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끙끙 앓았다. 가슴이 꽉 조여오면서 숨을 쉴 수 없었고, 목구멍은 불덩이처럼 타들어갔다. 가슴을 쾅쾅 두들기다 눈을 떴는데,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아, 아.., 아,아. 입을 벌려 발성하듯 소리를 내봤지만, 입 밖으로는 으,으...으, 으으윽, 괴기스런 소리만 딸려 나왔다. 무엇보다 갈증이 심했다. 돌덩이처럼 몸이 무거웠으므로, 물을 마시러 갈 때는 초인적인 의지를 필요로 했다. 간신히 물을 마시고 돌아오면, 목구멍은 금세 다시 뜨거워졌다.
허긴, 초저녁부터 온몸이 간지러웠다. 양팔과 등짝에 두드러기가 올라온 걸 확인했었다. 긁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 벅벅 긁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나 급기야는 숨통이 막히고 목구멍이 타들어가니, 온몸이 근질대는 건 차라리 가벼운 고통이었다. 수 없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간신히 아침에 눈을 뜨긴 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건 확실히 응급 상황임이 분명했다. 엠블런스에 실려 가야 딱 맞을 듯한데, 혀가 말을 안 들어서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말을 하려 해도 소리로 발산되질 않았다. 으,으...으, 으으윽 끔찍한 발음만 내뱉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동네병원으로 기어갔다. 생각해보니, 다 죽어가면서도 옷을 입고 신발에 발을 꿰차는 것은 의지라기보다 본능이었던 듯 싶다. 살겠다는 힘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임이 분명했다.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건, 내게는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비교적 ‘좋은’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갓 중학생이 되었을 때, 어느 남학생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남아는 내 이름을 대며 전화를 바꿔 달라고 했다. 난데, 누구? 내가 물었다. 그는 잠시 움찔하더니, 옆에 있던 누군가에게 외쳤던 것이다. 야, 목소리 디게 이뻐! 남학생이 전화기 아랫부분을 손으로 막은 것 같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조금도 먹먹하게 들리지 않고 매우 명확한 발음으로 들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누군가가 대답했다. 야, 목소리 예쁜 여자애들이 못생겼어! 키득키득, 지들끼리 웃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뚝, 전화가 끊겼다. 별 미친놈들 다 보겠네. 나는 열을 냈지만, 목소리가 예쁘다던 말만은 깊이 새겼다. 고등학생이 돼서 방송반 시험을 봤을 때도 그랬다. 이차로 치렀던 시험이 ‘마스크 테스트’란 거였다. 시를 낭독했던가, 테스트는 점심시간에 있었다. 교실에 있던 스피커를 통해 테스트를 치르는 방송반 지원자 학생들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다들 한 마디씩 던졌는데, 맑고 낭랑하다는 평이 제일 많았다. 그때 부여받은 별명이 <목소리‘만’ 옥구슬>이었다. 목소리‘라도’ 옥구슬인 것이 어딘가, 나는 만족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귀히 여기고 자랑스러워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목소리‘만’ 옥구슬인데!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의 심정이 이런 거였을까? 지느러미를 돌돌 말아쥐고 바닷가 바위틈에서 눈물 흘리던 인어공주의 참담함을 알고도 남을 것 같았다. 아, 설마 이대로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니겠지. 하느님은 목소리‘만’ 가진 나에게서 정녕 목소리‘마저’ 빼앗아 가려는 것인가. 가지지 못한 걸 체념하며 살 순 있지만, 가진 것마저 빼앗길 순 없다고 나는 다짐했던가. 내가 젖 먹던 힘까지 우려내서 병원에 기어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런 절실함도 한몫했음이 틀림없었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고개를 갸웃대고 눈동자를 크게 뜨며 ‘이 아줌마, 대체 뭐하는 짓이여?’ 마음속으로 묻고 있을 간호사에게 사지(死地)에 빠진 내 상태를 설명하느라 사지(四肢)를 동원해야 했다. 으,으...으, 으으윽 괴성을 단전에서 끌어내고 비틀어진 걸레의 표정까지 연출해내자, 간호사는 포기한 듯 메모지를 내밀었다. 나는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증상을 메모지에 적어 넣었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 최대한 깔끔하고 지적인 글씨체를 구사했음은 물론이다.
