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복부/등
가슴은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두 흐름인 기체와 액체의 순환을 담당하는 기관인 폐와 심장을 담고 있다. 생명 활동의 첨병인 폐와 심장은 마치 생명을 지키는 전사의 갑옷 같은 갈비뼈에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다. 또한, 가슴은 우리 몸의 연소실로써 동화 작용과 가스의 교환 그리고 에너지의 분배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폐를 통해서 혈액으로 흡수된 산소는 심장박동으로 몸 전체에 퍼진다.
가슴은 복부에서 형성되는 1차 감정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 에너지가 머무는 곳이다. 쾌에 따른 열정과 불쾌에 따른 분노는 복부에서 형성되어 횡격막을 거쳐 정제되고 변형되어서 가슴에 모이게 된다. 가슴은 사랑과 증오, 행복과 비애, 자부심과 우울감, 기쁨과 슬픔 그리고 희망과 실망 같은 2차 감정을 만들어낸다. 사랑은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깊은 슬픔이나 상실감을 경험하면 가슴이 아프다. 기대감에 부풀면 가슴이 뛰고 하고, 주체할 수 없는 큰 감동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것은 실제로 가슴이라는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분노와 같은 1차 감정이 가슴에서 충분히 머물면서 변형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 분출되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다. 1차 감정이 형성되면 가속기를 밟은 엔진 실린더의 피스톤처럼 심장은 고동치고 호흡은 가빠지며 급발진할 준비를 마친다. 이때 횡격막이 유연하게 호흡을 조절하면서 가슴으로 부드럽게 중계하면 급발진은 일어나지 않지만, 상황 제어에 실패하면 곧바로 공격적으로 표출되고 만다. 횡격막에서 한 번 걸러주고 가슴에서 머물러 변형되면 1차 감정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훨씬 완화한다. 최상의 조절이 일어나면 열정은 사랑으로 변형되고 분노는 연민으로 승화한다.
감정 에너지가 굳은 횡격막에 의해 막혔다면 얕은 호흡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그런 횡격막은 복부의 에너지와 가슴의 에너지에 교량이 아닌 장벽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가슴이 뻣뻣하게 굳어 충분한 호흡을 할 수 없으므로 에너지 발생량은 매우 부족해진다. 그러면 열정은 억압되어 삶의 희열은 축소되고, 사랑은 식어 냉담해져 단지 최소한의 비율로 생존하게 된다.
가슴은 자신의 존재 상태를 드러낸다. 대부분 자신을 가리킬 때 손가락은 가슴을 향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를 때 복부나 머리를 가리키며 “나?”라고 반문하지는 않는다. “내가 말이야!”라고 자신을 강조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자기 가슴을 툭툭 치게 된다. 따라서 그 사람의 가슴을 보면 그가 자신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가령, 넓고 내민 가슴은 자신감이 넘치는 ‘강한 나’를 드러내며, 반면 웅크린 듯 위축된 가슴은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을 잃은 ‘약한 나’를 나타낸다.
이런 가슴의 상태는 호흡에도 영향을 미친다. 넓고 내민 가슴은 횡격막을 신장시켜 짧고 강한 들숨을 일으킴으로 교감신경을 과도하게 자극해서 흥분상태에 빠뜨린다. 위축된 가슴은 횡격막을 눌러서 약한 들숨을 일으킴으로 호흡 에너지가 부족해져 활력은 떨어지고 그리하여 종종 한숨을 쉬게 만든다.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연다는 의미는 신체적으로 가슴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가슴의 긴장 없이 균형 잡힌 자아감으로 세상을 마주함이다. 깊고 부드러운 들숨은 가슴을 열어 세상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같은 맥락의 날숨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나누어 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가슴의 상태는 생리적으로는 호흡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심리적으로는 자신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곧바로 드러낸다.
복부는 중요한 소화 기관들 대부분이 담겨있는 주머니(복강)이다. 인류의 직립 이래로, 이 상처받기 쉬운 부분은 보호받지 못하고 외부에 노출되었다. 복부 기관은 삼배엽(triploblastic) 중 가장 중심에 있는 내배엽(endoderm)으로부터 만들어진다(외배엽으로부터 피부와 신경이, 중배엽으로부터 근육과 골격이 형성된다). 내배엽은 몸의 중심을 관통(입에서 항문까지)하는 긴 관(tube)을 만든다.
