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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오래된 동서양 의학의 신체심리적 관점

by 이강언

오래된 동서양 의학의 신체심리적 관점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깊은 슬픔을 느낄 때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하고, 심한 불안을 느낄 때면 “애(창자)가 탄다.”라고 말하고, 겁 없는 사람에게 “간이 크다, 담대(膽大)하다.”라고 말한다. 공포에 질려서 다리가 풀리고 후들거릴 때면 “오금이 저리다”고 하고, “눈은 마음의 창(窓)”이라고도 말한다. 풀지 못한 원통하고 애통하고 억울한 마음은 한이 되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화병(火病)으로 나타난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경험적 신체심리학인 셈이다.

동서양의 오래된 의학에서는 이런 신체심리적인 관점을 체계화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서양은 중세를 거치면서 몸과 마음이 철저히 분리되었고, 신체의 질병은 오직 해부학적이고 생리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기계적으로 다뤄졌다. 마음의 문제는 전근대적 마녀사냥 방식으로 접근해서 악마와 악령이 관여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동양은 전통의학(한의학, 중의학, 아유르베다 등)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면서 신체 질환의 원인적 고찰에서 마음이 간과되지 않았다. 현대 심리학의 시각에서 바라본 몸은 아닐지라도, 몸의 질병이 마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점은 신체심리학 또는 신체심리치료의 가능성과 타당성의 토대를 제공한다.



신 라이히(Neo Reichian) 학파의 신체심리학


오늘날 신체심리학을 일컫는 영어권의 용어는 대체로 ‘Somatic Psychology’로 기우는 추세이다. 몸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soma(σῶμα)’에 영어식 접미어 ‘tic’을 붙여 ‘신체의’ 또는 ‘신체적인’이라는 형용사를 만들어 ‘신체의 심리학’ 또는 ‘신체적인 심리학’을 뜻하는 ‘Somatic Psychology’으로 정립되었다(우리말 용어는 좀 더 간결하게 ‘신체심리학’으로 명명했다).


*그리스의 대문호인 헤시오도스 때부터 사용된 소마는 “밀랍 인형이나 시체를 보는 것 같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닌, 살아있고 자신을 느끼며 내면에 대한 인식을 지닌 1인칭 시점의 몸”을 말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영어사전에 등재되어있던 ‘psychosomatic(심신의, 심신상관의)’이라는 말이 단지 어떤 신체 증상의 한 원인을 일컫는 말이었다면, ‘Somatic Psychology’라는 용어에는 1930년대 빌헬름 라이히의 임상 이후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데이터를 축적해온 학문(-logy)적 체계로서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1930년대 초 라이히의 발견 이래로 지난 80년 이상 꾸준히 발전해온 신체심리요법은 “생물학, 인류학, 인간 공간학, 비교 행동학, 신경생리학, 발달심리학, 신생아학, 주산기 연구 등 많은 학문적 탐구의 성과로부터 도출된 합리적 이론을 바탕으로 방대한 지식체계를 갖춘 과학적 학문의 한 분야”인 신체심리학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신체심리학은 “발달모델, 인격론, 심리적 장애와 변화의 기원에 대한 이론뿐만 아니라 치료적 관련성의 기틀을 갖춘 풍부하고 다양한 진단법과 접촉, 동작 그리고 호흡과 관련한 효과적인 여러 치료기법의 사용”을 포함한다.

신체심리학의 이론적 주춧돌은 라이히의 성격분석 연구일 것이다. 그 위에 특정 심리 반응을 일으키는 심층 심리 구조로서의 성격이 어떻게 몸과 기능적으로 상호작용하는지, 몸의 구조와 형태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가 후학들에 의해 진행되면서 신체심리학은 성격, 체형, 심리발달을 아우르는 융합의 심리학이 되었다. 따라서 신체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격 이론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성격이란 무엇인가?

성격은 마음의 영토 위에 지어진 정신적 구조물이다. 어떤 이는 세모 지붕에 네모난 창을 가졌고, 어떤 이는 네모 지붕에 둥근 창을 지녔다. 우리 각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정신적인 구조물에 따라, 같은 세상을 다르게 살아간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이라는 노랫말처럼 네모난 눈에는 온통 네모난 세상이 보인다.

