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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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남부 네 개 도시를 거쳐 리스본까지 갔다가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던 이 여정은 모두 버스로 이동했다. 숙박은 마드리드에 도착해 일정을 짜던 날 예약해 두었지만, 버스 티켓은 미리 끊어두지 않고 한 도시에 도착하면 다음 도시행 버스를 끊으면서 다녔다. 물론 비수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부 도시들 중 마지막 목적지였던 세비야에 도착했을 때도 나는 먼저 다음 목적지인 리스본행 버스 티켓부터 사려고 했는데, 직원으로부터 처음으로 티켓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게 특히 절망적이었던 이유는, 이 날 밤 하루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야간 버스를 탈 생각으로 숙박을 예약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간단히 스마트폰 앱으로 빈 방을 찾아 예약할 수 있겠지만, 와이파이 연결은 숙소에 들어가서야 겨우, 그것도 휴대폰이 아닌 랩탑으로 했던 때였으니 당황할 수밖에. 머리가 하얘져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본 한 과테말라 배낭여행객 무리가 다른 버스 회사 창구로 나를 데려가, 고맙게도 나 대신 스페인어로 직원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리스본으로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가장 빠른 표는 당장 몇 시간 뒤인 오후 3시 버스였다. 아니면 다음날 오후 3시 버스를 타야 하는 것. 세비야를 버리고 오늘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하나 생각하니 속에서 ‘플라멩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세비야에서 플라멩코를 보기 위해 지난 도시들에서 부러 플라멩코를 보지 않았던 터였다. 이상한 객기가 발동한 나는 다음날 오후 3시 버스를 예약해 버렸고, 먼저 버스 터미널 락커에 무거운 배낭부터 넣었다. 머릿속은 이런저런 걱정으로 분주했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일단 터미널 밖으로 나가 세비야 시내 방향을 향해 걸었다. 그런 상태로 거리로 나선 내 머릿속에는 ‘우와’라는 감탄사와 ‘그런데 어쩌지?’라는 말이 번갈아 가며 떠올랐다.
잘 곳도 없는 세비야가 나를 붙든 건 플라멩코였으므로 나는 일단 플라멩코 공연장부터 찾아다녔는데, 가는 곳들마다 내가 생각한 예산보다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렇게 세 시간쯤 걷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들어간 곳에서 나는 드디어 식사가 포함되지 않은 15유로짜리 공연을 찾아냈다. 그런데 일단 찾고 나니 제쳐두었던 걱정이 밀려들었다. 흥분한 젊은이들로 가득할 토요일 밤거리를 여자 혼자 지새우는 건 아무래도 무리지 싶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길 가는 사람들 몇 명을 붙들고 저렴하게 묵을만한 곳이 있는지 물으며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지도에 표시된 숙박업소들을 찾아가 보면 되었을 텐데 싶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였던 내게는 예산을 벗어나는 게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던 거다.
아무튼 그렇게 무작위로 사람을 붙잡아 물어보다가 드디어 ‘너 같은 아이들이 갈 만한 곳이 있다’며 내게 친절히 길을 알려주는 한 아저씨를 만났다. 영어가 서투른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곳은 'Free Hostel'이었다. 아저씨의 설명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방금 전까지 걱정되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이 상황 자체가 마냥 재밌어졌다. 가벼워진 걸음걸이로 아저씨가 가리킨 쪽을 따라 쭉 걸어가는데 갈림길이 나타나 고민하던 차, 내 옆을 지나가는 한 여자에게 나는 아저씨가 설명한 것들을 재조합해 길을 물었다. 그런데 내 설명을 듣던 여자가 정색을 하며 가지 말라고 나를 말리는 게 아닌가. 그녀 왈, 그곳은 걸인들을 위한 쉼터 같은 곳이라고! 그녀의 설명에 나는 내 행색이 그 정도였나 싶어 웃음부터 튀어나왔다. 나를 말려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나는 길을 틀어 다시 시내 쪽으로 향했다. 이제 밤을 지새울 곳을 찾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나는 신기하게도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냥 길에서 이 밤을, 새벽녘을 누려보자 싶어진 거다. 이처럼 철없는 객기가 그때 내 속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토요일 저녁, 한껏 들뜬 세비야 거리를 걷다가 나는 드디어 플라멩코 공연장에 들어섰다. 잘 곳 없는 그날의 상황은 이쯤 되니 완전 뒷전이 되었다. 게다가 관객이 이미 반쯤 차 있었는데도 앞자리가 비어 있어, 나는 당당히 맨 앞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지 않아도 잔뜩 흥분된 나를 더욱 들뜨게 만든 건 내 옆자리에 앉은 두 명의 한국인들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그랬던 터라 시원하게 모국어로 수다 떨 수 있는 상대를 만나니 얼마나 반갑던지. 하여 나는 공연이 시작하기 전 그 짧은 5분 사이 그들에게 세비야에서 내게 닥친 상황을 구구절절이 떠들어 댔다. 공연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처음 본 두 분에게 민폐를 끼쳤을지도.
한 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간 듯 느껴졌다. 황홀한 기분에 휩싸여 감동의 여운이 한동안 떠나가지 않아 이제 거리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현실도 잠시 잊었을 정도다. 그렇게 셋은 한동안 공연장 밖에 서서 각자의 감흥을 나누었는데, 두 사람이 먼저 내게 자신들이 예약한 호스텔에 같이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처음 본 그들에게 신세를 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진심으로 몇 번이나 거절했다. 그런데 두 사람 중 특히 여자분이, 여자 혼자 길 위에서 밤을 지새우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나보다 더 강하게 나를 설득했다. 끝까지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었지만 나는 결국 두 분의 호의를 받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 밤 나는 그들이 예약한 방의 2층 벙커 침대 1층에서 이 날 처음 만난 여성분과 나란히 누워, 혹여 나 때문에 잠을 못 잘 까봐 몸의 절반은 침대 밖에 걸친 채 잠을 청했다. 길거리에서 졸음과 위험 두 가지와 싸워야 했을 그 밤, 안전한 공간에서의 쪽잠은 내게 그 어느 때보다 달콤했다.
두 사람이 다음 날 아침 일찍 모로코로 떠나야 했으므로 나도 그들과 함께 호스텔을 나왔다. 고맙게도 조식으로 간단히 나온 빵과 과일까지 내 몫으로 챙겨준 그들. 환한 미소를 머금고 크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준 그들의 마지막 얼굴은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선명하다. 언젠가 그들과 다시 만난다면, 아찔한 경험을 할 뻔한 그 밤을 유쾌한 무용담으로 바꿔준 건 전적으로 그대들 덕분이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