그중 복부에 담겨있는 관을 내장(gut)이라고 부르는데, 안타까움에 ‘애(내장)가 타는 장소’이고 실패를 맛봤을 때 ‘속이 쓰린 장소’이다. 영어에는 ‘gut feeling’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 그대로는 ‘내장의 느낌/감정’이지만, 실제로는 직감 즉, 동물적 감각/느낌을 뜻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 때 머리로 분석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할 때, 우리는 “느낌이 팍 왔어!”라고 말한다. 노랫말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고 할 때, 복부에는 싸한 느낌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gut feeling’이다.
발생학적으로 복부 기관은 전문 정보처리기관인 뇌에 우선한다. 작가 김훈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입과 항문이다. 나머지는 다 부속기관이다.”라고 한 말은 적어도 발생학의 관점에서는 전적으로 옳다. 물론 “돼지보다는 소크라테스”를 지향해야겠지만, 먹고 살아남아 섹스하고 번성하라는 생물학적 기본 명제를 깎아내리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먹고 살아남게 해준 입과 항문에 경의를 표하면서, 복부 기관들이 어떻게 감정의 중심인 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감정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감정을 정동(情動, affective)이라고 하는데, 배부름에 따른 쾌와 굶주림에 따른 불쾌가 근간(根幹)이다. 더불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생명체의 전략인 분노와 두려움도 정동에 해당한다. 분노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방해하려는 대상에 대한 격렬한 저항 반응이고, 두려움은 자신에게 닥칠 위기에 대한 사전 준비반응이다.
배부름과 굶주림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위해요소와 직면할 때도 몸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은 내장들은 즉각적으로 이에 반응한다. 압박감이 강할수록 반응도 격해진다.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복통, 설사와 같은 생리적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면 이런 상황을 잘 견디는 대담한 성품을 “배짱이 두둑하다, 배짱이 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생존을 위한 원초적 감정(1차 감정)은 언제나 복부와 관련을 맺기에 복부를 감정의 중심이라고 한다.
소화로 대표되는 복부 기관은 자신에게 소화가 잘되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구별하듯,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판단한다. 판단에 따른 감정은 고스란히 내장기관에 영향을 준다. 예컨대, 상대방의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억지로 받아들여야 할 때 분노를 느끼지만 드러낼 수 없을 때 내장기관은 굳어버린다. 심리적 소화불량에 걸리는 셈이다. 다양한 외적 대상(음식)을 삼키고 소화해 자기 신체화하듯, 심리적으로는 사회생활에서 오는 다양한 관계와 현상을 겪으며 감정 세계를 구축한다. 소화할 수 없는 관계와 경험이 많아질수록 감정 세계는 일그러진다.
“환자가 내장기관에 아무런 장애가 없음에도 어떤 것을 삼키지 못할 때는 환자의 생활환경에 뭔가 삼킬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내장기관의 문제에서 오는 구토증이 아닌 것은 종종 자신의 환경 속에서 이것저것 받아들여 소화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뜻하는 경우가 있다.”
- 바이스 & 잉글리시 [정신신체의학]
이처럼 많은 감정이 내장으로부터 발생해서 몸 전체로 퍼진다. 감정은 일종의 에너지 흐름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방해를 받는다면 자신이 왠지 자유롭지 않다는 느낌과 함께 몸의 특정 부위에 정체되어 통증, 긴장, 만성적 질환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껴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감정이 올라와도 그것들을 표현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종교, 문화, 사회에 의해 통제되어왔기 때문이다. 감정은 한 번 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고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하고 심지어는 파괴적이기까지 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데 힘을 쏟는다.
“우리는 감정과 결합한 불쾌한 소리를 내지 말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친다. 특히 절망이나 고통에서 오는 끔찍한 절규가 그렇다.” - 폴 에크만[표정의 심리학]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는 “너는……해서는 안 돼! 이것을 하지 마라, 그런 소란을 만들지 마라.” 등등 자유로운 감정표현과 그 잠재력을 억누르는 많은 규칙과 금기가 함께했다. 이런 많은 장애물이 우리의 복부에 존재한다. 그 결과 복부는 경직되고 위축되고 때론 역으로 무력하게 부푼다. 감정은 누명을 쓰고 복부라는 감옥에 갇혀버린다. 이것은 우리가 조르바처럼 삶을 만끽하도록 허락하지 않고, 억울하게 자유를 잃은 빠삐용으로 만든다.