다행히 가끔 드나드는 동네병원이었다. 간호사는 끔찍한 내 꼬락서니와 소름 끼치는 괴성에 놀라는 듯했지만, 감사하게도 나를 내치지 않았다.
ㅡ 어제 뭘 잘못 드셨나요?
동갑내기 의사가 물었다. 의사의 얼굴은 그날따라 유난히 동글동글 동그랬다.
뭘 먹었더라.., 사실 그것은 두드러기가 올라오면서부터 내가 끊임없이 복기했던 것이었다. 두드러기 증세가 보이기 전날, 나는 과음을 했다. 동창들과 가볍게 산행했고, 뒤풀이로 거한 술자리를 가졌다. 마침 동창 중 한 명이 양주를 챙겨왔고, 또 다른 동창이 운영하는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세상 편안한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게다가 가게 근처엔 제법 규모가 있는 시장이 있었다. 저녁밥을 대신할 뭔가를 사 오겠다며 몇몇이 시장에 갔고, 그들은 양팔이 늘어져라 안줏거리만 잔뜩 사 들고 왔다. 치킨이며 떡볶이 그리고 어묵 같은 분식류가 술안주로 깔렸다. 그 음식들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러나 그보다는, 어느새 불콰해진 우리가 “고! 고!”를 외치며 자리를 옮겨 갔던 주점의 안주, 그러니까 도토리묵과 꼬막에 더 심증이 갔다. 꼬막을 얼마나 먹었더라... 안주로 나온 꼬막은 대부분 반으로 쪼개져 있었지만, 입을 벌리지 않은 퉁퉁한 꼬막도 많았다. 제대로 손질이 안 된 꼬막을, 대충 삶아서 접시에 담아 내놓은 것이었다. 주점의 사장님은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꼬막 안주 따위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굵고 허스키한 사장의 목소리는 화통을 여러 번 삶아 먹은 성량이었으므로, 온 주점이 사장님 목소리로 들썩댔다. 아무리 봐도 사장님은 장사보다는 잡담을 더욱 선호하는 듯했다. 꼬막 안주가 어쩌고 하는 크레임을 걸었다가는 저 화통 삶은 목소리에 나도 더불어 삶기게 될 것 같았다.
동창들의 젓가락질이 몇 번 오가고 나니, 접시는 금세 바닥을 보였다. 접시에는 끝내 쪼개지지 않은 퉁퉁한 꼬막만 남고 말았다. 나는 꼬막을 딸 줄 몰랐고, 술기운 탓에 손가락과 뇌의 연결고리가 널뛰고 있었으므로, 입을 꾸욱 다물고 곱게 앉은 꼬막을, 그 깊은 속을 열어낼 수가 없었다.
“흥,흥, 흐흐흥, 꼬막이 먹고 시퍼. 꼬막 따 먹고 시퍼.” 내가 징징댔다. 아마도 좀 거북한 콧소리를 냈던 듯도 싶다. 동창 중 누군가가 뭘 따먹냐고 키득댔고, 누군가는 시끄럽다며, 알아서 처먹으라고 고함을 날렸다. 그때, 앞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꼬막은 꼭지를 이렇게 해서 따 먹는 거지.” 그는 숟가락을 들고 꼬막의 꼭지에 들이댔다. 그러나 알코올에 푹 담긴 뇌의 상태는 저나 나나 마찬가지여서 그의 숟가락은 자주 꼬막을 헛돌았고, 시범을 보인다던 그는 결국 숟가락을 치켜든 채 주점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으니, 쿵! 뭔가 바닥을 제대로 강타한 강렬한 충격음이 지진처럼 울렸다.
