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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백 자판기 Oct 27. 2024

도심 속 무중력 방탈출 카페 (8)

단편집, [기억되지 않는 대화들]의 첫 번째 이야기

8. 만약에


'만약에...'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녀가 이미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면? 잠깐 보았지만 그녀의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진공 상태에서 인간의 육체는...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혈관이 터지고... 그는 더 이상 그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구해도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 때문에.


저 멀리서 들려오는 그녀의 비명 소리. 점점 더 희미해지는 소리. 아니, 어쩌면 그건 헬맷이 제대로 씌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새어나가는 산소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소리는 전달될 수 없으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내가 이걸 어떻게 책임져?' 

'방탈출 카페 측에서 책임져야 하는 거 아냐?' 

'아니지, 내가 헬맷을 벗겼으니까...' 

'CCTV 녹화되었을까?'

'소송이라도 걸리면 어쩌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하나?' 

'그런데... 이미 늦은 거 아냐?'


서연은 여전히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는 것이 보였다. 처음의 격렬한 저항은 이제 미세한 떨림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움직임은 더욱 둔해졌고, 이제는 마치 우주의 일부가 된 것처럼 고요해 보였다.


그의 손끝에 차가운 금속이 걸렸다. 서연의 로프 걸쇠였다. 


민준은 깨달았다. 자신의 앞에 놓인 선택이, 단순히 그녀를 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지라는 것을.


딸깍.


시간이 끝났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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