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불러도 병아리는 대답이 없고.

by 변희영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팔던 병아리에 얽힌 추억은, 누구에게든 흔하고 평범한 기억일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나 작은 생명이 삑삑 소릴 내며 종종대다 넘어지고, 다시 종종대며 천방지축 돌아다니는 모습은 신기하고 귀엽기만 해서, 어린애들이 병아리 장수의 호객행위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교문 앞에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있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아이들 틈을 헤집고 들어갔다. 우와, 거기에는 병아리가 있었다. 시멘트 바닥과 종이 상자 안에 그리고 병아리 장수의 손바닥 안에 온통 병아리였다. 노란 솜뭉치가 삐약삐약 소리를 냈다. 나는 한눈에 병아리에게 반하고 말았다. 병아리 장수가 내 손바닥 위에 병아리 한 마리를 올려주었다. 두 손바닥을 모아 살짝 오므려보았다. 병아리는 놀랄 만큼 가벼웠다. 손아귀 안에서 병아리의 심장이 콩콩 울렸다. 손바닥의 진동을 따라 내 작은 가슴도 콩콩댔다. 병아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저잣거리 같은 아이들의 소란에서, 지저분하고 차가운 길바닥의 위험에서 구해주고 싶었다. 주머니를 털어 병아리 두 마리 값을 지불했다. 병아리 장수는 작은 상자 안에 병아리 두 마리를 담았다. 조심해서 들고 가라. 병아리 장수가 말했다. 내게로 건네진 내 생의 첫 번째 생명이었다. 동생은 병아리를 보자마자 밥을 주자고 했다. 배고파 보여. 동생이 말했다. 식당 위에 있던 식빵을 조각내서 던져 주었다. 작은 부리를 옴지락대며 병아리들은 식빵을 잘도 먹었다. 배가 불렀던 걸까, 식빵을 먹어치운 병아리들은 작은 상자 안에서 빨빨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자가 너무 작아. 동생이 말했다.


우리가 어디서 사과 상자를 구해왔는지 그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동생과 함께 사과 상자를 잘라 창문도 뚫어주고 드나들 수 있는 현관문도 만들어주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병아리를 베란다에 풀어주고 종이 상자로 만든 병아리 집도 그곳으로 잘 옮겨 놓았다. 물그릇을 놓았고, 과자며 밥풀 따위를 담은 밥그릇도 예쁘게 챙겨 두었다.

그러나 적은 언제나 내부에 있는 법이었던가. 시장에서 돌아온 엄마가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은 우리를 발견하곤 비명을 질렀다. 병아리를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다고, 엄마는 야단이 났다. 당장이라도 병아리를 내다 버릴 기세였으므로 동생과 나는 울고불고 사정을 했다. 언젠가 동생이 징징대며 투정하자, 방금 배달 온 자장면을 엄마가 통째로 집어 던진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병아리 같은 걸 사오지 않는다는 맹세를 받은 후, 엄마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계시던 외할머니집으로 병아리를 보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를 했다.


할머니는 병아리를 바라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할머니 입가에 스르르 번지던 미소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병아리들은 동생과 나의 아쉬움엔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 집 베란다에서 종종대며 신나게 오갔다.

병아리는 쑥쑥 컸다. 우리는 매일 학교가 끝나자마자 외할머니집으로 달려갔다. 외할머니는 어떤 생물이든 왕성하게 살리는 재주가 있었다. 할머니 집엔 여러 마리의 새들도 함께 살았는데, 그중엔 샛노란 앵무새도 있었다. 앵무새는 ‘안녕’이라든가 ‘잘 가’, 또는 ‘할머니’ 같은 몇 개의 단어를 따라 할 줄 알았는데, 외할머니 말은 곧잘 따라 하다가도 우리가 말을 걸면 고개를 외로 틀곤 했다. 앵무새의 눈이 니들은 꺼져!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앵무새의 깨알 같은 까만 눈알이 얼마나 얄밉던지, 나는 할머니 몰래 새장을 거세게 흔들어 놓는 걸로 앵무새에게 복수를 하곤 했다.


