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운동, 취미, 휴직, 정신과라는 다섯 가지 방법
이 글을 읽는 모든 직장인분, 정신 나간 직장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일단 얼마나 정신 나간 직장인지 설명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서 직장 상황에 대해 간단히 써 보겠습니다. 발령 3일 차, 이유도 없이 찍혀서 모든 분의 출장 결재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분이 저에게 달려오셔서 “모든 직장이 이렇지는 않아. 의원면직하면(그만두면) 안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학기에 다섯 번 넘게 화재 비상벨을 누릅니다. 그리고 어느 반이 제일 먼저 나오는지 팔짱을 끼고 운동장 구령대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폭언과 협박, 비합리적이고 과도한 업무, 분명히 몇 년 뒤 정기 감사가 들어오면 담당자인 내가 중징계를 받을 것이 당연함에도 내리는 지시 사항들. 이만하면 정신 나간 직장이라는 것은 다 설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정신 나간 직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써 보겠습니다.
첫번째, 상담. 저는 상담이 없었더라면 이 직장에서 몇 년동안 버티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를 제일 성숙하고 어른으로 만들어 준 것도 상담입니다. 상담을 하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돌아보고 그때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남들이 “이 정도 일쯤은 사회생활 하면 다 생겨.”라고 말해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중심을 세울 수 있습니다. 단순히 ‘짜증 나, 화나, 열 받아.’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멸감, 억울함, 답답함.’과 같이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로 명료해지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떠돌아다니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차분히 내려갑니다. 감정에 치달아서 상대방과 싸우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특히 갈등이 발생했을 때, 나를 보호하면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웁니다. 상담을 받아 보니 상담이란 단순히 공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하게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과 건강하게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연습해 보고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담가에게 말하고 내일 직장 빌런과 말할 때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나의 표정과 몸짓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상담가와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상담 초반 회기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심리검사입니다. 이를 통해서 나의 특성, 나의 어린 시절로 인한 심리적 영향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왜 현재 이 직장 상황을 괴로워하는지 이유를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저는 남들보다 자율성과 합리성이 높습니다. 자율적으로 즉, 스스로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합리성이 높으므로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을 참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직장 빌런이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것과 비합리적인 업무 지시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괴로운 일이 있다면 상담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상담이 나를 정신적으로 제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둘째, 운동. 저도 운동 정말 싫어합니다. 운동 부족으로 인해서 근육과 체력이 없는 전형적인 인간입니다. 그
러다가 ‘올해만큼은 내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정말 직장 스트레스로 죽겠다.’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정말 줄었고 스트레스에 대처할 힘이 생겼습니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하루 종일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더라도 운동을 하다 보면 몸이 다칠까봐 자세와 호흡에 집중하게 되어서 직장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운동 후에도 부정적인 생각이 훨씬 줄어듭니다. 체력이 늘어나니까 다른 취미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에너지가 더 생겨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매일 조금씩 내가 들 수 있는 운동 기구의 무게가 점점 늘어나면서 나의 한계를 조금씩 부숩니다. 내 한계를 부수는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사실 2년 넘게 상담사님이 “제발 운동하세요. 정말 제발 부탁이에요.”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2년 동안 운동을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수영이나 필라테스도 잠깐씩 했었습니다. 그런데 근육 부족형 인간은 운동을 하면 더 다칩니다. 다쳐서 오랫동안 치료도 받았습니다. 근육 부족형 인간에게 운동을 추천해 드리자면, 병원에
서 재활 치료사나 물리 치료사 등으로 오래 일했던 분이 차린 자그마한 헬스장을 추천해 드립니다. 작은 헬스장이기에 다른 직원이 아니라 재활 치료사 경력이 있는 사장님이자 트레이너께서 운동을 가르쳐 주실겁니다. 분명 남들은 쉽게 하는 동작인데도 근육 부족인 내가 하면 허리나 무릎이 아플 겁니다. “지금 이 동작을 하니까 허리가 아파요.”라고 말을 하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분이기에 어떻게 동작을 해야 하는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거나 다른 동작을 알려주실 겁니다. 그렇게 몇 달째 운동하니까 다치지 않고 매일 단백질을 챙겨 먹고 매일 단단해진 내 근육을 만지고 있습니다.