“오모! 쟤 자빠졌다! 어떡해. 저분 자빠졌다고!” 내가 뭇 동창들을 돌아보며 고함을 질렀지만, 각자의 술독에서 제각기 허우적대던 뭇 동창들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야, 꼬막은 어떻게 됐냐고?” 기다리다 못한 내가 악을 쓰면서 숟가락을 집어 던졌지만, 자빠진 누군가는 일어나질 않았으며 그러므로, 마침내, 꼬막은 열리지 않았다. 말캉한 꼬막을 입 안에 넣을 기대는 좌절되고 말았다. 실망한 나는 텅 빈 잔에 소주병을 기울이다 잠시 테이블에 뺨을 들이댔고, 눈을 잠시 감았고, 이윽고 세상은 문득,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 뒤의 장면은 아무리 떠올려도 복기되질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결론은 꼬막이었다.
ㅡ 꼬으마악(꼬막) 잉거 가.트.아.요.
풍선만큼 부푼 혀를 간신히 돌리며 내가 더듬더듬 말했다.
동글동글한 동갑내기 의사는 동글한 눈의 짙은 쌍꺼풀을 치켜뜨며 물었다.
ㅡ 혹시 술도 드셨나요?
ㅡ 아... 네.
ㅡ 아이고, 세상에나. 술까지! 새벽에 응급실엘 가셨어야죠. 이거 큰일 날 뻔했네. 내일까지 차도가 없다면, 큰 병원에 가셔야 해요. 입원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는 어쩐지 화가 난 듯 보였다. 아파서 죽어가는 건 난데 의사 표정이 왜 저리 똥 씹은 듯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참고 있었던 환자의 미련함에 대한 의사의 질타였으며,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연민이었을 거라고 나는 해석하기로 했다. 평소에 경험한 우리 동글이 의사는, 참말이지 선하고 친절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동글이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경우는, 주로 감기 탓이었지만 온몸의 두드러기 때문일 때도 적잖았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나는 두드러기 증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었다. 딱히 음식물 섭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면 불현듯 찾아오는 증세였다.
처음으로 두드러기를 경험한 건 취학 전 아동이었을 때였다. 동네에는 떡볶이와 오뎅 그리고 뽑기며 딱지 등을 파는 아이들의 성지(?)가 있었다. 커다란 천막을 두른 그곳의 작은 입구 안으로 들어서면 아이들은 늘 바글댔다. 저런 곳에서 사 먹으면 탈난다!고 엄마는 늘 당부했지만, 그곳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진짜로 탈이 날 줄은 몰랐다. 그날 밤 나는 온몸에 올라온 두드러기와 고열 증세로 심하게 앓았고, 결국 큰 병원에 입원했다. 피부에 도포된 두드러기는 굵고 두툼한 지네를 닮아서 돌출된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대성통곡했다. 피가 맺히도록 벅벅 긁다가 공포에 치떨며 통곡하는 나를 미친 듯이 업고 뛰었다고, 엄마는 회상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 병원 침대 곁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근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간호사가 링겔병을 들고 와서 주사를 놓을 때도 그랬다. 주삿바늘은 공포스러울 만큼 거대했다. 게다가 그 주삿바늘에 피부를 찔린 채로 누워 있어야 한다니. 지네처럼 생긴 두드러기가 돋아난 피부 위에 바늘을 꽂고 그만 생을 마감할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을 바둥대며 버티기 시작했다. 엄마와 간호사를 향해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거부하며 통곡했다. 내 눈에 들어온 링겔은 거대한 살인도구와 다름 없어 보였다. 좀처럼 내 발작이 그치지 않자 엄마가 제안을 했다. 주사를 잘 맞으면 링겔병을 집으로 가져가도록 해주겠다고, 병원 놀이 상자에 저렇게 멋진 링겔병은 들어있지 않다고 말이다. 내 귀가 쫑긋했다. 그러고보니 링겔병은 투명하고 맑았고, 묵직한 것이 꽤 쓸만해 보였다. 영악하고 눈치 빨랐던 나는 어느새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링겔병을 들고 있을 친구 하나(동네 애들 중 젤 덜 떨어진 애가 그 배역에 당첨됐다), 병자 역할을 할 친구 하나, 그리고 주사를 맞을 환자역의 칭구 하나(여기에는 평소에 누런 콧물을 달고 살던 앞집 아이가 배치됐다.), 마지막으로 길고 날카로운 바늘을 맘대로 조정할 수 있는 의사역 하나, 물론 그 배역의 주인공은 나였다. 나는 두 눈을 감았고 팔을 내밀었다. 핏줄을 더듬는 간호사의 차가운 손가락이 저승사자의 그것만큼 섬뜩했다.
