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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10. 2022

그저 잘하고 싶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부쳐

정말이지 미루는 데 도가 텄다. 지난 주말까지 파이썬 코드를 '필사'해서라도 익히리라 다짐했던 머신러닝 과제가 또다시 이번 주 투두리스트에 올랐고, 진즉 부쳤어야 할 우편물은 반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간신히 내 손을 떠났으며, 제목과 개요만 써둔 채 발행하지 못한 글이 어느덧 20편을 넘어섰다. 그렇다고 이러한 습성을 '태생적인 게으름'이라 눙치기에는 나름 억울한 구석이 있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그냥 있지' 않는다. 성장 강박이 인이 박여 무어라도 배우고 실천해야 초조하지 않으니까.


방 안에 덩그러니 세워둔 빈 병 2개가 나의 생활을 잘 말해준다. 하나는 박카스 병이고, 하나는 소주병이다. 마땅히 깨어있어야 하는데 취해있고 싶은 경우가 많다. 반대로 취한 상태에서는 어떻게든 깨고자 카페인의 힘을 빌린다. 현재의 고달픔을 미래로 옮겨 분산을 꾀하고, 막상 미래가 닥치면 미처 돌아오지 못한 정신을 서둘러 챙기는 것. 이 모든 게 미루는 습성의 일환이라고 본다.


나는 마치 미래가 성공을 약속할 것처럼 미룬다. 데드라인이 임박하지 않은 한 미루는 순간에 스파크처럼 이는 낙관이 있다. 이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한꺼풀 벗겨보면 결국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깔려 있다. 결과와는 별개로 나는 보통의 경우 전자와 후자의 비율이 약 8:2 정도 되는 듯하다. 설사 안일함을 떨쳐내야 더 많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 하더라도, 당장 이 태도를 고쳐낼 에너지가 지금 나에게는 없다.


얼마 전, 운전하며 8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나의 바로 앞에 가던 차량에서 열린 창문 틈으로 흰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내렸다. 그 차는 그냥 달릴 듯하다가 속도를 급격히 줄이며 멈춰섰고, 그 탓에 뒷차들은 급정거를 하느라 각자 앞차가 돌린 핸들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다. 차들이 멈춰선 모습을 위에서 보았다면 지그재그 형상을 띠어 꼭 나뭇가지를 연상케 했을 것이다. 이내 조수석에서 여성 한 분이 내려 떨어진 가족을 향해 내달렸고, 가까스로 연약해보이는 그것을 품에 안았다.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더 이상, 도저히 미룰 수 없는 일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들이닥치는 요즘, 부쩍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행히 '내 편'이랄 것들이 있다. 《도파민네이션》과 《주의력 연습》은 최근 나에게 적잖은 도움을 준 책이다. 요컨대 의학, 뇌과학, 심리학을 총동원해 고통을 관리함으로써 주의력을 온전히 발휘할 방법을 안내한다. 이런 인사이트를 접하면 결국 '나의 적은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로 안도감이 든다. 나는 나만 이기면 된다. 원래부터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시간을 꿋꿋이 버티면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경험에 비춰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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