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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백 자판기 Apr 15. 2021

[찻집과 일상] 인생은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간다

그 날의 공간 : 무심헌

애미야. 그렇게 손을 떨어서야 어디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니!


  [무심헌]에서 처음으로 개완 쓰는 법을 배웠을 때, 마주 앉은 친구가 깔깔 웃으며 놀렸던 말이다. 분하게도 맞았다. 근육도 손목의 힘도 놀랍도록 없는 나에게 개완은 나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다구였다. 아무리 제대로 써보려고 용을 써봐도 개완의 날에 손가락을 얹을 때마다 열기가 느껴져서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우아한 손짓이랑은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


개완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뚜껑이 있는 찻잔이란 의미를 가졌다. 열전도율이 낮고 몸통 날개가 넓을수록 사용하기 편하다고 한다.


  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근육이 없어서 그렇다고, 운동 좀 하라 타박했다. 손목 힘이랑 근육이랑 무슨 상관이람. 작게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친구가 하는 말 중 틀린 말은 또 하나도 없어서 운동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아한 손짓을 위해서건 멘탈 관리를 위해서건 조금이라도 더 기운 내서 재미있는 일들을 해내기 위해서건. 체력은 중요했다.


  그렇게 구박하는 친구 역시 자신은 간호사긴 하지만 여전히 혈관 찾는 일이 어렵다며 모기가 자기보다 혈관을 잘 찾을 거라 농했다. 우리 둘 다 그렇게 서투르게. 그렇지만 어떻게든 맡은 일 혹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며 용을 쓰고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돌던 짤 중에도 이런 짤이 있다.


“회사에 감탄하는 순간 :
와 이런 주요 업무를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한다고....?”


가장 좋아하는 짤


  그렇다. 모든 일이 완벽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다못해 회사조차 그렇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고 보면 이상하게도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간다.(물론 그러다 대형 업보가 되어 폭탄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을 잠시 하루살이의 심경으로 보면 그렇다) 생각보다 나라는 존재는 못하는 것도 참 많지만 어떻게든 해내는 것도 많은 존재라는 걸, 살아가면서 새삼스레 느낄 일이 많다.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일도, 모든 걸 엉망으로 하는 것 같아 울적해져 있는 일도. 어떻게든 해야 해서 닥치는 대로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해 놓은 결과들이 쌓여 미래의 나에게 보상처럼 돌아온다.


  [무심헌]에서 나는 참 못하는 손으로 파들파들 떨면서 찻잔에 차를 따랐다. 적당한 시간 동안 우려진 보이숙차 <경매 숙병>이 무사히 찻잔에 담기자 향이 코 끝으로 전해졌다. 개완 하나 제대로 못 잡는 잘못된 주인을 만났어도 보이숙차는 무사히 우려 지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한 모금 마셔본 보이숙차는 참 맛있었다. 모든 것이 서툴렀음에도. 개완을 쥐던 손도. 차를 따르는 순서도. 하다못해 찻잎을 개완에 조심스레 담던 그 모든 것까지 어색하고 불안했음에도. 보이차 특유의 씁쓸함과 칼칼함이 입 안에 머무르자, 이 맛을 계속 찾아다니고 싶다는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무심헌] 첫 방문을 계기로 찻집 탐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순간들이 도리어 좋은 기억을 남아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생애 처음으로 사용해본 개완(*하얀색과 파란색). 자사호(*파란색 개완 위에 있는 갈색 주전자 모양의 다구)도 이 날 처음으로 써봤다.


  찻집 탐방을 약 반년을 한 지금도 여전히 개완을 제대로 쥐지 못한다. 이후 [다도레]라는 찻집에서 원데이 클래스로 개완 사용하는 법을 다시 배웠는데도 그렇다. 평생을 해도 제대로 못하는 젓가락질처럼 개완을 따르는 손은 암만 해도 멋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에서는 개완으로 차를 정말 화려하고 멋스럽게 우린다고 하던데. 앞으로 많은 시간을 단련해도 내가 따르는 차는 어설프기 짝이 없을 것 같다.


나는 평생 찻집을 열지 못할 거야.


  파들파들 떨면서 건네주는 차라니. 어떤 손님이 믿고 올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찻집 사장은 되기 글렀다. 그러니 소비자가 되어야겠다.


  그렇게 차에 대한 소박한 소비자가 된 나는 이번 휴일에도 되는대로 개완을 잡고, 되는대로 차를 마신다. 모든 게 어설프지만 다구를 쥐는 감촉이 좋아서. 뜨거운 물에 불어난 찻잎을 보는 게 좋아서. 우리면서 퍼지는 다채로운 향이 좋아서. 향과 함께 마시는 구수한 차와 이 차를 함께 하는 친구들과의 시간이 좋아서. 다음은 어느 찻집에 가볼지, 어떤 차를 마시고 싶은지 생각하며 일상을 보낸다.


  인생은 결국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간다.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지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지만, 좋아하는 순간들을 잊지 못해서 내일을 기약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전의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새로운 것, 예를 들어 지금의 글과 같은 작은 결실들을 남긴다. 모든 것이 서툴러서 엉망인 듯해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도하지 않았다면 해보지 않을 모든 것들을 해낸 값진 것들인 셈이다. 그렇게 오늘도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을 쌓아 의미 있는 것을 만들며 인생을 주먹구구식으로 살아간다.


찻집 탐방의 시작점이 된 [무심헌] 종로점의 모습


그 날의 공간

무심헌

용산구와 종로구, 총 두 개의 지점이 있다. 전 지점 예약 필수

종로점의 경우 1층은 테이스팅 세션, 2층은 프라이빗 티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적이면서도 이해하기 편하게 차에 대한 설명을 잘 해주시기 때문에 원데이 티클래스를 가도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마셔보았던 차

백차 : 고수 백차

홍차 : 장녕 야생 홍

보이 생차 : 이무, 신반장

보이 숙차 : 경매 숙차

찻잎은 원하는 만큼 우려 마실 수 있다. 필자와 친구들은 색만 살짝 가미된 맹물이 될 때까지 마셨다.

보이 생차 계열은 꼭 마셔보는 것을 추천!


먹어봤던 다식

대추 양갱

금귤 조림

딱딱한 강정과 생강 조림

차에 어울리는 간단한 다식을 내어주신다

배를 채우는 용은 아니기 때문에, 차를 마시기 전에 식사를 하고 오는 것이 좋다. (빈 속에 차를 마시면 속이 쓰릴 수도 있다)


이런저런 주관적인 생각

  찻집 탐방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집이라 그런지 애착이 많이 가는 가게 중 하나. 종로점의 경우 골목에 들어서자 보이는 한옥 같은 가게의 모습이 참 이쁘다. 2층 프라이빗 룸만 이용해도 다구를 사용하는 법에 대해 차분히 알려주시기 때문에 다구 사용법을 전혀 모르고 가도 상관없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기에도, 혹은 그저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가기에도 좋은 공간. 필자는 아직 용산점은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조만간 시간을 내어 용산점에도 가볼 예정이다.


무심헌 내부의 모습. 고즈넉한 분위기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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