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큰 병에 걸린 것 같아"
심란한 얼굴로 말하는 동생의 말속에 우울이 떨어진다.
한 살 밑 여동생은 나와는 닮은 듯 다른 성격의 다섯 자매 중 둘째 딸이다. 큰 딸인 나와는 친하면서 많이 싸우기도 했던 친구 같은 동생이다. 함께 나이 들어가며 사는 얘기, 자식얘기로 끝이 없던 우리의 수다 주제가 여기가 아프고 저기도 탈이 났다는 울 엄마 평생 레퍼토리로 꼭 닮아간다.
"갱년기 증상이야. 너는 늦게 오는 거야. 나는 10년 전부터 세상 모든 증상이 다 오더라. 지금도 진행형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즐겁고 바쁘게 지내"
갱년기 선배인 내 말에 수긍하는 듯 대답하는 동생이 못내 안타깝다.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맞벌이 강행군에 집안일과 두 딸 뒤치다꺼리로 평생 종종거리며 살아온 동생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의 삶은 부모세대에서 우리 세대로 이어졌지만 mz세대 자식들에겐 온전한 이해가 될까 싶은 우리는 일명 낀 세대다. 자식들의 이해보다 같은 세대인 자매의 넋두리가 공감백배로 훨씬 위안이 되기도 한다.
새 해를 맞아 고향에 온 동생과 나의 인생 수다를 아흔여섯의 아빠는 무심히 듣고 계신다. '심장이 두근대더니 이명에 불면증까지, 온갖 증상이 다 왔다'는 두 딸 근심에 구순을 넘긴 아빠의 대답이 지혜롭고 명쾌하다.
"잠이 안 오면 내 몸의 문제를 확인해 잠을 잘 수 있게 스스로 해결해야지. 몸이 피곤하면 잠이 안 올 수가 없는 건데ᆢ"
평생 특별히 아픈 곳 없이 지내시며 잘 주무시고 잘 드시는 아빠의 비결은 바로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운동이다. 단순하지만 실행 난이도 최상의 이 규칙을 96세의 연세에도 지키고 있는 울 아빠 눈에 운동은 뒷전인 채 아픈 몸만 탓을 하는 우리 자매는 하수임에 분명하다.
뻔한 근심 같은 우문에 현답을 주신 우리 아빠, 더도 덜도 말고 지난해 같은 건강을 올 해에도 기원해 본다.
100세는 따놓은 당상인 우리 아빠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