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의 발치>

by 변희영

나는 우리 남편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정말이지 결코 없다. 남편이 무엇이더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온 힘을 다해 가족을 사수하는 존엄한 존재가 아니더냐. 한자 모양을 새겨봐도 하늘 천을 뚫고 오른 지아비 ‘夫’가 그걸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 남편이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가장의 의무와 권위 사이에서 권위 쪽으로 살짝 경도됐을 뿐이지, 뭐, 그 정도면 기본은 갖추지 않았을까, 나는 항상 만족하고 감사하고 살기... 란 쉽지 않지만, 그런대로 노력은 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이 일화가 남편을 능욕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님은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남편이 치과에 발치를 예약했다던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다. 그러나 일곱 시가 넘도록 남편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전화라도 해볼까?, 의아하던 차에 문자가 도착했다.

<이 뽑았어. 피가 계속 나와. 차 안에 있어.>

예상대로 발치는 했는데, 피가 계속 나온단 얘기였다. 그렇다면 집에 들어와서 지혈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지 왜 여태 차 안에 있단 거지? 이상했다. 나는 문자를 입력하다 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남편은 문자 입력에 서툴렀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문자를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지금의 내 의문을 해소해주기에 그의 문자 입력 기술, 말하자면 문장 완성 능력은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한참 동안 신호음이 울렸지만,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띵~ 하는 문자음이 울렸다.

<지금 전화 못 해. 집 앞이야 나와 봐.>

잉? 이거 어쩐지 느낌이 싸한데?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삣 섰다. 그때 또다시 띵,띵~ 문자음이 연달아 울렸다.

<거즈 마슼>

<마스크>

잉? 이게 뭔 소리야... 나는 문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것이 거즈와 마스크를 의미한단 걸 알아챘다. 동시에 그것이 필요하단 의미라는 것도 재빨리 파악해냈다. 나란 여자, 아무리 생각해도 명민하기 그지없어. 문득 기특하단 생각도 들었다. 뭔가 큰일을 해낸 득의양양한 기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남편은 평소에 이런 자잘한 부탁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집구석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 찾고자 하는 물건의 위치를 물어보기는 해도 찾아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으며 당연히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길 요구했다.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챙겨주는 세심함을 원하고, 그런 부드러움에 껌뻑 넘어가며 감동하는 나와는, 그런 점에서 너무도 달랐다. 우리가 강하게 부딪히는 대척점은 흔히 거기에서 출발했다. 그런 남편이었으므로, 이런 문자는 위급상황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마땅할 것이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으며 약통을 찾았다.

마음이 급했다. 약통을 뒤지다 못해 내용물을 바닥으로 쏟아부었다. 그리고 다시 헤쳐 모으기 반복했다. 그리고 간신히 솜 한 봉지를 찾아내는 쾌거를 이뤄냈다. 혹시라도 바닥에 떨어뜨릴까, 나는 솜 한 봉지를 손아귀에 꽈악 쥐고는 천방지방 지방천방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치아를 무려 여섯 개나 뽑아냈으니, 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혈이 안 된다면 그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설마 이대로 과부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발치하다 사망한 남편 시신이라니..,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남편의 차는 어둑한 주차장에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차안의 실내등을 켜 두었던 것이다. 불안했다. 마음을 졸이며 차 문을 열어보니, 그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채 운전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대고 있다기보다는 무너져 있었다. 마치 꿔다 둔 보릿자루가 옆구리 터져 무너진 모습이랄까. 아니면 구길 대로 구겨진 걸레 뭉치랄까.

하지만 남편은 차 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미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런 남편의 미소를 보기는, 강산이 한 번 변하고 그 강산이 다시 몸을 뒤트는, 태곳적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까닥까닥하며 내게 뭔가를 지시했다. 그것이 조수석에 앉지 말고 뒷좌석으로 가라는 의미임을 파악하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신속히 뒷좌석으로 올라탔다. 그리고는 손아귀에 땀이 날 정도로 쥐고 있던 솜뭉치를, 남편의 얼굴께로 들이밀었다. 그런데 솜뭉치를 당장에 받아야 할 남편이 고개를 마구 가로 저으며 '웅~웅!' 하는 묘한 교성, 아니 괴성을 질러대는 것이 아닌가.

'대체 뭐라냐...' 하,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이내 강인한 인내심으로 꾸욱 눌러 참았다.

ㅡ 왜? 피가 많이 나서 그래?

남편은 다시 묘한 교.. 아니, 괴성을 내며 손가락으로 조수석 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피가 묻은 물티슈 몇 덩어리와 마스크 하나, 그리고 정체 모를 비닐봉지가 갈가리 뜯긴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ㅡ 저게 뭐? 저거 어쩌라고?

그러자 남편은 다시 묘한 웅웅~~ 그.. 요사한 괴성과 더불어 머리를 좌우로 내젓는데, 핏발선 양쪽 눈알은 3D화면의 그것처럼 튀어나올 듯 불뚝댔다.

아.. 어지럽다. 거즈에 재갈 물린 남편의 입과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벌건 거즈와 저 묘한 괴성의 뒤엉킴으로 나는 자꾸 어질어질 멀미가 났다.

ㅡ 빨리 솜부터 바꿔. 피 많이 난다며?

