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요정의 백수인생』
직장인에게 리프레시가 필요한 것처럼 백수도 리프레시가 필요하다. 백수도 직장인과 다르지 않게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똑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도록, 백수에게도 휴가는 필요하다.
그. 래. 서. 백수 반년 차에 약 한 달이 넘는 긴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지는 한국.
정말 매일매일 백수답지 않게 너무 바빴다, 아니, 백수라서 바쁘게 보낼 수 있었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밥 사고, 내가 커피라도 사려고 하면 또 극구 사양하며 커피까지 사줘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어디 가서 얻어먹고 다니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너무 감사하고 미안했다. 다음에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주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리고 지금의 이 시간이 나에게 기회인 건지 낭비되는 시간인 건지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론은 머리 아프니 반반으로 내고, 앞으로 보낼 시간들이 더 이상 낭비가 되지 않도록 하기로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이렇게 마음을 리프레시해갔다.
이젠 몸을 리프레시할 차례. 해외에 있는 동안 먹고 싶어서 메모장에 차곡차곡 적어 두었던 음식들을 매일 하나씩 먹으러 다녔다. @@치킨, ##치킨, %%치킨, 떡튀순, 로제 떡볶이, 김밥, 양꼬치, 조개구이, 육회, 활어회, 경양식 돈까스, 팥빙수, 짜장면, 짬뽕, 순댓국 등등. 덕분에 한 달 동안 3킬로가 훅 쪘다. 든든히 먹고 나니 금식을 할 마음이 좀 생겨서 미루고 미루던 수술도 마침내 해치워버렸다. 잘 먹고 잘 쉰 덕분에 회복도 매우 빨라서, 간호사 선생님이 놀라서 커지던 눈이 떠오른다. '아니, 벌써 움직일 수 있으신 거예요?!'
휴가지만 이직요정답게 면접도 몇 번 봤다. 한 면접 자리에서, 개발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뭐라고'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래도 소신껏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서 전달했고, 추후에 내 의견에 따라 프로젝트에 수정이 있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을 땐 그래도 내가 지난 몇 년간 보고 들은 건 있었구나 뿌듯했다. 근데 지금 휴가 중인데 출근시키려고 해서 도망쳤다. 또 다른 면접에서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붙었구나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져 버려서 그 충격이 오래갔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아무튼 이렇게 정신없는 휴가를 마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지금의 자리로 돌아온 백수는,
다시 오늘을 열심히 살아갑니다^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