓰기가 특효약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을 보았을 때 좋은 점만 생각하고 싶다. 말과 행동을 좋게 이해하고 싶다. 칭찬도 많이 하고 싶다. 그렇게 변하고 싶다.
20분 동안 집 안의 물건을 버리는 시간을 가졌다.
집에서 평소 잘 앉아있지 않는 공간 몇 곳에 앉아 그 관점에서 집을 바라보면서 가치있어 보이는 것과 바꾸고 싶은 것들을 구분해보았다. 그리고 20분 동안 버릴 것들을 걷어내었다. 이사하면서 많이 버렸지만, 그래도 그 새 버릴 것들이 눈에 띄어서 여기 저기 샅샅이 살펴보며 정리를 하였다. '내가 이런 것도 가지고 있었지' 하고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옷은 정말 좀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성: 바로 그 곳에, 마침 그 때에, 우연히 있는 듯 보이는 것
사람들과의 유대감, 우연의 수용, 존중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면서 모닝페이퍼에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쓰게 되는 한 주였는데, 아티스트데이트를 통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아무 정보 없이 방문했던 미술관의 첫번째 전시에는 워크샵으로 만난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 탄생한 작품들이 있었다. 작품을 만든 과정을 영상을 통해 보면서, 내가 저런 활동을 했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상상하며 유대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세번째 전시는 우연과 사람 간의 관계를 그린 작품들이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인상깊었는데, 연인, 가족 단위로 함께 행복해보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대부분의 작품에 표현되어 있어서 이것이 나에게 긴 여운을 주었다. 함께하는 것, 연결되어 있는 것 그리고 그 속의 수많은 우연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아파서 누워있으면서 할만한게 없던 날,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드라마 요약본을 시청했는데 '나의 해방일지' 1~4편이었다. 그 유명한 대사, "나를 추앙해요"를 전체 맥락을 이해하며 제대로 마주하게 되어, 추앙을 respect(존중)의 개념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요즘 가족을 사랑하는 것보다 존중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존중으로 관계는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많아 벅찬 한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