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몸과 마음, 따로 또 같이
"몸이 아프면 살고 싶고, 마음이 아프면 죽고 싶다."
1부. 몸과 마음, 따로 또 같이
자율신경계를 자동차의 자율주행 시스템이라고 보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계기판과 같은 몇 가지 지표가 있습니다.
자율신경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두 가지 지표: 심박변이도HRV와 압반사민감도 BRS
만성통증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자율신경계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몸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HRV(Heart Rate Variability 심박변이도)와 BRS(BaroReceptor Sensitivity 압반사민감도)입니다. 이 두 가지 검사는 여러분의 자율신경이 얼마나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계기판과 같습니다.
HRV (심박변이도): 서스펜션의 유연성 점수
HRV란 무엇인가요?
자동차가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릴 때 서스펜션이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해 주듯이, 우리 몸도 스트레스라는 '도로의 요철'을 만났을 때 자율신경이 그 충격을 흡수하고 빠르게 회복합니다. HRV는 바로 이 '유연성'을 숫자로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의 심장은 기계처럼 정확히 일정한 간격으로 뛰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심장은 한 번 뛸 때마다 그 간격이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순간에는 심장이 0.8초마다 뛰다가, 다음 순간에는 0.85초, 그다음에는 0.78초 간격으로 뛰는 식입니다. 이렇게 심장 박동 사이의 간격이 변화하는 정도를 심박변이도라고 합니다.
왜 심장 박동이 변해야 건강한가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심장 박동이 일정하게 똑같은 간격으로 뛰는 것보다 적절하게 변화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신호입니다. 이는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가 순간순간 변화하는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심박수가 약간 빨라지고, 숨을 내쉴 때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심박수가 약간 느려집니다. 또한 혈압의 미세한 변화, 체온의 변화, 감정의 변화 등 수많은 요인에 반응하여 심박동 간격이 끊임없이 조정됩니다. 이러한 변화가 크고 역동적일수록, 즉 HRV가 높을수록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부드럽게 흡수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것입니다.
HRV는 어떻게 검사하나요?
HRV 검사는 매우 간단하고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심전도(ECG) 검사처럼 가슴에 전극을 붙이거나, 손가락 끝에 센서를 끼우는 방식(PPG)으로 진행됩니다. 보통 5분에서 10분 정도 편안하게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상태에서 심장 박동을 기록하여 컴퓨터가 자율신경의 상태를 그래프와 숫자로 표시해 줍니다. 검사 중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편안하게 쉬면서 자연스럽게 호흡하면 됩니다. 검사 전에는 카페인 섭취를 피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HRV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HRV가 높다면 자율신경이 유연하게 작동하며, 스트레스에 잘 적응하고 빠르게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서스펜션이 부드럽고 유연해서 스트레스가 될 법한 울퉁불퉁한 도로도 편안하게 주행할 수 있습니다. 반면, HRV가 낮다면 자율신경이 경직되어 있으며,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회복이 느리다는 뜻입니다. 서스펜션이 딱딱해서 작은 충격에도 차체가 크게 흔들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HRV가 감소했다는 것은 심장 박동의 역동적인 변화가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며,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우리 몸의 적응 능력이 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HRV 감소는 당뇨병, 만성피로, 만성 심부전, 신경계 질환 등 많은 만성질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위험 요인입니다.
만성통증 환자분들의 경우, 지속되는 통증이 교감신경을 계속 자극하여 HRV가 낮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몸이 계속 '비상 모드'에 있어서 회복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신호입니다.
BRS (압반사민감도): 급제동 반응의 민감도
BRS란 무엇인가요?
자동차가 갑자기 언덕을 오르거나 급커브를 돌 때, 좋은 자율주행 시스템은 즉시 속도를 조절합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일어서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놀랐을 때 혈압이 급격히 변하는데, 이때 자율신경계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심박수를 조절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바로 BRS입니다.
우리 몸의 목 부분(경동맥)과 심장 근처(대동맥)에는 압력수용체(baroreceptor)라는 특별한 센서가 있습니다. 이 센서들은 혈압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뇌에 신호를 보내고, 뇌는 즉시 자율신경을 통해 심박수를 조절합니다. 혈압이 올라가면 심박수를 낮추고, 혈압이 내려가면 심박수를 높이는 방식으로 혈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BRS는 어떻게 검사하나요?
BRS 검사 방법은 혈압과 심박수를 동시에 연속적으로 측정하여 컴퓨터가 혈압 변화와 심박수 변화의 관계를 분석합니다. 혈압이 1mmHg 변할 때 심박수가 얼마나 변하는지를 계산하여 민감도를 측정합니다.
일부 병원에서는 발살바 수기(Valsalva maneuver)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환자가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약 15초 동안 숨을 참으면서 압력을 가하는 방법입니다. 이 과정에서 혈압과 심박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여 자율신경의 반응성을 평가합니다.
BRS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BRS가 높다면 혈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빠르게 심박수를 조절합니다. 급제동이나 급가속 상황에서 즉시 반응하는 똑똑한 자율주행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죠.
BRS가 낮으면 혈압 변화에 둔감하여 심박수 조절이 느리고 부적절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상황 변화에 반응이 느려 차량도 운전자도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BRS가 낮으면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둔해져서, 갑자기 일어설 때 어지러움을 느끼거나(기립성 저혈압), 운동 후 회복이 느린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심혈관 질환, 고혈압, 심부전 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만성통증을 겪고 계신 분들은 종종 "검사해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HRV와 BRS 검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지속되는 통증은 교감신경을 계속 자극하여 몸을 긴장 상태로 만듭니다. 이로 인한 자율신경계의 대표적인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HRV가 감소하여 스트레스 회복력이 떨어집니다
• BRS가 감소하여 혈압 조절 능력이 약해집니다
•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피로가 누적됩니다
• 작은 자극에도 통증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HRV와 BRS는 우리 몸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얼마나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판입니다. 만성통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면, 이 지표들을 통해 자신의 자율신경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율신경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만성통증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자율주행 시스템의 고장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