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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싸주는 남편

독일에서 누리는 호사

by 지소


그 어떤 도시보다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베를린은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도 활발하고, 그에 따른 움직임도 적극적인 도시다. 그중 베를린에서 일상으로 자리 잡은 건 채식이다. 환경문제와 동물권 문제가 세계적으로 대두되며 독일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채식인구가 꾸준히 늘었고,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올해 기준 베지테리언이 전체 인구의 4-9% 정도에 달하며 대상을 젊은 층으로 한정하면 10%가 넘는다고 한다. 적지 않은 베지테리언 소비자들이 형성되면서 시장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그래서 독일의 어느 마트에서든 비건 코너를 찾을 수 있고, 레스토랑에는 반드시 비건 또는 베지테리언 메뉴가 있다. 스스로 비건이 되지는 못하지만 채식주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반갑다. 다만 내게 닥친 문제는, 이 움직임의 일부가 내 생활에 크게 관여하면서 생겼다.


베를린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교 학생식당은 베를린 학생 복지 기구인 ‘슈튜덴텐베어크 베를린 (Studentenwerk Berlin)’이 운영한다. 그들의 운영 방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다. 그 가치에 따라 대부분 신선한 채소나 곡물이 기본이 되는 메뉴들을 제공한다. 고기나 생선 메뉴는 각 식당마다 하루에 한두 가지 정도 있는데, 공장식 사육으로 생산된 저렴한 고기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메뉴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그런데 그마저도, 내가 수업을 듣는 건물들이 모여 있는 캠퍼스에 있는 유일한 학생식당에서는 먹을 수 없다. 베를린의 가장 중심에 있는, 상징적인 학교 본관과 이어져 있는 학생 식당이 고기나 생선을 전혀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의 학생 식당은 총 3개가 있는데, 하필,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학생식당이 베지테리언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치즈나 달걀, 유제품만 허용되는 락토-오보(Lacto-Ovo) 베지테리언 식당으로.


사실 베지테리언 식당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고기가 없어도, 생선이 없어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가 독일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추운 기후 때문에 옛날부터 다양한 식재료나 향신료의 생산이 어려웠으며, 맛보다는 영양이나 보존의 측면으로 식문화가 발전했다고 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귀족문화가 약하고, 절제를 중시하는 프로테스탄트 정신도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산업화 이후에는 효율성이 중시되어 음식이 즐기는 것이란 인식보다는 생산을 위한 원료로서 기능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그래서 열량이 높은 육류를 굽거나 삶아서 만든 요리이고, 보존에 용이한 다양한 염장육이나 소시지도 발전했다. 그런 독일의 식탁에서 육류를 제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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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식당의 메뉴들. 왼쪽 메뉴의 이름은 '한국식 커리'였는데, 당연하게도 전혀 한국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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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육으로 만든 크로켓 류가 자주 나오고, 항상 알 수 없는 소스를 같이 준다.




학생 식당에서 채소 베이스로 만들어진 메뉴들은 일단 별 맛이 안 난다. 입맛에 안 맞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느껴지는 맛 자체가 별로 없다. 음식에 곁들여 나오는 소스는 입맛이 다른 건지 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좀 정체를 알 수 없는 맛이 난다. 게다가 나는 매 끼니에 어떻게든 단백질을 챙기려고 하는 단백질 집착증을 가지고 있는데, 학생 식당의 메뉴들은 대부분 밀가루를 기본으로 하는 탄수화물뿐이고, 달걀도 자주 나오지 않아서 도저히 내 기준으로 영양 균형을 충족시키는 끼니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보다 키가 한 뼘에서 두 뼘이나 큰 청년들은 접시 한가득 감자만 쌓아놓고 먹거나, 산더미 같은 밥 위에 채소 볶음을 부어서 먹는다. 주 메뉴와 다르게 감자나 밥 같은 부식은 품목당, 또는 접시당 가격이 매겨져서 얼마를 떠가든 가격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맛에 죽고 맛에 사는 한국인이다. 우리는 먹는 일에 그 어느 민족보다도 진심이다. "밥 먹었어?"가 인사고, 밥을 안 먹었다고 하면 당장 뭘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조상들은 척박한 한반도에서 고기 없이도 다채로운 맛을 구현했다. 유럽인들은 뭔지도 모르는 미역을 캐서 말리고, 콩 하나를 불리고 말리고 갖은 방법을 개발해 간장과 된장을 만들고 두부와 청국장까지 만드는 그런 이들의 후손이 바로 우리다. 땅에서 나는 모든 풀을 캐서 여러 가지 나물로 만드는, 학교 급식조차 주찬 하나에 부찬 두 가지를 주는 반찬의 민족이 사는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는, 아무리 감자가 한 대접에 70센트라고 할지언정 감자만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다. 배는 채울지 몰라도, 강의실에서 미친 속도로 울려 퍼지는 독일어를 어떻게든 머리에 집어넣으려고 애쓰다 빠져나가버린 내 영혼을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여러 음식을 담다 보면 다른 식당보다는 저렴한 학생 식당에서도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해야 했고, 가격에 비해 만족할 수 없는 한 끼가 되기 일쑤였다.