게다가 직감인 ‘내장의 느낌(gut feeling)’도 거의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장벽을 치는 것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삶의 유산이 과도하게 두뇌(이성, 지능)에 쏠리고 말았다. 재산상속이 잘못되었다. 감정은 이제 자신의 지분을 회복해야 한다. 억압의 결과인 나약하고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느낌을 넘어 “삶이 이끄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복부를 풀고 감정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속박된 두 나비를 풀어 삶의 가장 위대한 가치인 내적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
*여기서 두 나비는 빠삐용(papillon)과 프시케(psyche)인데, 빠삐용은 프랑스어로 나비를 뜻하고 프시케는 그리스어로 나비를 뜻한다. 영화 “빠삐용”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탈옥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주인공 빠삐용(나비)은 자유를 상징하고, 그리스신화의 프시케(나비)는 영혼을 상징한다.
요근과 장골근을 한데 묶어 장요근이라고 부르는데, 구조적으로 몸의 가장 깊은 근육 단위이다. 장요근은 몸의 가장 중심에서 지지대 역할을 하며 움직임의 중추로서 기능한다. 골반의 기울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걷거나 달리거나 다리를 들어 올릴 때 힘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육상 단거리에서 오랫동안 왕좌를 지켜왔던 우사인 볼트를 비롯한 자메이카 선수들의 가장 큰 신체적 특징이 바로 이 장요근의 두께이다. 그들의 장요근은 다른 국적의 선수들에 비해 현저히 두꺼운 것으로 밝혀져 있다.
장요근은 가장 깊은 느낌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 감정의 지지대 역할을 한다. 복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의 물결에 휩쓸려 다니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따라서 튼튼하고 유연한 장요근은 지탱하는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져다주며, 슬픔과 시련을 겪어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쉽게 일으켜 세우게 만든다.
어떤 이유에서건 부풀어 오른 복부의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골반은 앞으로 기울고 장요근은 수축한다. 몸의 가장 중심부에서 자세를 지탱하고 동작 추진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장요근의 수축은 활동의 위축과 자신감의 감소로 이어진다.
수축한 장요근이 단지 그것 자체만의 문제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것은 보통 호흡의 문제와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가슴과 횡격막의 긴장과 함께 일어난다. 수축한 장요근은 기본적으로 가장 깊은 핵심에 있는 긴장된 몸마음의 한 부분이다.
횡격막은 가슴의 공간으로부터 복부의 공간에 연결된 돔(dome) 모양의 근육이다. 등에서 횡격막은 척추에 붙어있다. 주로 세로(직립 기준)로 형성된 관 모양의 신체조직에서 횡격막은 가로로 공간을 구획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관이다. 횡격막의 맨 윗부분에서 우리는 폐와 심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내장(위, 지라, 간, 쓸개, 신장 등)이 놓여있다.
횡격막은 주된 호흡근이다. 횡격막이 수축하면서 아래로 내려가면 압력 차에 의해 폐는 공기로 채워진다. 숨을 내쉬는 동안 횡격막은 단순히 이완된다. 탄력 있고 유연한 횡격막은 몸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그것은 존재의 행복과 긍정적 기능을 위한 토대이다. 게다가 횡격막은 등과 마찬가지로 몸의 에너지 흐름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에서 볼 때 횡격막은 주전자의 꼭대기에 단단히 자리 잡은 뚜껑 같은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높아진 압력이 뚜껑을 밀어 올리듯이 횡격막은 복부에서 발생한 깊은 감정의 압력을 가슴으로 밀어 올리는 돔(dome) 모양의 대(帶)다.
복부가 끓고 있는 감정으로 가득 차면 그 압력에 의해 횡격막은 자극을 받아 이러한 느낌들을 어느 정도로 표현해야 할지를 조절한다. 횡격막이 유연하고 잘 기능하면 에너지는 그것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흐를 테지만, 반대로 내면의 느낌을 만성적으로 억누르면 횡격막이 경직되어 에너지의 흐름을 방해한다. 이때 복부는 압력밥솥처럼 억압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내부의 감정 에너지는 분출되지 못한 마그마와 같다. 그러면 맥락 없는 간헐적 감정폭발을 일으키거나 되레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과거의 충격이나 감정적 상처들이 근육 수축뿐만 아니라 에너지 수준의 장애, 즉 에너지 감소를 일으킨다. 감정억압에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은 이미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분노나 슬픔의 에너지가 내면에 축적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체는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둘러싸고 있는 근육조직을 수축함으로써 감정을 억누르게 된다. 이로 인해 호흡량이 줄어들고 얕아진다. 이러한 얕은 호흡으로 인한 산소의 감소는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신체적·감정적 질병들은 이런 높은 압박 상태의 밸브로 작용한다. 횡격막의 장애는 감각이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불편한 느낌 쪽으로 이끌고, 행복과 기쁨 같은 긍정적인 느낌도 줄인다.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무언가에 눌려 옴짝달싹 못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갇힌 감정은 심리적인 완고함을 낳고, 이 완고함은 신체적 긴장의 강도를 결정한다.