셋째, 취미. 발생한 갈등 자체를 없애는 것도 맞지만 긍정적인 다른 생각을 자꾸 해야 하잖아요. 그 긍정적인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게 취미입니다. 취미... 참 만들기 쉽지 않죠. 지나다니다가 원데이 클래스를 하는 곳을 봤고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지르세요. 신청하세요. 그렇게 저는 작년에는 플룻을, 올해는 도예를 하고 있습니다. 취미의 좋은 점은 직장인 자아에서 벗어나서 고유한 내 자아로서 있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직장과 나를 분리하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직장이라는 것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하나의 취미를 하게 되면 점점 하고 싶은 취미가 생겨나요. 직장에 얽매여 있지 않고 고유한 내 자아가 하고 싶은 것을 점점 더 꿈꾸게 됩니다. 하고 싶다고 생각한 그 모든 것을 다 할 순 없더라도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충만해지는 게 느껴져요. 취미의 가장 좋은 점은 행복이 충만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취미를 하고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할 틈이 사라져요. 취미도 정말 큰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직장 나부랭이 따위는 내 머릿속에서 저편 너머로 사라집니다.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바로 실행하세요. 직장으로 흐려진 고유한 나 자신을 위해서요.
넷째, 휴직과 퇴사. 이 주제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휴직과 퇴사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저는 공무원이기에 퇴사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휴직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오래 받으면서도 상담사님이 ‘휴직은 고려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저는 항상 단호히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번아웃이 제대로 오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휴직과 퇴사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저는 요즘 진지하게 휴직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책이 나올 때쯤엔 휴직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동안 내가 휴직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면 휴직한다는 것 자체가 직장에서 굉장히 튀는 행동이고 내가 그 정도까지 지쳤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창피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내가 천천히 말라 죽고 있었더라고요.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혼자 있는 앙상한 나무 같았습니다. 내가 남들 눈에 좀 튀면 어떤가요. 남들은 “왜 저런 일로 휴직까지 해?”라고 말한다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막에서 벗어나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곳이 사막임이 확실하고 더 있다가는 정말 말라죽을 것 같다면, 하세요. 휴직과 퇴사. 도망치는 것이 어떨 때는 옳습니다.
다섯째, 정신과. 상담은 몇 년째 받았지만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과는 가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심각한 번아웃 증상을 겪고 나서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왜 이제야 갔을까. 더 일찍 정신과에 갈걸.’이라는 후회를 합니다. 이유는 휴직하려면 정신과 진단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정신과 초진 예약이 쉽지 않습니다. 정신과 열 군데 정도에 전화했는데 두 달이나 넉 달 뒤에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가까스로 정신과를 예약했지만, 한 번의 방문만으로는 진단서를 발급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 당장 휴직하고 싶은 위급한 상황이지만 계속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점이 정말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정도 상황은 견딜 수 있지만, 이 상황이 몇 달째 이어진다면 힘들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즉시 정신과를 예약하세요. 이미 힘들 때는 정신과를 예약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휴직도 어렵고요.
정신 나간 직장을 다니고 있는 모든 분, 정말 대단한 겁니다. 집 청소가 밀렸더라도, 방에 옷이 산더미같이 쌓
여 있더라도, 싱크대에 몇 날 며칠 동안 설거지해야 할 그릇들이 잔뜩 있더라도. 그 직장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칭찬받아야 할 일이에요. 진짜 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자살 충동이 들었다고 하니까 저의 발령 동기가 “언니, 난 소중한 내 발령 동기인 언니를 잃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어요. 여러분 우리 스스로를 잃지 마요. 힘들면 도망칩시다. 도망가요! 떠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