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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Jul 02. 2024

세상에 믿을 것 하나 없다

새빨간 거짓말, 통계


온갖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 사회를 살면서 쉽게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대화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뒤돌아서서는 그 사람의 말을 검색해서 믿을만한 정보인지 확인한다.

괜히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하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사고가 흘러갈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통계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책은 통계에 대한 신뢰를 무참히 박살 냈다.




OO대학교 졸업생들의 놀랄만한 소득!
충치를 23% 감소시킨 OO치약!
남자가 여자보다 목욕을 더 자주 한다는 놀라운 사실!



이런 문구를 보면 눈이 커지면서 관련 글을 보려고 터치한다.

글을 훑어보고 나면 역시 OO대학교는 공부를 잘해서 소득이 높구나, 저 치약을 사 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죄다 아무 의미 없는 통계라는 거다.


OO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소득을 조사하려면 우선 졸업생들의 연락처가 졸업할 때와 같아야 하며, 

대답을 했더라도 실제 그 사람의 소득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사람이 졸업할 때 기재된 연락처와 주소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표본 자체가 형편없이 적어진다.

소득이 적은 사람은 부풀려 말했을 수도 있고, 소득이 많은 사람은 세금 집행 기관이 무서워 줄여서 말했을 수도 있다. 

설문 조사 기관이 대답한 사람들의 소득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해당 통계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는 응답자의 '말' 밖에 없는 것이다.


프라이빗한 부분에 대한 설문 조사 역시 그렇다.

영국에서 한 설문 조사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목욕을 더 자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목욕탕 앞에 CCTV를 설치해서 누가 얼마큼 온 지 체크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에게 물어서 답을 받은 것이다.

역시 응답자의 '말'을 데이터로 쓴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일에 대한 설문 조사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편이다. 

쉽게 얻을 수 없는 정보이기 때문에 대규모로 실행된 설문 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사생활을 알게 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람들이 솔직하게 말한다는 믿음이 설문 조사에 대한 신뢰성을 올려주지만 정말 사람들이 개인적인 일에 대해 솔직할까?  


직업별 평균 성관계 횟수라는 기사의 제목을 본 적이 있다.

관심이 가지 않는 주제라 그냥 지나쳤는데, 

한 달간 평균 몇 번 성관계를 합니까?라는 물음을 받았을 때 0번이라고 하기엔 좀 그러니 2번이라고 할까...라는 대답을 충분히 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함이 미덕이라고 여기며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질문에 있는 그대로 작성하지 못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병원에서 유산소 운동을 얼마큼 하냐는 질문에 평소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만 해왔기에 0번이라고 대답하려다가 산책을 매일 하는데 이것도 유산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1번이라고 대답했었다.

응답하는 개개인의 심리 상태에 따라서 얼마든지 현실과 다른 결과가 나올 있는 것이다.


충치를 치료한다는 치약은 회계사 공증까지 받은 믿을만한 실험을 거쳤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단 12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어차피 충치가 나아질지, 나빠질지, 유지될지 세 가지 경우의 수밖에 없는 마당에 마음에 드는 결괏값이 나올 때까지 12명을 데리고 반복적으로 실험하다가 23%라는 결과가 나오니 스톱하고 쾌재를 부르며 광고를 크게 빵빵 때렸을 것이다.

광고 옆에는 항상 무슨무슨 대학교, 무슨무슨 연구소에서 실행했다거나 저명인사 누구누구가 추천했다며 사진이 크게 딱 박혀있다.

이런 광고는 현재에도 워낙 많아서 보고 흘리는 수준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인 건 확실하다.

대마케팅의 시대에 마케팅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그게 상품의 질과 신뢰를 보장해 주는 건 아니라는 걸 꼭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이 하는 걱정을 옆에서 주워듣는다.

애가 이제 돌인데 말을 못 한다, 애가 이제 몇 살인데 기저귀만 쓰려고 한다 같은.

그럼 나는 '돌인데 왜 말을 못 하지? 너무 걱정 말고 기다려 봐요' 라며 돌이면 으레 말을 해야 하는데 못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베이스에 깔고 위로의 말을 전하곤 했다.


아동의 발달에 관한 기준을 세운 건 게젤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 때문에 100년간 부모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평균적으로 돌에 말을 한다고 하면, 돌 전에 말을 하는 아이가 50%이고 돌 이후에 말을 하는 아이가 50%라는 말인데,

돌이 지난 후에도 말을 안 하는 건 정상적이라는 뜻이다.

이런 조사는 분포 범위까지 확실히 밝혔어야 하는 건데 100년 전 게젤은 그 부분을 몽땅 빼먹었다.

그리고 연령별 발달이라며 떡 하게 발표해서 부모들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요즘 부모들은 똑똑해서 어련히 알아서 걱정 안 하겠지, 했다가도 주변에서도 흔히 보이니 내 자식이 평균이 안 된다는 것 자체가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다른 얘기일 수 있겠지만,

아이에게 필수접종조차 하지 않고 백신 무용론을 주장하는 한 친구는 백신의 위험성에 관한 논문을 많이 봤다며 자신의 신념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했다.

백신의 유용함을 밝히는 논문이 100개라면 백신 무용론은 주장하는 논문은 한 두 개 정도 일 텐데도 말이다.

논문 링크를 달라고 하는 말에 주겠노라 큰소리쳐놓고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엉터리 논문이 많이 거론된다.

이 책이 1950년대에 나와서 통계를 신랄하게 후두려 패고 있지만 2020년대에 나왔다면 논문도 같이 묶어서 비판하지 않았을까.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통계든 논문이든 권위와 숫자를 앞세워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보면 우선 경계부터 해야 한다.


모든 글은 의도가 있다. 

그리고 글이 참고하는 통계 또한 그 의도를 뒷받침할 수 있기에 언급된다.

통계 자체는 멀쩡할지라도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포장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한다.

글의 의도를 파악하고 통계는 통계대로 따로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통계의 맹점을 들추며 통계에 당하지 않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표본과 출처를 확인하고 그래프는 누락한 사항이 없는지 꼼꼼히 따져보라고 한다.

먹고살기도 빡빡한 세상에 통계 하나 보는 데도 기력을 써야 한다니.

맘 편히 정부에서 나온 통계만 믿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싶지만,

정부에서 나온 통계를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이런 경우가 더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미 말도 안 되는 통계들을 제대로 된 통계보다 훨씬 더 쉽게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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