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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Feb 24. 2023

이 곳은 내 마지막 회사야

생각보다 마지막이 빨리 왔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3번의 이직을 했다. 2번은 회사가 망했고, 1번은 자의였다. 내게 누군가는 '프로이직러'라고 했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한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었다. 월급이 밀릴 걱정, 회사가 망할 걱정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선택한 4번째 회사는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출판사였다. 출판계가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이 회사는 망하거나 월급이 밀릴 것 같진 않았다. 의미 있는 책을 많이 펴내는 회사였고,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나 생각이 잘 맞을 것 같았다. 입사하면서의 내 결심은 그랬다. 여기가 내 마지막 직장이다. 


중견 기업으로의 이직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건 선배들의 가르침이었다. 첫 게임 회사에서의 3개월을 제외하고 나에겐 사수가 없었고, 스스로 일을 배워서 처리해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 체계적인 조직에서 연륜과 경험이 있는 선배들에게 일을 배우며 성장하는 것, 그런 회사 생활을 꿈꿨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도, 나의 사수는 없었다.






내가 속한 부서는 회사의 전반적인 홍보마케팅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내가 처음 지원했던 자리는 온라인 홍보 마케터였지만, 당시에는 다른 직원이 채용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부서에서 새로 맡게 된 프로젝트가 있었고 그 프로젝트 담당자로 내가 채용되었다. 기존에는 다른 팀의 일이었던 그 프로젝트는 회사의 브랜딩에 필요한 일이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 사장의 판단으로 능력 있는 부서장이 있는 우리 부서가 이 일을 갑자기 맡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해당 업무를 맡아서 할 1명의 충원이 바로 나였다. 이전의 내 짧은 경력이 그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였다.(그렇지만 내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고, 나는 신입 연봉을 받았다.)


기존에 부서에서 진행하던 업무들과 내가 맡은 업무는 확연히 달랐다. 심지어 부서장이나 팀장도 내 업무를 경험해본 이들이 아니었다. 매장 관리가 필요했던 업무 특성 탓에 나는 일종의 파견직으로 부서원들과 다른 지역의 다른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부서 회의를 위해 본사에 갔다. 회의의 대부분은 내 업무과 관련이 없는 내용이었고, 어떠한 안건에 대해서 내가 의견을 내기도, 내가 필요한 의견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내가 맡은 업무는 너무나도 넓고 광범위했다. 크게 보면 '행사/콘텐츠 기획'과 '매장 관리'였지만, 하위 항목이 무수히 많았다.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각종 사업자 관련 업무, 공간 기획, 매출 관리, 상품 입출고, 행사 기획과 운영, SNS 계정 운영, 심지어 청소와 미화 관리까지 해야 했다. 공간 브랜딩을 위해 인테리어, 독자 참여 행사 등 모든 콘텐츠를 신경 쓰고 관리해야 했다. 회사에서는 젊은 독자들과의 매개체가 되어주면서도 회사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그런 공간 브랜딩을 원했다. 내가 하는 일은 직원 한 명 없는 1인 사업자, 사장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결정권은 나에게 없었고, 심지어 신입이라는 이유로 매니저라는 호칭이나 직급도 부여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회사에서는 이 모든 일을 내가 혼자 해내길 바랐다.






그럼에도 의욕적이었던 당시의 나는, 혼자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칼퇴가 문화였던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어떻게든 스스로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행사나 콘텐츠 기획을 아이디어 교류 없이 혼자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매장 관리에도 많은 시간이 투입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서장이 일은 할만한지, 힘든 점은 없는지 물어왔다. 과도한 업무량과, 혼자 업무를 수행하는 데 힘든 점들을 털어놓았다. 업무량에 비해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고, 특히 기획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한 명이 아니라 부서 차원에서 같이 진행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자 부서장에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OO 씨가 면접 때 깡도 쎄 보이고 혼자 알아서 잘할 것 같아서 뽑았는데,
그러면 안 되지.


그러면서 업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고, 점점 빨라지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때도, 그날 이후로도 내가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마다 내가 부서장에게 느꼈던 반응은 '귀찮음'이었다. 나의 근무 시간은 회사에서 유일하게 출퇴근이 한 시간씩 느렸는데, 그러다 보니 타 부서나 다른 직원들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는 것도 근무지가 떨어져 있는 탓에 메신저로 소통해야 했고 처리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회사에서 매장 관리를 위해 예외적으로 설정한 내 근무 시간은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불편한 점이 많았고 효율적인 근무를 위해 다른 직원들과 근무 시간을 맞추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했을 때도, 사장이 '배려'해준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묵살되었다.(회사의 첫 제안은 11-20시 근무였고, 입사 전 협의로 10-19시로 조정했다.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다음에도 직원 한 명은 남아서 저자 등이 올 때 안내를 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는데, 6시 이후에 중요한 분이 방문한 적은 그 이후에도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업무, 내 일정에 관련된 일은 대부분 회사의 예외였고, 그런 이유들로 내 자리는 회사 내에서 눈에 띄었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균열이나 불편함을 나의 상급자들은 내가 조용히, 가만히 참길 바랐다. 첫 근무 시간 조정이 회사에서 내게 준 엄청난 배려라는 듯이. 이미 배려를 받은 나는 아무런 불만도 가지면 안 된다는 듯이. 대외적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회사의 내부는 완벽히 수직적이었다. 개선을 요청하면 귀찮은 내색을 비쳤고, 돌아오는 대답은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장에게 보고할 수 없어서', '부장이 안 된다고 해서' 등이었다. 납득이 가능한 설명이나 안내 대신 그런 대답을 받을 때마다 회의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해되지 않는 점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아니었다. 조직 생활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그 마음이 내게는 부족했다. 나는 회사가 원하는, 군말 없이 혼자 알아서 잘하는 그런 인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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