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로드 서울방송 김종호 국장

꿈이 직업인 건 30대 까지

by SeeREAL Life



엉뚱한 상상력의 소년


어려서는 조용하고 엉뚱한 소년이었어요
전기도 안들어 오는 흙벽돌, 초가집에서 사는
시골 골짜기에서 살던 터라
석유 넣고 키는 램프를 들고 다녀야 했죠.


나중에 경이도 이천으로 이사를 갈때도

얼마나 큰 트럭이 와야 우리집을 들어서

다 실어 갈 수 있을까?


며칠간을 상상하며 키득키득 됐다는 그.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학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곧 잘 섭외 되었어요
앞에 나가서 발표하고
이것저것 만들어 보는 경진대회 같은
그 시절 학생들에 비해 많은 경험을 해보면서
제 상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과학자를 꿈꾸게 되었죠


하지만 순풍에 돋힌 중학생 시절과 달리

바보가 된 듯 살았다는 고등학생의 삶.


고등학교가서는 바보된 것 같았어요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만 해야 했죠
과학자를 꿈꿨지만 수학을 잘 못한다는걸 발견하고 문과로
대학을 가야하는데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서 그냥 성적에 맞춰 경제학과로 갔죠
그런데 갔더니 수학, 통계를 다시 공부해야 되는거에요
입학 후에는 제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가득했어요
"내가 여기 왜 왔지?"



성당활동을 통해 찾은 꿈


그렇게 혼란과 갈등의 시기가

찾아왔다는 그.


결국 학사경고를 2번이나 받고

도망치 듯 군대를 갔지만

전역 이후에도 좀처럼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26살 대학 3학년.
말그대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어요
무엇을 해야하는 거지?
내가 전공한 경제나 금융분야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고
그런 스스로의 갈등이 결국에는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번졌죠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은 시절.


다니던 성당 청년성가대 선배 중에

수도원에서 수도자의 길을 준비하다가

돌아온 형님과 상담을 하게 된 그.

그 형이 그러더라구요
생각만 하지말고 일단 하고싶은 일을
시작하고 차근차근 준비 해봐
순서가 달라도 괜찮아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수도원을 나오자 마자
<방송음악 전문가과정>을 수강하게 되었어요


1996년 12월

93.9 CBS FM이 개국한지

일년 쯤 되었을때 개강한 아카데미.


정성이 담긴 수업도 감사했지만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주하게 되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는 그.


첫 수업시간에 가슴이 뭉클하더라구요
돌아 돌아 내 꿈이 이렇게 첫발을 디디는구나
는 감회에 눈물도 났죠



어느 순간, 빚을 갚는 마음으로


아카데미 이후 쭉

방송일을 해왔다는 그.


벌써 21년차의 베테랑이 되었다.


뒤돌아 보면 슬럼프는 있을지언정
한번도 게으른 적은 없었어요
부모님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보자 다독이면서
물론 경제학과 다닐때 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다녔죠
어렵사리 찾았던 꿈이니까요
그렇게 10년을 일하고 중앙대 신문방송 대학원에도 다니게 되었구요


졸업을 할때 쯤

자신이 참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그.

4.45

거의 모든 과목이 A+


대학원 졸업 학점이

대학졸업학점에 2배를 찍은

순간이었다.


사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돌아보면 20대때 겪은 아픔과 좌절들이
저에게는 도움이 많이 돼요
초년기 시절때는 내가
무언가 멋있는걸 만들어서 자랑해야지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빚을 갚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국장이 되기 전 까지도 어려운 가족들 도와주는 프로를 많이 했죠
다문화가족이나 새터민 분들의 스토리 같은 등등.



운명같이 다가온 프로그램


아프리카와 캄보디아를

손수 찾아 다니며 그들의 삶을 담아내고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노력했던 그에게


가장 운명같은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과천 30년, 그리움을 담다'와
'힘내요! 우리 안산'이라는 프로그램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했던 프로그램 같아요
'과천 30년, 그리움을 담다'는
자신이 30년 넘게 사는 아파트가
재건축 때문에 철거되는 상황을 다뤘어요
사람들은 재건축을 돈을 버는 기회라고 보지만 사실은
고향이 사라지는 거니까 가슴 애린 이야기기죠
다큐를 만들고 상영회를 하면서 토크 콘서트도 하고
시민들이 주어가 되어서 그분들이 원하시는 것을 담는게
참 소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소중했던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시민들과 함께 부대끼며 만들어 갔던

시민이 "주어"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

'힘내요! 우리 안산.'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정의>를 다룬 프로그램은 많았는데
정작 시민입장에서 시민을 위로하는 프로그램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때 가장 힘든시간을 겪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안산 시민들을 위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진도도 가고 안산 시민들도 찾아뵙고
그 이야기를 담아 다큐를 만들고
세월호 1주기에 상영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방송대상>을 받게 되었고
저희도 주신 뜻을 알기에
국화꽃과 함께 그 우리 영상을 usb에 담아
바닷속에 드리고 왔죠.



40대, 새로 꾸는 꿈


방송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항상 느낀다는 그.


그리고 그에게는 40대부터

한가지 꿈이 더 생겼다고 했다.


40대 넘어서부터의 관심은
하느님이 나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길 원하시나였어요
제가 살아온 삶을 다시 돌아 봤죠
그러니 다음 플랜이 보이더라구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70대까지의 꿈여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저의 다음 꿈은
이주배경 청소년들을 돕는
교육시설을 만드는 것이에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직접 봤잖아요.
그때 만난 삐약삐약 하던 아이들이
벌써 중학생 고등학생.
그런데 많이들 우울해요.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 중에서
외교관도 나오고 CEO도 나와서
자신의 꿈을 당당히 말하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당당하게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말이죠



꿈이 직업인건 30대까지


요즘 청년들을 보며

자신의 20대가 너무 떠오른다는 그.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을 위해

한가지를 당부한다.


요즘 친구들은 취업도 힘들고
꿈도 이루기 힘들어요
그럼에도 포기하지말고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지속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물론, 시간의 길이 차이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도착합니다
꿈이 부르는 곳에


안정적이고, 돈 많이 주고
복지가 좋고 자신의 시간이 많은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직업이 꿈인건
30대 까지인것 같더라구요
저는 40대 후반인데 오히려
새롭게 생겨난 꿈에 더 간절함이 생겼어요


Q. 청년을 위한 DREAM매뉴얼

꿈이 직업인건
30대까지인것 같아요

그 다음은 내가 얼마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느냐 인거죠

그래서 저는 항상 말합니다

시작이 어렵더라도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보세요



스토리텔링 : [See REAL] + Life

인터뷰&일러스트레이팅 : 바이블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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