이처럼 성격이란 구조화한 마음으로, 도식적인 심리 반응과 행동 패턴을 일으키는 기제이다. 예컨대, 신경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증상을 일으키는 이면에는 신경증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성격 구조가 버티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개인의 고유한 특성인 성격의 구조를 규명하는 작업을 성격분석(character analysis)이라고 하는데, 성격분석은 현재 심리 상태가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심리의 기본 틀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문제적 심리증상의 결정요인을 파악하고 근원적 차원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신경증적인 성격의 농축이 신경증적인 증상이다. 증상의 결정인자들을 더 깊이 파헤치면 본래의 증상론에서 더 벗어나게 되고 성격론적 토대가 전면에 떠오르게 된다.” - 빌헬름 라이히



성격의 형성

마음의 정형인 성격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약 50퍼센트가량 결정(행동 유전학 연구가 입증)”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리라는 기본적인 결정은 뇌의 구조와 영역에 연결되어 있기에 물리적인 차이(크기, 두께, 신경망의 수 등)뿐만 아니라, 신체 반응의 한 부분인 뇌 활성화 영역과 정도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나머지 50%는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사회와 가정의 안정성, 양육자의 감정 상태와 양육 태도, 충분한 영양공급 등).

네오 라이히학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기는 태내에서부터 7세까지인데, 인생의 처음 7년은 감정체가 계발되면서 기본적인 감정 수준이 결정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감정 수준을 바탕으로 ‘나’의 개념이 형성된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고 한 것처럼 이 시기에 자기 인식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 일생의 습관과 행동 양식 등 가장 기본적인 정서와 성향 대부분이 결정된다.

감정체가 건강하게 자라야 할 이 시기에 폭력, 정서적 학대, 욕구의 차단 등으로 좌절을 겪게 되면 자신이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존재인지, 생존을 위해 안전한지,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나아가 행복한 존재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이 시기에 양육자의 강요로 지식 습득에 치우쳐서(이 또한 정서적 학대이다) 정말 배워야 할 공감, 사랑, 평등과 같은 가치를 간과한다면 이기적 지식인이 되거나 우월의식과 차별주의 따위에 물들어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정상적인 욕구 충족은 감정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밑바탕이며 다음 단계의 순조로운 심리발달을 위한 초석이 된다.

발달 시기에 따른 주된 욕구는 충족되어야 할 경험을 특정한다(프로이트 심리학은 이 시기를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로 나누는데, 이를테면 구강기에는 젖을 빨면서 배고픔의 불쾌를 제거하고 입의 촉감으로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 욕구 충족도를 바탕으로 삶의 질이 결정된다.

아이가 모태에 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산모의 건강과 정서적 안정감이고, 생후 1년간에는 영양공급과 양육자와의 신체적 교감이 가장 중요하고, 2~3세경에는 정감 어린 대화와 놀이를 통한 정서적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 4~7세경에는 강압 없는 규칙의 이해와 습득을 통해 자존감을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시절 집안이 부유했거나 가난했거나 그것은 아이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이에게 악마가 입는다는 그 옷을 입히고 명품 유모차를 태우고 값비싼 젖꼭지 대용품을 입에 물린다고 해서 이야기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양육자의 상태와 양육 태도이기 때문이다.

출산 전과 출산 직후의 주산기(프로이트 체계에서는 다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유아기의 발달 과정에 따라 나뉘는 구강기(0~1세), 항문기(1~2, 3세), 남근기(3~5, 6세) 등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단계별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 시기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된다(사랑에 대한 집착, 음식에 대한 집착, 청결에 대한 집착, 권력에 대한 집착 등). 또한, 욕구가 얼마나 충족되었느냐에 따라 집착의 강도도 결정된다.


*집착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고착(fixation)이고 나머지는 해리(dissociation)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고착은 마치 한발을 어딘가에 걸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려는 것과 같다. 심리적 자석처럼 그 시기의 ‘충족되지 않은 나’로 끌어당긴다. 반대로 해리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거부하고 혐오하게 된다. 해리는 고착의 부정적(negative) 형태이다. 가령, 구강기에 필요/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구강 고착(oral fixation)이나 구강 해리(oral dissociation)가 일어나는데, 구강 고착은 음식 중독을 일으키고 구강 해리는 음식 혐오(거식증)를 일으킨다.

혐오와 중독의 심리적 뿌리는 같다. 이 기전(機轉)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작동하여 정서적 불안이나 허전함을 느낄 때면 음식에 집착하면서 홀린 듯이 먹어 치우거나 반대로 식음을 전폐하기도 한다. 폭식과 식음 전폐, 애착과 증오, 지배와 복종, 책임과 자유와 같은 양가성(ambivalence)은 나타나는 시기와 양상은 다르지만 비롯된 대상은 같다.