할머니는 화초 가꾸기에도 남다른 기술이 있었다. 아니, 그건 기술이라기보다 신비롭고 기이한 능력이었다. 마치 주술을 읊던 고대 제사장의 능력 같은 것 말이다. 할머니의 베란다엔 화초를 심어둔 화분이 그득그득했고, 베란다 밖으로 위태롭게 걸린 받침대에는 팬지꽃이나 넝쿨식물이 작은 화분에 담겨 와글댔다. 거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실의 네 귀퉁이에는 제법 큰 화초들이, 제 구역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떡 버티고 있었다. 그것들은 너무도 기세등등해서 때로 나는 화초 앞에서 위축되기도 했는데, 할머니의 꾸중을 들은 날엔 특히 더 했다. 왕성한 생명력은 비참한 죽음보단 맘에 드는 일이었지만,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누군가에게는 어쩐위화감을 주는 거라고, 나는 좀더 성숙한 후에야 내가 위축됐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의 병아리도 화초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몸집이 커졌다. 어느새 노란 털이 누렇게 바래고 병아리도 아니고 닭도 아닌 것들이 베란다를 누비기 시작했다. 내가 지켜주기에는 병아리가 너무 커버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동생과 나는 서서히 병아리에 흥미를 잃게 시작했다. 가끔 할머니 집에 들를 때만 베란다 쪽을 힐끗거렸을 뿐, 더이상 병아리가 아닌 병아리는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우리가 다른 재밋거리를 찾아 병아리를 완전히 잊어버린 사이에, 병아리는 완연한 닭이 되었다. 할머니는 닭들의 모이를 주거나 똥을 치울 때면 우리에게 들으라는 듯, 얘들이 모이를 많이 먹는다거나, 묽은 똥을 자주 싼다고 제법 큰 소리로 중얼거리셨다. 그러나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어서 우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앵무새는 물론이고 다른 새장을 향해서도, 심지어 화초나 팬지들을 향해서도 할머니는 늘 말을 걸었고, 어떤 날은 허공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나 혼자 있을 때였는데, 멀뚱한 표정으로 중얼대던 할머니의 독백 장면을 목격했다.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나는 할머니가 진심으로 걱정돼서 엄마한테 이야길 했는데, 엄마는 무심한 얼굴로 할머니들은 다 그래,하고 퉁쳐버렸다. 그래서 할머니의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주문처럼 ‘할머니는 다 그래. 다 그래.’를 반복했다. 만약에 할머니가 정신줄을 놓아버린다면, 다 커버린 닭이며 얄미운 앵무새, 그리고 위압적인 화초까지 모두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들을 돌봐줄 사람은 할머니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묻곤 했던 거다. 그러니까 엄마, 할머니는 노망 안 나지? 처음엔, 엄마가 어떻게 알아?하던 엄마도, 자꾸만 묻고 또 묻는 나를 당해낼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질다. 안 나. 안 나! 노망 안 나! 네 외할머니가 노망날 일은 절대 없어! 신경질적 발언이었지만 엄마의 다짐을 듣고 나니, 정말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고, 비로소 나는 안심했다. 실제로도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치매 증세를 보이지 않으셨다. 아주 말끔하게, 지독히도 명징한 정신력으로 살다 가셨다.


그날은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저녁이었다. 식구가 모두 모여 복작댔으니, 아마도 주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는 외할머니집에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공기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슬슬 배가 고픈 참이었고 수준이 맞지 않은 동생의 공기 실력에 짜증이 났다. 마침 잘 됐다 싶었던 나는, 동생의 손등에 얹혀있던 공기 몇 알을 낚아챘다. 엄마가 밥 먹으래. 그만하자! 내가 말했다. 동생은 우거지상으로 엄마에게 달려가, 언니가 지 맘대로 공기를 빼앗았다며 징징댔다. 엄마는 나를 맵싸한 눈으로 노려보며, 왜 동생 것을 빼앗냐며 야단쳤고, 엄마는 왜 나한테만 뭐라 해? 엄마가 밥 먹으러 가야 한대서 그만하자 한 거라고! 나는 바락바락 대들었다. 엄마는 늘 그랬다. 동생과 싸우면 항상 동생 편을 들었다. 엄마가 일찍 죽으면, 너랑 큰언니가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늦게 태어나서 엄마 품에 오래 있지 못하는 막내가 얼마나 불쌍하냐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우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곁에 있었다. 내가 네 살이 되던 해 엄마 품을 빼앗은 동생은, 결국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엄마 곁에 붙어있던 셈이었다. 그날 나는 엄마한테 대들다가 등짝을 한 대 얻어맞았고, 입이 댓발 나와서는 할머니집을 향했다.