나는 어지럼증을 간신히 참아내며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대답 대신 콧구멍만 벌름벌름, 눈을 세모꼴로 만들더니 급기야는 제 가슴을 쾅쾅,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저것은 또 뭔 시추에이션이냐.‘

ㅡ 아, 말을 해. 말을! 아니, 그럼 문자를 해. 문자를! 엉?

답답하긴 나도 매한가지인지라, 결국 버럭 짜증을 내지르고 말았다. 남편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양복 안주머니에서 펜을 뽑아 들더니, 뒤적뒤적 조수석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거즈를 물고 입을 앙다문 남편의 이마에 빨래판 무늬의 주름이 꿈틀댔다. 잠시 후, 수첩과 펜을 꺼내든 남편이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내 얼굴 앞에 펼쳐 보였다.

<거즈하고 마스크!!! 사와!!!>

그리고는 옆 좌석에 뒹굴던 비닐쪼가리와 마스크를 펼쳐 종주먹질하듯 내게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자세히 들여다보니, 갈가리 뜯긴 비닐봉지는 거즈가 들어있던 포장이었는데 남은 게 하나도 없었고, 활짝 펼쳐진 마스크 안쪽에는 핏물이 짙게 번져 있었다. 나는 급히 대답했다.

ㅡ 알았어. 일단 여기 솜 있으니까, 먼저 거즈 대신 이걸로 바꿔봐.

남편은 거칠게 도리질을 하더니 다시 수첩을 들어 뭔가를 끄적였다.

<노>

노, 그것은 솜은 싫고 거즈를 사오라는 말이었다. 당장 지혈해야 할 판국에 급한 대로 솜이면 또 어떻냐, 나는 간곡히 물었으나 남편은 도리질만 세차게 반복할 뿐이었다. ’아, 재수 없어.‘ 그렇게나 정신 없는 와중에 약통을 뒤엎고 찾아서는 손에 땀이 나도록 꼭 쥐고 뛰어왔건만, 쓸모없다고 치워버리라니... 허무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아무튼 저 인간은 한참이나 재수가 없네. 생각하는데, 남편이 또 불쑥, 수첩을 들이밀었다.

<8282>

순간 어두운 차 안과 극심한 노안 탓으로 나는 그만 8282를 1818로 잘못 읽어 버렸다. ’아니, 이 인간이 치아가 아니라 간댕이를 뽑아버렸나‘

ㅡ아, 십팔십팔이 뭐야. 욕하냐?

나를 향해 불쑥 뒤를 돌아본 남편의 동공이 문득 커지더니, 다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퍽,퍽! 샌드백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오랑우탄 몸짓으로 몇 번을 더 가슴을 두들기던 그는, 수첩 위에 또 다시 뭔가를 끄적였다.

<8282 = 빨리빨리>

무슨 암호 해독문처럼, 숫자와 부호와 그리고 글자까지, 남편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서 8282의 의미를 해독해 준 것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그만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남편의 사무친 듯 애타는 눈빛과 진지한 해독 문구가 어찌나 안타깝고 또 기막히던지,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웃어 대느라 눈물이 나더니 급기야는 정신줄마저 놓아버릴 것 같았다.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은 잠시 어리둥절하단 표정을 짓더니, 곧 눈꼬리를 매섭게 올려붙이며 나를 노려봤다. 아무래도 뭔가 사단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그만 정신이 퍼뜩 나서 허둥지둥 차 문을 박차고 약국으로 뛰어갔으니, 대한민국 정부는 뭐하냐, 우리 집 문 앞에 열녀문 하나 세워줘야지.


새로운 거즈로 갈고 마스크로 입을 가린 후에야 남편은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간 후에 거즈를 교체하자고 내가 말했지만, 피가 계속 흘러서 안 된다며 남편은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내가 사 온 거즈로 갈기 전에 이미 피는 멈춰 있었다. 그러니까 남편은 혼자 있던 두 시간 동안 세 번 거즈를 교체했는데, 두 번째 거즈에도 피가 흥건하니까 지혈이 안 된다 생각하고 그 난리를 시전하셨던 것이었다.

이제 와 밝히는 건데 남편은 서른 살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치과를 가본 사람이다. 어느 날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가 많이 쑤시는데 한번 가볼까?” 하고 치과에 다녀온 후로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치과라며 부르르 몸서리를 쳤었다. 그러하니 여섯 개나 되는 치아를 뽑고, 당장 죽어가듯 출혈을 호소하며 묘한 교성, 아니 괴성을 내지른 것은, 생각해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두 시간이나 거즈를 입에 물고 있었으니 침이 흘렀을 것이고 그 침엔 물론 피가 섞여 있었을 것이니, 마스크에 피가 묻은 것은 물론이요 흐르는 침을 닦아낸 물티슈에 '붉은 혈액이 녹아' 흐름은 당연지사 아니었겠는가. 그걸 모르고 피가 멈추지 않는다며 살 떨리는 문자를 보내고, 창백한 얼굴로 도리도리 고개 흔들며, 심지어 오랑우탄 가슴치기 열연한 그분이 무조건 나빴다.

그래도 세상 착한 나의 성정은, 이미 멀쩡해진 남편 앞에 죽을 쒀서 바치고 혹시라도 심기를 건드릴까 발소리마저 죽이며 걸어 다녔으니, 훗날 남편의 결초보은을 기대해 보기... 는 개뿔이고, 남편이 치과 가는 날엔 반드시 핸드폰 전원을 꺼둬야 할 것이라고, 굳은 다짐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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