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상식이 뭘까?
상식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내리는 추론이다.
이 추론의 근거가 바로 생각의 프레임이다.
그래서 행동이나 말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상식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무의식적으로 내린 결과일 뿐이니까.
프레임은 경험과 언어를 통해 우리 뇌에 스리슬쩍 침투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라고 말한 순간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은 코끼리를 떠올를 것이다.
이미 프레임의 마법에 걸린 셈이다.
게다가 우리 뇌는 부정문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고전 물리학의 아버지이자 미적분을 만들어 전국의 모든 수포자들의 눈물을 쏟게 했던 뉴턴에 관한 일화다.
태양을 관찰하고 싶었던 뉴턴은 하루종일 거울을 통해 태양을 들여다봤다.
그 여파로 삼일 밤낮은 방안에 눈을 감고 쉰 이후에야 겨우 시력을 회복했다.
이때 뉴턴은 태양을 떠올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때마다 눈앞에 태양이 떠올라서 눈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고 한다.
우리가 헤어진 연인이 생각나서 연락하지 말아야지 하다가 결국 '자니...?'라고 연락해 본 적 다들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행동이니 자책할 필요가 없다.
이게 다 프레임에 빠져 허우적 대면서 부정문은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못하는 뇌 때문이니까.
결국 사람은 프레임 안에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진실과 프레임이 맞지 않으면 진실이 튕겨져 나온다.
프레임의 힘은 정말 막강하다.
프레임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 또한 뇌 때문이다.
우리 뇌는 전자기판 회로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빛이 회로를 타고 움직이는 것처럼 생각의 길이 생긴다.
비슷한 사안에 대해 늘 비슷하게 생각하다 보니 생각의 길은 특정 패턴을 만든다.
패턴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된다.
생각의 패턴은 계속 S자를 그리는데, 진실이라는 정보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S자는 잘못된 패턴이니 N자를 그리라고 명령하면 뇌는 주저 않고 거부한다.
그래서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튕겨져 나오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었다.
오바마 케어와 저렴한 건강보험법 중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 묻는 설문조사였다.
압도적 다수의 미국 시민들이 저렴한 건강 보험법을 선택했는데,
재미있는 건 오바마 케어의 공식 명칭이 저렴한 건강 보험법이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인 오바마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공화당에서 저렴한 건강 보험법을 오바마 케어라고 지칭하고,
언론에서 연일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내니 부정적인 프레임에 갇히는 결과가 나왔다.
이 사람들에게 오바마 케어와 저렴한 건강 보험법이 같은 거라는 진실을 알려줘도 오바마 케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튕겨져 나와버리니까.
프레임의 위력을 알 수 있는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자.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이라크의 지도자였던 사담 후세인이 빈 라덴을 숨겨주고 있고,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공격을 감행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빈 라덴 세 요소를 하나의 적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을 짠 것인데,
이게 너무 잘 먹혀서 이라크 전에 대한 당위성이 만들어지고 군인들이 나라를 테러로부터 지킨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하지만 실상은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은 사이가 매우 안 좋았고,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도 없었다.
이라크 국민들만 극심한 피해를 겪은 것이다.
미국은 이런 식의 프레임을 정말 잘 구성한다.
냉전 시기에 공산 국가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자유의 수호자 이미지 메이킹이 전 세계적으로 먹혔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당시 공산국가의 위협이 높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이미 많이 쪼그라든 상태였다.
이 프레임을 구성한 게 유명한 브랜딩 전문가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상식이 없는 사람은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프레임이 잘못되었다고 백날 얘기한들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프레임은 공고해지고 진실은 튕겨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사람들을 어떻게 잘못된 프레임에서 끄집어내냐 하면
상대를 존중하고, 프레임을 재구성하고,
가치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신념을 말하라 고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에서 얘기한다.
뭔가 해결책이 추상적이고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상대가 어떤 프레임에 갇혀 있느냐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동성애 반대론자에게는 결혼 상대를 선택할 자유라는 프레임으로 바꾸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의 프레임을 가진 사람을 쫓아다니며 프레임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는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냥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거리를 두는 편이 정신 건강을 위해 나은 편이 아닐까.
물론 본인이 사회 운동가라거나 말의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도하는 게 옳겠지만.
우리 뇌가 그릴 수 있는 패턴은 100조 개에 가까운데 나는 과연 그중 몇 퍼센트나 쓰고 있을까.
해오던 대로 생각하면 생각이 굳어져 점점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관점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걸 지양하면 내 뇌가 새로운 패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내용 중 참고 도서
뉴턴 일화 - 칼 세이건 '코스모스'
뇌의 패턴화 - 한나 크리츨로우 '운명의 뇌과학'
미국의 영웅 브랜딩 - 자미라 엘 우아실, 프리데만 카릭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