“횡격막의 자유로운 움직임에 저항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유기체는 횡격막의 움직임과 더불어 반드시 일어나는 두려움 또는 육체적 욕구(성욕)의 감각적 경험에 그 스스로 반대하는 것에 의존한다.”
-빌헬름 라이히
등은 척추가 놓여있는 곳이다. 척추는 거의 모든 몸통의 근육을 붙들고 있으며, 뇌의 연장선인 척수 신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척추가 올바른 위치에 놓이고 부드럽게 기능해야 한다. 그래야 등에 있는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다. 동양 의학적 관점에서도 등에는 방광경이라는 가장 긴 경락과 독맥 그리고 척주관을 타고 흐르는 충맥이 자리 잡고 있다. 요가의 수행 체계에서도 에너지의 중심인 짜끄라와 중요한 세 가지 에너지 통로인 이다, 삥갈라, 수슘나가 척추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척추를 통과하는 신경은 몸 구석구석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기에 심신 긴장의 모든 형태는 척추에서 발견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척추에 있는 긴장과 장애도 몸-마음의 건강과 연결된 내장의 기능 그리고 몸의 각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감정적 장애도 에너지의 흐름을 가로막는다. 그러면 감정의 표현은 방해받고 행동의 자유는 제한받게 된다. 에너지의 압력은 몸-마음의 특정한 부분뿐만 아니라 연결된 척추의 어딘가에 부담을 안겨 주게 된다.
등은 심리적으로 ‘뒤로 감추기(holding back)’와 관련을 맺고 있다. 뒤로 감추기란 자신의 실제 감정이 그러함에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번지점프대에 섰을 때 두려움을 느끼지만 하나도 안 무섭다면서 강한 척한다. 이러한 심리의 이면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나약하게 비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강해야 살아남는다거나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강박적 삶의 태도가 그 원인이다. 또한, 자신이 군인과 같은 특정 직업인이기에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 암시의 결과이기도 하다.
‘강한 나’의 이미지에 적합하지 않은 감정이 일어나거나 타인으로부터 나약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감정이 일어날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게 된다. 특히 남자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사나이 대장부”와 같은 강한 남자 상을 양육자나 주변 사람으로부터 강요받는 일이 흔한데, 이때 마음의 상처, 슬픔,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처리되지 않고 고스란히 등 근육에 저장되어 경직이나 통증을 일으킨다. 사실 감당할 수 없지만 감당해야만 하는(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거나 극복해야 한다고 표현한다) 상황에 내몰리면 허리는 고장이 나고 만다.
해결되지 않은 나약함과의 심리적 투쟁은 등 근육의 수축을 꾸준히 증가시킨다. 이러는 동안에 서서히 척추는 본래의 유연성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나 자세를 경직되게 만든다. 등에 축적된 장애는 결국 분노나 격노로 변해간다. 그리고 만약 이 분노가 표현될 수 없다면 그것은 우울증이나 비통함이 된다. 그때 그것은 몸-마음의 다른 모든 부분에 독이 된다.
많은 사람이 등 근육에 지속적인 긴장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척추 간의 충격 흡수기인 디스크는 영구적으로 억눌리게 되어 신경을 압박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움직임의 범위는 좁아지고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부상의 위험도 커진다. 비록 허리를 잘못 쓴 게 부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리될 수밖에 없는 신체심리적 환경은 이미 갖춰져 있던 셈이다.
등의 하부인 허리는 직접 복부에 연결되어 있기에 복부와 골반 부분의 스트레스와 긴장은 종종 요통으로 나타난다. 비록 통증이 어떤 충격이나 손상 이후에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허리의 만성적 긴장의 경향은 이미 거기에 있었다. 허리의 긴장은 얼마나 많이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는지에 대한 지표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삶의 많은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강제한다면 확실히 굳은 허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 우리는 요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