할머니는 온 집안의 전등이란 전등은 죄다 켜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머니는 번쩍대는 필라멘트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는 문득 눈이 부셨는데, 그것이 지나치게 환한 전등 탓이었는지 할머니의 미소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의 그런 미소를 봤던 순간은 다시 없었다. 집안에는 누르스름하고 묵직한 냄새가 질퍽하게 고여 있었다. 식탁에는 수저며 젓가락의 배치가 끝난 상태였고, 거대한 냄비 하나가 식탁의 중앙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냄비의 크기와 위세로 보아, 그것은 할머니가 우리를 초대하기 위한 준비한 요리임이 분명했다. 이 시간을 위해 오래 기다렸다는 듯, 할머니는 살짝 흥분된 얼굴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 순간, 냄비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연기 장막이 부엌 천장을 향해 거칠게 솟구쳤다. 우와, 크다! 누군가가 감탄했다. 나는 눈을 비볐다. 뿌연 연기가 눈앞을 가로막았는데, 심지어 뜨겁기까지 했다. 잠시 후에야 나는 냄비 속 요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거대한 냄비 안에는 다리를 하늘로 뻗고 허연 배를 드러낸, 대가리가 사라진 닭 두 마리가 철퍼덕 자빠져 있었다.

- 할머니가 닭 잡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맛있게들 먹어라.

닭 다리를 주욱 뜯어서 아빠와 할머니의 앞접시에 하나씩 올린 후, 우리에겐 닭 다리의 살점만 발라주며 엄마가 말했다.

- 할머니! 이거 그 닭이야?

할머니집으로 오던 중에, 엄마 몰래 나한테 꼬집힘을 당하고는 대성통곡했던 동생이 퉁퉁 부운 눈을 비비며 물었다. 그래. 그 놈들이지. 할머니가 대답했다. 어서 먹어라,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어. 할머니는 소금 종지를 우리 앞으로 밀었다.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고 동생은 허걱,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봤다. 그러나 동생은 살코기를 씹기 시작하자 금세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닭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기름이 잔뜩 묻은 손으로 쩝쩝 소리를 내며 맛나게 씹어댔다. 그것은 마치, 동굴 안에 몰려 앉아 사냥해온 동물을 정신없이 뜯고 있는 원시인들의 만찬 같았다.


나는 발코니와 식탁을 번갈아 살피며, 이것이 정말 그것일까, 마음속으로 묻고 또 물었다. 할 수만 있다면 냄비 속 자빠진 닭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망연자실한 내게, 엄마는 음식 앞에서 묵념하냐고 다그쳤고, 할머니는 기어코 내 입 안으로 살코기를 밀어 넣었지만, 나는 그것을 끝내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가족들은 약속한 듯 닭만 뜯었다. 누런 기름이 둥둥 뜬 냄비 안에서 닭이 된 병아리들, 아니 백숙이 된 병아리들도 말이 없었다. 앵무새도 입을 다문 공기 속으로 쩝쩝대는 소리만 되돌이표를 돌고 돌았다. 세상은 아무런 언질도 없고 특별한 표정도 없이, 시치미를 뚝 떼며 제 배만 채우는 곳이란 걸, 어쩌면 나는 그때 알아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오돌오돌 쌀알처럼 올라온 닭의 껍질, 비닐처럼 질기게 늘어진 그것의 거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심한 구역질을 느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뱃속에선 쓰디쓴 신물이 올라왔다. 순간 콧등이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코를 훌쩍이고 말았다.

- 어머! 쟤 우나봐. 엄마가 나를 향해 눈을 크게 뜬 순간,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처절한 소리를 내며 울어버리고 말았다. 어둑해진 발코니를 바라보며 나는 넋을 놓고 울었다. 기름이 잔뜩 묻은 손가락을 빨다 말고 동생도 흐엉,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울어도 백숙은 병아리가 될 수 없었고, 그것이 더욱 슬퍼서 나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오랫동안, 나는 백숙을 먹지 못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