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30분 점심시간. 환절기를 지나는 직장인들은 부쩍 날씨로 운을 뗀다. 대부분 옆 사람이 말한 표현을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옮긴다. 그만큼 회사는 기상을 느끼는 자신만의 감각에 집중할 여유가 없는 이들이 모인 공간이던가. 꼭 표현이 신선할 필요는 없겠으나 누군가 "춥다"고 이야기하면 "추워" "그러네"라고 이어받는 광경이 자주 펼쳐져 기시감이 든다. 점심에 팀원 L, H와 닭곰탕을 먹으며 역시나 날씨를 말하다가 문뜩 이런 질문이 떠올라 그대로 던져봤다. "어렸을 적 썼던 일기에는 왜 꼭 날씨를 적어야 했지?"
우리 팀에서는 독보적으로 감성적인 성향을 가진 나는 이렇게 추측했다. "하루를 돌아보며 당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상 상태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일 듯." 대부분의 상황에 이성을 미덕으로 삼는 두 사람은 "미루다가 몰아서 쓰지는 않는지 감시하기 위한 장치겠죠"라고 답했다. 내 것도 그들 것도 시원찮은 답변이었다. 이내 대화는 업무 리포트 양식에서 '일기장의 날씨 칸'처럼 왜 있는지 알 수 없는 정보가 있는지 검토하는 화제로 이어졌고, 일 이야기가 나오면서 들뜬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았다.
평소 답 없는 문제와 씨름하는 것을 좋아한다. 답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찾는 과정을 몰입과 상상으로 채우는 데서 오는 특유의 즐거움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난제에 도전하는 수학자들의 일상이 궁금하다. 평소 난제가 풀렸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보면 자세히 읽어보게 되는데, 사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난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수학자가 가졌던 마인드 셋이나 몰입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기사는 백이면 백 수학자의 출신이나 난제를 풀어낸 방식에 집중한다. 어차피 수학 풀이를 기사에 담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대략 어떤 개념을 활용했는지 언급하는 데 그칠 뿐이다. 기자들이 답을 찾은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터다.
시험과 달리 생활에는 마지막 문제가 없다. 풀어도 풀어도 계속해서 능력 밖의 문제가 나를 기다린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한 번 한 번의 답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이 되는 것이다. 더 잘 살 수 있는 자신이 되는 데 있어서 답이 없는 문제에 체력과 정신력을 안배하며 부딪치는 노력이 필수적인 이유다. 이런 생각만으로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