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뇨뇨 May 26. 2024

재미없으면 억지로 읽지 말아요, 우리

재미로 포장된 지식

출판 시장이 최악이란다. 

책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고 있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잔뜩 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정신적 만족감이 차오른다.

큰 맘먹고 책을 펼쳤지만 우리 뇌는 자꾸 딴짓을 원한다. 

세탁기를 돌릴 때가 안 됐나? 밥은 뭐 먹지? 친구 뫄뫄가 추천한 넷플 미드가 그리 재미있다는데... 김대리는 왜 그딴 말을 해서 사람 속을 뒤집지? 최애 쇼케 날짜가 언제였더라...

그리고 책을 덮는다.

몇 주가 흘러 쌓인 책들을 보며 또 죄책감을 느낀다.






뇌는 극한의 효율을 추구한다.

뇌의 크기만 따지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한 네안데르탈인보다 작다.

하루종일 일하고 공부하고 집에 오면 뇌는 더 이상의 노동을 거부한다.

뇌는 쉬어야 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일과 후 집에 돌아와서 읽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책을 가장 안 읽었던 시기는 회사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반면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시기는 취준생 시절이었다.

세계적인 석학이라거나 저명한 인사들은 책을 끼고 산다고 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하지는 않는다.  


뒷 내용이 궁금해서 페이지가 슥슥 넘어가는 책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하겠지만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허우적대는 건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고, 뇌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억지로 읽으려고 하지 말자.






나는 지독한 스토리덕후로 평생 문학과 대중소설만 읽었었다. 

그게 재미있었으니까.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와 그 속에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건들이 너무 기대되고 짜릿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박경리 토지를 완독 한 20대에 주변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주었지만 재미있어서 읽었을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비문학 장르에 빠져들었다.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얻는 새로운 지식들로 가슴이 벅차오르고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한 때 유튜브 지식 채널에 빠져서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었던 적이 있었다.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지식 영상들을 닥치는 대로 보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아있는 지식이 거의 없다.

신기하고 놀라워서 볼 때는 오오 대단해!라고 감탄했는데 단편적인 몇몇 개를 제외하고는 본 적도 없었던 것처럼 휘발되어 버렸다. 

500시간은 넘게 때려 박았을 텐데...내 시간...

심도가 있지 않아서 그런지, 한꺼번에 들어온 정보의 양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마 내 뇌는 중요치 않은 정보라고 여기고 쓰레기통으로 던졌을 것이다.






수학과 과학을 극도로 혐오했던 내 입장에서 비문학, 특히 과학장르의 책을 읽는 건 공부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인지 머리에 많이 남고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지만 직장을 다녔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얻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

이 재미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책 자체가 쉽지 않으니 리뷰로 정리해도 내용이 많고 어렵다.

리뷰어 입장에서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에 자연스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욕심을 버리고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서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쓸 글이 해당 책의 주제와 관계가 없는 가십성으로, 책에서 비중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지식의 한 조각임은 분명하다.


지식도 재미있어야 한다.

책도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를 느끼는 건 개인의 경험과 성향에 따른 주관적인 관점이라 아무리 내가 재미있다고 해도 보는 사람은 재미를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것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 노잼 사람으로 손가락질받을 수도 있겠지만 주관적인 거니까 양해 부탁드린다.

거대 담론이나 주제와 동떨어지더라도 재미로 포장된 지식을 우리 뇌가 쓸모 있는 정보로 여기고 해마에 고이 모셔주기를 바라야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