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가적일상추구 Sep 29. 2020

위로가 더 많이 필요한 시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종족인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이 아닌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의 잣대를 타인의 생각 속에서 가늠합니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했을 까요.

이렇게 타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오롯이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기 조차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볼까요?

어려서부터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엄친아, 엄친딸들과 비교당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실체적인 인물들이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며 더 힘든 나락으로 나를 몰아갑니다.

특히, 요즘같이 SNS가 발달한 시대에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 인해서도 고통을 받습니다.

그 화려한 삶, 성공만이 있는 삶, 마냥 행복해 보이는 삶, 사랑으로 둘러싸인  삶 등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러운 삶들이 휴대폰 속에 널리고 널려 있습니다.


그런 남들의 화려함과는 달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우울하기 그지없습니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 8.9%, 88만 원 세대, 연애. 결혼을 포기한 초식남, 비좁은 고시원에서 살수 밖에 없는 주거 소외자, 50대면 직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인 우리 아버지, 빈곤 노년층 증가 등등등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포장된 인간의 삶은 점점 더 화려해지는데 대부분의 현실의 삶은 더욱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갑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위로받고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위로이라는 따뜻한 말이 공허한 울림이 되어버린 것이 요즈음입니다.

사실 위로하면 손 내밀면 닿는 곳에 있어야 함에도 저 자신조차도 이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것에 굶주려 허상처럼 보이기만 하는 신기루 같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위로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다시금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자신을 소진시켜 갑니다.

그러다 지칠 대로 지치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 일상이라는 습관에 젖어 들어 자신의 실존을 지운채 인간의 삶이라는 본질에 이끌려 연명하게 됩니다.

물론 그 지친 일상은 욕망으로 가득 채우며 신을 기만했다는 이유로 배고프고 목마른 형벌을 받은 탄탈로스처럼 무언가를 갈구하나 결코 채울 수 없는 것들을 원하게 됩니다.

말 그래로 신의 형벌을 받은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뜻한 인간적인 위로와 위안이면 그 허상을 버리고 나의 삶으로 돌아와 살 수 있음에도 그 한마디 따뜻한 위로가 부재된 세상에 내버려진 오늘날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시대적 상황이 위로와 위안이 부재되어 더 많은 위로로 조금 더 나에게 회귀하여야 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매거진을 앞으로 써나가고자 합니다.

'따뜻한 위로가 있는 작은 마당'

이 안에서 타인 속에 자신을 철저히 묻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통하여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어렵겠지만 저 자신도 따뜻한 위로가 목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가엾은 사람 중 하나이기에 무엇이 우리를 위로와 위안이 예전보다 많이 필요한 세상으로 몰아갔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그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겠습니다.

이전 01화 어른이 된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