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어느새 두 돌이 되어간다.
신생아 시절엔 매 순간이 벅찼고,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고, 의사 표현도 분명히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취향이 생기고, 그걸 또렷하게 표현하는 데서 ‘아, 정말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바로 "아냐!"
처음엔 너무 귀여웠다. 그 작은 입에서 나오는 당당한 한마디가 어딘가 우습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 빈도가 점점 많아지고, 상황을 가리지 않게 되면서부터는 조금씩 당황스러움이 커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좋아하던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 놀고 있기에, 함께 앉아 “이거 해볼까?” 하고 말을 걸면 바로 “아냐!”
손을 밀치거나, 몸을 뒤로 빼고 도망치듯 도망간다. 그러다가 몇 분 뒤 다시 내 옆으로 와 장난감을 건넨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묘하다. ‘내가 방해가 된 걸까?’
‘왜 아빠가 도와주려는 건 거부하는 거지?’
그렇게 혼자 생각을 굴리다 보면 괜히 속상해진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아냐!"는 단순한 반항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말은 ‘지금은 내가 혼자 하고 싶어’라는 감정의 표현이고, ‘내 방식대로 해보고 싶어’라는 의지의 신호일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성장의 한 과정이라는 걸, 나는 요즘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기는 지금 자기만의 세계를 넓혀가는 중이다.
이전엔 엄마 아빠가 주는 모든 것이 기준이었고, 정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주도하려는 욕구가 자라나는 시기다.
그 욕구가 제일 먼저 표현되는 말이 바로 "아냐!"라는 거다.
부정어지만, 그 속엔 아이의 주체성과 독립성이 숨어 있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마음이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그 마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그저 그 순간의 반응 하나에 휘둘리기보다, 아이의 감정 흐름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려고 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아이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그게 어렵고도 중요한 부모의 역할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내 생각도 변해간다.
예전엔 ‘무조건 도와줘야지’, ‘옳은 방향으로 끌어줘야지’라는 마음이 앞섰다면, 이제는 ‘조금 느려도 괜찮아’, ‘스스로 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소중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의 관계는 밀고 당김의 반복인 것 같다.
서로 조금씩 맞춰가고, 타이밍을 조율해가며, 마음을 동기화시키는 것.
그게 결국 좋은 부모 자식 관계로 가는 길이 아닐까.
물론, 아직도 “아냐!”라는 말에 가끔은 상처받는다.
특히 하루 종일 일하고 지쳐서 돌아왔을 때, 반갑게 다가갔는데 아기가 뿌리치면 순간적으로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이 시기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아이는 “아냐!” 대신 “같이 하자”라고 말할 날이 올 테니까.
지금은 그저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가 최선을 다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기다려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육아 방식이다.
육아는 늘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리면 아이는 스스로 다가온다.
그 기다림이 때론 힘들지만, 아이가 안겨와서 웃는 순간 모든 것이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오늘도 마음을 비우고 다시 기다려본다.
아이의 "아냐!" 속에서 나는 매일 배운다.
참을성, 이해심, 기다림,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속도를 존중하는 마음.
그렇게 조금씩 나는 더 나은 아빠가 되어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가 내게 달려와 "아빠 같이 하자"라고 말해주는 날이 오겠지.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아냐!”를 받아낸다.
서운한 마음보다, 아이의 성장을 보는 눈이 더 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