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집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밥을 먹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딱히 가족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나이 어린아이들보다 어른으로서 아침잠이 덜하다는 이유로 일찍 일어나 집을 어슬렁거립니다.
그러다 7시를 전후로 해서 혼자 아침을 차려먹습니다.
차려 먹는다는 말이 거창할 정도로 소박합니다.
밥 한 공기에 좋아하는 젓갈이 잔뜩 들어간 김치 그리고 낙지 젓갈에 아무 국 한 그릇이면 족한 먹거리로 밥상을 차리는데 국 끓는 시간 말고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먼저 밥을 먹고 나면 나중에 처자식이 먹을 밥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혼자 밥 먹고 처자식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밥을 안치고 나서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맛있는 밥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확한 물의 양을 가늠할 맑은 정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루는 좀 물이 많았는지 밥이 질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질은 밥보단 된밥을 좋아합니다.
특히 찹쌀이 들어간 밥은 아주 싫어하죠. 반대로 된밥을 좋아하는 저는 동남아시아 쪽으로 가면 밥을 아주 많이 먹습니다.
남미라고 부르는 쌀들이 찰기가 없죠. 저는 그런 밥들이 씹히는 식감도 좋고 더 오래 씹으니 달고 고소한 맛이 더 강해지고, 더불어 소화까지 잘 되니 고추장을 가지고 가서 상추쌈을 싸 먹거나 볶음밥을 아주 배 터 지 먹고 다닙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먹을 밥이 잠결인지 전날 먹은 술기운인지 흐릿한 정신으로 질게 되었으니 자책과 함께 미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저를 직장으로 재촉합니다.
출근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서기 전,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아이가 막 식탁에 앉길래 미안한 마음에 한마디 했습니다.
"ㅇㅇ아! 아빠가 밥에 물을 좀 많이 넣어서 밥이 질게 되었다. 미안하다"
그러자 딸아이가 이야기합니다.
" 아빠! 괜찮아. 밥이 질면 떡 같아서 맛있고, 밥이 되면 꼭꼭 씹어 먹게 돼 더 고소하고, 원래는 먹는 밥은 원래 맛있기 때문에 나는 다 맛있어"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기왕 먹는 거, 기왕에 하는 거, 어차피 하게 될 것, 살면서 안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당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왜 그렇게 화를 내 거나 불안해하며 살았을까요?
잘 돼도 좋고, 좀 안되고 좋고 다 나름의 장. 단점이 있을 터인데 왜 우리는 그중 단점만 생각하며 힘들게 살까요?
잘 된 밥도, 찰 진 밥도, 된 밥도 다 좋다는 딸아이의 말에 출근길 또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들이 우리 앞에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을까요?
그러고 보면 딱히 사는데 중대한 일들이 아닌 것들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령 시험을 보는 수험생이 있다고 하죠. 합격을 하면 물론 좋죠 밥이 잘 된 것처럼, 하지만 불합격한다고 해서 마냥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된밥도 진밥도 다 나름의 맛이 있듯이, 좀 더 삶과 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어디서부터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되는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주니깐요.
이 명제를 가지고 모든 문제를 대입해 보니 아무것도 힘든 것이 없습니다.
직장에서의 진급. 재테크. 가족. 친구. 목표. 희망 모두 다 원하는 대로 되면 그대로 좋은 것이고, 설령 안된다 하더라고 새옹지마의 교훈처럼 우리에게 나중에 더 나은 무엇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8살 작은 친구의 긍정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아침입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짧지 않은 인생 작은 일들에 불평. 불만을 늘어놓기보단 그런 상황에서도 긍정을 보는 작은 희망의 눈 빛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지내며 밥이 잘 됐는지, 질은지, 된 지를 한 번 느껴보시고 그 나름의 밥맛을 음미하시는 하루 보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