"이런 걸 돈 주고 사 먹느니 그냥 간장계란밥을 싸서 다니는 게 훨씬 싸고 맛있지 않을까?"



학교에 다녀와서 매일같이 늘어놓는 내 불평을 듣던 산은 도시락을 싸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먹기 편한 샌드위치나 랩을 간단히 싸주다가, 매일 비슷한 걸 먹으니 질린다는 말에 볶음밥 같은 먹기 편한 밥도 종종 해줬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내가 누구냐.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나는 해물탕의 해물을 열심히 발라 먹다가 국물이 식으면 다시 가스레인지에 올려서 보글보글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가져와 먹는 어린이였다. 주문한 치킨이 뜨겁지 않으면 다시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고, 피자의 치즈가 조금만 굳어 있어도 다시 오븐에 넣고, 커피가 식는 게 싫어서 굳이 무거운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게 바로 나라는 인간. 그런 인간은 식은 밥이 싫어서 유럽으로 신혼여행 오는 친구에게 굳이 굳이 보온 도시락통 세트를 들고 오게 만들었다. 그것도 두 세트나.







보온 도시락통은 내 학교생활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스테인리스 보온 도시락에 전기 포트로 끓인 뜨거운 물을 넣어 데운 후 음식을 넣어 가져가면 몇 시간이 지나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직접 냉동식품을 프라이팬에 빠르게 데워 가져가는 날도 있었지만, 산은 보통 내가 나가기 30분이나 한 시간 전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준비해 가방에 넣어줬다.


"내일은 뭐 싸줄까?"

"몰라? 자기 귀찮으면 그냥 나 샌드위치 같은 거 사 먹어도 돼."

"에이, 그래도 밥 먹으면 좋잖아. 먹고 싶은 거 없어?"

"음… 그러면 우리 김치 많으니까 김치볶음밥?"

"오, 그럼 내가 김치볶음밥에 계란후라이 올려서 해줄게. 자기 계란 좋아하니까."

"에헤헤헤헤 좋다."


그렇게 나는 독일의 대학교에서 점심에 김치볶음밥, 마파두부덮밥, 오야코동, 카레라이스를 먹는 호사를 누렸다. 혼자 다채로운 요리를 먹고 있자면, 감자만 열심히 먹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 괜히 안쓰럽기도 하면서 괜히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유전자의 차이인지 나이의 차이인지. 나는 남편을 고생시키면서까지 매 끼니를 이렇게 잘 챙겨 먹어야 겨우 공부할 힘이 나는데, 저 녀석들은 나보다 몸집도 크면서 고작 저렇게만 먹고도 나보다 훨씬 활기차고 쌩쌩하다니.



R0017454.JPG 김치볶음밥이랑 학생식당에서 산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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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카레에 밥을 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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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의 힐링 : 일드나 한드 보면서 밥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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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밥통으로 제일 자주 쓰는 500ml 스테인리스 통 (원래는 이유식/죽 통)





얼마 전 새 학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역시나 맛이 없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30분의 쉬는 시간에 가방을 열고, 산이 넣어준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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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없었다면 내가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서른이 훌쩍 넘어 다른 나라에서 다시 공부를 하는 일. 새로운 언어와 의사소통의 장벽에 부딪히며 매일같이 스스로의 작아짐을 확인하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일.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면서도 무용한 것 같은 학문에서 즐거움을 얻는 일. 나도 몰랐던 흥미를 발견하고 세계를 넓혀가는 일.


그가 내게 만들어주는 밥을 먹으며 나는 외로움과 싸우고, 밥알 하나에 새겨진 온기로 포기하지 않을 힘을 얻는다.


내가 네게도 그런 힘을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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