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안산시장 제종길

한 우물만 파지 마세요

by SeeREAL Life


유쾌하시고

온화한 미소의 소유자


제종길 前 안산시장.


해양생물학 박사로

세상에 온갖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그의 꿈을 만나봤다.



개울이 내 인생을 이끌었다


어렸을때 꿈은 선생님이었어요
선생님이 제일 높으신 분이라고 알았으니까
그리고 학교에서 끝나면
개울에서 노는 걸 그렇게 좋아 했었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거에요


개울속에 사는 것들이 좋고
신기하던 시절은 결국

당시에도 생소했던


"스쿠버다이빙"으로 그를 이끈다.

40년 전에 스쿠버다이빙을 했어요
내가 들어갈때만 해도 전국에 몇 십명 안됐었죠
그렇게 놀다보니까
그쪽으로 학과를 가게 됐구요


사실 스쿠버다이빙이 좋아서 선택 했지만

취직이 안 될것 같아서

공부를 하면서도 고민이 많다는 그.


가만 보니까 노력해서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더라구요
다른 건 재능이 필요한데
학사를 끝내고 해양생물학으로 석사를 하면서
한국과학기술원 해양연구소에서 알바를 3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6살 많으신 분인데도

이미 해외에서 학위를 받고 연구하시는 것을 보곤


"내가 많이 뒤떨어 졌구나"는 마음에

좌절감과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해양연구소에서 위촉으로 얹혀 있다가
입사시험을 봤죠
감사하게도 합격을 하게 됐어요
아마도 입사시험 60점 커트라인에
61점을 맞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거기에서 20년 동안 근무를 하고 국회위원으로
그리고 제 개인 연구소인 도시와 자연연구소 6년을 지나
안산 시장으로 삶이 흘러 갔습니다.



옷 한벌 안사입던 아내


뒤돌아 보면

참 없이 살았다는 그.


너무 가난해서
어렸을때 수건 한장으로 온 식구가 다 썼어요
어느날 친척집에 갔는데
마른 수건이 쫙 싸여 있는 거예요.
와 부러웠죠
나중에 내가 사는 집에도
수건이 이렇게 있었으면 좋겠다 할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어요

그리곤 안산으로

정착하게된 사연도 털어 놓는다.


결혼해서도 가난해서
서울에 집 구할 돈이 없었어요
서울에는 못들어가고
빚을 내서
안산에 아파트를 구하고
10년간 빚을 갚으면서 살았죠
그동안 아내는 옷 한벌 안 사입었어요
고맙고 많이 미안하죠



아..정치가 정말 중요하구나


바다를 연구하며

실제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했던 20년


하지만 그 가치와 상관없이

정치적 논리로 일을 그르치는 것을 보며

참 많이도 안타까웠다.


남극에 세종기지를 세우는 것에 참여하며
해양연구자로서 너무나도 뿌듯했던 기억이 있어요
헌데 시화호, 새만금 같은 정말 가치있는 해양 사업이
정치적인 논리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을 보곤
"아..정치가 정말 중요하구나" 라는 걸 깨 달았죠
물론 그때는 "그사람이 나다"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요


시화호가 어렵게 풀려가는 것을 보곤

안산 NGO단체와 만나면서

자신의 해양 지식을 바탕으로

도움되고 싶다고 느꼈던 그.


그리고 당시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느날 후배가 찾아 왔어요
지역구에서 국회위원을 뽑는다는데 한번 나가보시죠
알고보니 마감이 다음 날이 더라구요
전날 저녁에 들은 건데...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그때 결심했어요. 나가보자
하지만 20년 다닌 직장을 그만둬야했죠
누가보더라도 무모한 결단이었고
아내 입장에서는 날벼락 이었지만
참 감사하게도 국회위원으로 선택 해주셨어요




생각만큼 되지 않는 구나


해양전문가 최초로

17대 국회위원으로

국회에 입성을 하게 된 그.


하지만 모든게

쉽지 않구나를 느꼈다.


1년 동안은 시행착오가 많았죠
공직자들 생각 바꾸거나
능력있는 분들을 발굴 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국회위원이 되어서
다른 국회위원분들을 독도로 모시고 가며
독도를 알리게 된 건
저 나름의 의미있는 성과 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반대로

독도에 대한 생태계나 해양조사 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을때 였다.


당시 반기문 전 UN총장님이 외무부 장관이셨는데
반대를 하셨어요 외교 마찰때문에
하지만 강행을 했죠
이후에는 환경부 장관님도 모시고 가고
그렇게 독도를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해양인으로의 숙명이었을까


물론 그 역시 탄탄대로로

안산시장 까지 오른 것이 아니었다


다음 국회에는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6년의 준비 끝에 다시

안산시장으로 도전한다.


그리고 4월 16일

그 일이 터진 것이다.


시장출마한다고 사무실을 내놓고 할때였는데
그 사고가 일어 난거에요 충격이었죠
소식을 듣자마자 단원고에 갔다가
바로 팽목항으로 달려 갔어요

뱃머리만 올라와 있는 상황


우왕좌왕하는 현장에서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잠수 유경험자로서
제가 도울 것이 없는가를 찾았어요
바다 경험을 가지고 세월호의 현 상황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많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배 옆으로 가고 싶어하시는 유가족분들이 계셔서
해경한테 따지듯이 설명해서 그분들과 배 옆으로까지 갔었구요

그 이후에는

시민들과 유가족의 첨예한 갈등을보며


자신의 역할에 대한 숙명적인 것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 했다는 그.


중재 회의만 100여차례
양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세월호 추모공원에 대한 계획을 수렴했지만
결국 진행이 되지 못했어요
아직도 이끌 부문이 많은데
참 아쉬워요
하지만 유가족 분들과의 관계는
제가 정치하면서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


분투했던 안산시장으로의 임기를 뒤로하고

자연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


이제 그에게 남겨진

꿈은 무엇일까?


바닷가나 자연이 좋은 곳에서
책방을 하고 싶어요
저는 요만한 방을 만들어서
그동안 미뤄왔던 글을 쓰고
도시재생이나 도시상상노트 같은


그리고 꿈에 대한 청년들의 바램을

풀어 놓는 그.


꿈이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꿈을 어느 상황에도 포기하지말고
계속 끌어안을 수 있는게 중요한거죠
언젠가 사람들은 현실을 너무 분석하면서
꿈을 안꾸기 시작 하더라구요
청년, 청소년, 어르신 할거 없이
물론 미래는 어두울 수 있어요
하지만 한걸음 한걸을 살아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루어 진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곤 자신의 어렸던 꿈을

이야기 하며 웃음을 짓는다.

책장이 꽉 차여 졌으면 좋겠다
마른 수건을 쌓아두면서 살았으면 하는
정말 사소한 것 까지
그렇게 거창한 꿈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품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삼아 갔으면 해요



Q. 청년을 위한 DREAM매뉴얼

한 우물만 파지마세요
그리고 다양하게 놀아보세요

현대 사회에서 솔루션을 가진
핵심 인재들은
잡다하게 지식을 키우며
열정에 가득찼던 사람들 입니다.



스토리텔링 : [See REAL] + Life

인터뷰&일러스트레이팅 : 바이블 박



keyword
이전 09화약손 수기명가 원장 한상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