이 시기에 뿌리를 둔 심리적 문제는 “무의식적 감정(unconscious emotion)”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다루기가 쉽지 않다. 이 시기의 기억은 성장하면서 의식의 저편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긴다. 성인 대부분이 이 시기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그 기억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몸에 새겨지고 마음의 심층으로 가라앉아 라이히의 말처럼 “성격론적 토대”로 저변화(底邊化)할 뿐이다.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inner child)는 여전히 울면서 손가락을 빨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손가락을 혐오할지도 모른다. 이 시기에 형성된 망각의 강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가로질러 흐른다. 이 레테의 강을 건너 무의식 층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계속 이것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이것이 프로이트가 그토록 무의식의 내용물을 규명하는 데에 매달린 이유이다). 깊게 형성된 거대한 무의식 층이 도식화된 반응을 하도록 만든다.


“특정 감정에 대해 어떤 행동 패턴이라도 형성될 수 있다. 일단 학습되면, 이런 행동 패턴은 미리 설정된 것처럼 자동으로 작동한다.” - 폴 에크만(Paul Ekman)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든지 “고치고 싶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와 같은 반응들은 그 행동과 습관의 뿌리가 무의식 층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보여준다(물론 무의식의 발견만으로 반드시 치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들이 단지 심리적, 정신적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신체와 강하게 연관된다고 신체심리학은 말한다. 결국, 이것들은 신체의 구조적 특징이나 경직을 수반한 불균형의 정도로 드러나게 된다. 그 결과 개인의 역사를 담은 특정한 몸의 형태 즉 체형을 만드는 것이다.


성격의 구조

성격이라는 심리적 구조물을 이루는 주요 다섯 기둥(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이 있다. 그중에서도 외향성과 신경성은 성격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단세포의 생존 반응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메바는 쾌를 일으키는 자극은 쫓아가고 불쾌를 일으키는 자극은 피해 숨거나 웅크리고 죽은 척한다. 즉, 쾌라는 보상을 얻기 위해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외향성의 원형이고 불쾌라는 위험을 피해 대상과 멀어지는 것이 신경성의 원형인 셈이다. 라이히는 이것을 쾌감 속에서 ‘세상을 향하는 것’과 불안 속에서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외향성은 쾌감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하는 성격 요소이다. 그러므로 보상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보상이 클수록 쾌감도 높아진다), 대상획득에 치중하며 거기에 따른 위험을 감수한다. 다시 말해,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는 통설을 몸소 실천하는 성격이다. 사교적이고 쾌활하고 열정적이다. 생리적으로는 중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쾌감 호르몬의 일종인 도파민과 관련된다. 외향성의 대척점에 내향성이 있다. 내향성은 세상을 향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향한다. 따라서 비사교적이고 사색을 통한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지만 스스로 고립될 수 있다.

신경성은 나쁜 것을 피하려고 발달한 성격 요소이다. 예컨대 공포는 잠재적인 위험을 경계하고 실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생겨났고, 걱정은 주변이나 마음속의 숨겨진 문제나 위험요인을 찾기 위해 생겨났으며, 혐오는 해롭거나 병을 일으킬 가능성을 피하고자 생겨났다. 생리적으로는 대뇌변연계의 편도체와 해마랑 연관된다(뇌과학 실험에서 편도체를 제거한 원숭이가 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확인됨). 위기에서 살아남기에는 적합하지만, 스트레스를 잘 받고 걱정이 많고 우울감도 높아 도리어 삶의 질은 낮아질 수 있다. 그 대척점에 안정성이 있는데, 지나치면 주변에 무신경해져 위험에 대처할 수 없다.

성실성은 충동의 억제와 행동의 절제를 통해 실패를 줄이려고 발달한 성격 요소이다. 자발적이고 체계적이어서 일정한 성과는 보장되나, 임기응변이나 변화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떨어진다. 생리적으로는 대뇌의 전전두피질과 관련된다. 성실성이 극단적으로 높으면 강박성격장애(obsessive-compulsive personality disorder)로 나타난다. 그 대척점에 있는 충동성이 높으면 부주의하고 산만하며 행동을 절제하기 어렵다. 심하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로 나타난다.

친화성은 슬기로운 사회생활을 위해 발달한 성격 요소이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잘 도우며 높은 신뢰도를 지닌다. 반면 자신을 잘 내세우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획득하기 어렵다. 그 대척점에 있는 배타성이 높으면 적대적이거나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상대를 찍어누르려고 하며 그 극단에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있다.

마지막으로 개방성은 창조적 확장으로 삶의 지평을 넓히려고 발달한 성격 요소이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새로운 문명의 도구를 개발하고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문화를 개척한다.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과 정신세계의 광대함으로 나아간다. 반면 혼자만의 이상한 믿음에 빠지거나 정신병적인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 대척점에 있는 폐쇄성이 높을수록 보수적이고 실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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