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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Jun 25. 2024

소리 없는 절정

침팬지 폴리틱스

'섹스를 통해 쾌감을 얻는 건 인간이 유일하다'

나도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인간 외의 동물들은 종족 번식이라는 대의에 맞춰 유전자에 새겨진 대로, 본능에 따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침팬지 폴리틱스는 침팬지의 권력 투쟁을 그린 책이지만 침팬지의 성생활에도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조명되고 있지 않은 터라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침팬지의 성관계는 발정기인 암컷에게 끌린 수컷이 당당하게 다리를 벌리고 발기된 성기를 과시하면서 시작된다.

암컷은 수컷이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고, 마음에 안 들면 거부한다.

기본 메커니즘은 이런데 조금 다른 경우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여느 동물 집단처럼 침팬지들도 우두머리는 당당하게 섹스할 권리를 누린다.

그러면 다른 수컷들은 손가락을 빨고 있어야 하느냐,

그렇지는 않다.

밀회를 하면 된다.

우두머리가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슬그머니 섹스를 즐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암컷 침팬지 중에 절정에 달하면 쾌감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르는 개체가 있는 것이다.

도둑 섹스를 하다가 들키면 우두머리의 분노를 오롯이 다 받아야 할 처지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밀회를 즐기는 암컷 침팬지는 절정에 달했을 때,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입모양은 분명히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암컷의 쾌감은 커진 눈과 벌린 입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둘은 만족스러운 섹스를 즐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자 헤어진다.


이건 만족스러운 섹스를 했을 경우이고,

암컷이 불만족한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수컷은 암컷의 불만족을 해결해 주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암컷의 질 속에 집어넣는다.

어떻게든 암컷을 만족시켜 주려는 수컷의 노력...

가상하다.


침팬지 세계에서 섹스의 주도권은 암컷이 쥔다.

암컷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관계가 진행되는 것이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발정기라고 아무 수컷에게나 다 허락하는 게 아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동물에 빗대어 비하하는 표현이 많다.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요즘에는 인간이 동물보다 더 사악하고 염치없으며 유대감도 없는 경우가 많아서 동물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암컷이 수컷에게 관계를 요구했는데 수컷이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 취향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 수도 있다.

여하튼 수컷이 거절하면 암컷의 유혹이 시작된다.

수컷의 다리를 벌리게 하고 수컷의 성기를 쪼물딱거린다.

발기하지 않은 수컷의 성기는 피부막에 싸여 있는 형태라고 하는데 암컷은 어떻게든 발기시키고 싶은가 보다.

그래도 수컷이 거부하고 피하면 암컷은 비명을 지르며 수컷의 뒤를 쫓아다닌다.

거절에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자신의 욕구를 주장하는 암컷 침팬지를 걸크러시의 표본이라고 해야 할까.

암컷은 수컷이 달래줄 때까지 쫓아다니며 관계를 요구한다.

결국 수컷이 암컷 위에 올라타서 관계하는 시늉을 하면 암컷은 만족하고 스토킹을 멈춘다.

물론 수컷의 성기는 발기되어 있지 않다.

정말 달래려는 의도만 있을 뿐이다.


침팬지들 세계에도 잘 맞는 섹스 파트너라는 게 있다.

섹스를 하는 유일한 관계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조금 더 선호할 뿐이다.

이들은 섹스를 정말 즐기면서 재미있게 한다.

파트너들끼리는 섹스 댄스라는 걸 추는데 암컷이 입을 내밀었다가 빼고 엉덩이를 내밀었다가 빼고 뒤로 빠졌다가 점프하고 난리를 치면 수컷은 장단에 맞춰서 같이 뛴다.

섹스 댄스는 두 침팬지들의 이런 모습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저자가 붙인 이름이다.

섹스 댄스로 시작해서 섹스를 하고 끝을 내는데, 전희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섹스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서로의 친밀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니까.






이 사육장에는 굉장히 특이한 암컷이 한 마리 있다.

분명 암컷인데 발정기에도 수컷을 거부하고 사육장에서 유일하게 자위를 한다.

다른 암컷이 발정기가 오면 수컷들이 그 주위에 모여서 어슬렁 거리는데, 이 암컷도 거기에 같이 낀다.

그리고 수컷이 발정기 암컷에게 올라타려고 하면 필사적으로 둘을 떼어낸다.

발정기 암컷이 틈을 보이면 냉큼 올라타 허리짓을 한다.

평소에도 암컷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수컷 무리와 어울리며,

암컷 대장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그냥 마이웨이다.


침팬지들의 개체 간 성격은 정말 다양하다.

강아지 산책 모임에 참여할 때, 모인 강아지들의 성격이 모두 다르다는 걸 알고 놀랐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강아지들도 이런데, 하물며 침팬지야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동물 개체가 많지 않아서 모를 뿐,

하이에나든 사자든 물범이든 새까맣게 모인 황제펭귄이든 모두 다른 성격과 개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침팬지들은 저마다 다른 성격에 따라 관계할 때도 조금씩 다르다.

모든 연인들의 섹스가 같지 않듯이 말이다.


귀여우면서 끈적한 침팬지들의 성생활.

욕구를 가감 없이 표현한다는 점에서 인간 세상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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