그 이후로도 두드러기는 잊을 만하면 제 존재를 과시하듯 피부 위에 현현(顯現)하곤 했다. 링겔병을 탐하는 나이는 지났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링겔 주사를 맞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두드러기가 재발하면 나는 무조건 병원부터 찾았다. 다행히도 약만 복용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두드러기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므로 전날의 내 상태가 응급실까지 갈 위급한 상황이라고는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그란 의사의 뾰족한 반응은 의외였고 나는 좀 억울한 심정이었다. 그러므로, 두드러기 증세는 음식물이나 술 때문만이 아니고 스트레스나 무리한 신체 활동이 원인 아니겠냐고, 제가 며칠간 좀 무리를 했다고, 그러니까 진단하시는데 정상 참작 좀 해달라 말하고 싶었건만, 풍선만하게 부어오른 혀는 입천장까지 들러붙어 미동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의사는 청진기를 들어서 내 숨소리를 확인하더니, 이번에는 터질 듯 부어오른 내 혓바닥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동글한 의사의 얼굴이 눈앞에서 동글동글 굴러다니자 나는 그만 헛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동글이 의사 얼굴과 퉁퉁 부어 쟁반 같던 내 얼굴과 목구멍을 틀어막은 풍선만한 혓바닥까지, 눈앞의 것과 입안의 것들이 둥글둥글 모여들어 깨춤을 추고 있었다. 이대로 죽으면 내가 들어갈 관 모양도 둥글둥글굴러 다닐 것 같았다.
동글이 의사는 나를 주사실로 인계했다. 간호사는 엉덩이 주사를 맞게 될 테니 바지를 벗으라고 말했다. 나는 바지를 내릴 기운마저 소진됐으나,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떠올리며 힘껏 바지를 내렸다. 그러나 너무 과격하게 엉덩일 까버리는 바람에 허벅지까지 홀라당 노출됐고, “흐억... 두드러기 넘 심해요!” 간호사는 주사기를 든 채로 비명을 질렀다. 주섬주섬 옷을 거두며 나는 좀 민망했지만, 고통은 마지막 품위까지 집어삼켰으므로 그깟 무안함은 문제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몽롱한 기운으로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내가 살아있었다. 완강했던 혀의 무게가 허술해졌다. 혀를 살짝 돌리며 소리를 내보았다. 아... 아... 아? 아악? 아아... 소리가 제대로 나왔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울긋불긋하던 얼굴의 표피가 (비록 누렇게 떠 있었지만)일관된 색조로 돌아왔다. 나는 연기 연습하듯 거울을 보며 말을 걸었다. “너니? /음... 너야?/ 엉... 나야./ 나니?/음...나야? /너니..?/ 엉... 너야.”
아프다던 애가 거울을 향해 중얼대는 모습을 보며, 나를 살피러 들어왔던 엄마는 문 옆에 서서 움직일 줄 몰랐고, 따라 들어온 강아지는 고개만 갸웃대고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살아난 스스로에게 넋이 나갈 만큼 감격해서, 자꾸만 자꾸만 거울에게 말을 걸었다. “너니?/ 음... 너야? /엉... 나야. /나니? /음...나야?/ 너니..? /엉... 너야.”
죽음의 문턱을 넘은 생은, 환희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동글이 의사를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했다.(물론 약을 처방받아야 했기도 했다.) 의사는 예의 그 친절한 얼굴로 나를 진료해줬고 앞으로 꼬막만큼은 조심하라며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내 말을 들은 동창들은 왜?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에게도 두드러기 발진은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혼자서 몰래 뭘 먹은 거 아니냐며 의심하거나, 술을 작작 (처)먹으라거나, 다음에 한 번 더 꼬막을 먹어보자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각각 나보다 안주를 밝혔거나, 나보다 더 과음했거나, 나를 마루타로 삼고자 했지만, 나는 감사했다. 그런 거였다. 살아난다는 건 환희를 경험하는 일이었고, 생에 대한 감사를 깨닫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