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출근길은, 꽃샘추위가 안간힘으로 겨울의 끝자락을 붙들던 초봄의 계절이었다. 경칩이 지났다지만 바람이 몹시도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십 도를 맴돌고 있었다. 지하철은 출근길의 직장인으로 넘쳐났고, 지하철 문이 닫힐 때마다 사람들은 한쪽 발이나 들고 있던 가방을 문틈으로 끼워 넣었다. 문은 닫히는 듯 다시 열렸고, 그때마다 한 뭉치의 사람들이 열차 안으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서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듯 보이는 열차 안으로 그들은 어떻게든 밀고 들어왔다. 여기서 밀린다면 이번 생은 끝이라는 듯 그들은 악다구니로 달려들었다. 온몸에 빨판을 장착한 것처럼 팔이든 발이든 몸뚱이 어느 부위든 일단 하나가 들어와 붙으면 나머지 몸 전체는 저절로 딸려 들어왔다. 마치 알갱이가 가득 찬 컵 안에 알갱이 사이사이로 액체가 채워지듯, 사람들은 용케도 공간을 찾아내 제 몸을 구기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엉겨 붙고 늘어져 실려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몇 번의 비명과 또 몇 번의 악다구니와 다시 몇 번의 짜증을 게워내고서야 내가 하차해야 할 정류장에 열차는 멈춰 섰고, 문 앞에 다가서기도 전에 나는 폐병 환자의 각혈처럼 왈칵 쏟아지며 문밖으로 내쳐졌다.
그 길,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십여 분을 걸어가는 길은 조악하고 후줄근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가난한 동네였다. 가게들은 촌스러운 원색의 간판을 걸어두고 길가에 늘어서 있었다. 밤새 전쟁이라도 치른 곳인 양 가게 앞 근처엔 쓰레기들이 즐비했고, 골목의 구석구석엔 누군가가 토해 놓은 이물질들이 그대로 방치된 채였다. 맘껏 조롱당한 듯, 데데한 길거리 풍경은 지하철의 아비규환만큼 끔찍했다. 나는 일 년이 좀 넘는 동안 그 길로 출퇴근을 했다. 사람들은 눈에 달린 눈곱을 비벼내며 출근했다가 충혈된 눈알을 끔뻑대며 퇴근했다.
다행히도 회사는 그 지저분한 길가에서 살짝 옆으로 빠지는 골목길에 있었다. 그곳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길이어서, 나는 골목길로 빠지는 순간부터는 발걸음을 늦추고 너털너털 걷곤 하였다. 골목길에 늘어선 낮고 작은 주택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대부분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지만, 담장 밖으로 늘어진 나뭇잎이나 그곳을 감고 도는 담쟁이들마저 가둬 두진 못했다. 첫 출근길은 봄이 오는 즈음이었다. 담장 위로 우뚝 선 목련 나무엔 어느새 흰 봉오리가 올라와 몽실몽실 얹혀있었다.
졸업한 지 일 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마치 끈 떨어진 뒤웅박처럼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운동권의 선배처럼 학교에 남지도 않았고, 공장으로 위장전입을 하지도 못했으며, 시민 단체에 취직할 능력도 없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지자 무엇도 생각하지 못했고 또 하지 않았다. 무기력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내가 취직한 곳은, 아버지가 근무하는 회사의 여러 하청기업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빈둥대는 딸아이가 못내 걱정스러웠던 거였다. 그래서 비록 대기업은 아니지만, 나름 튼실하다는 중소기업으로, 월급을 못 받거나 일이 고되거나 하지 않는, 쉽게 말해서 아버지가 속 끓일 염려가 없는 곳으로 나를 꽂아주셨던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낙하산’이었다.
비록 요식에 불과했겠지만, 나는 이력서를 들고 면접도 봤다. 나를 면접한 사람은 ‘이사’라는 직책을 달고 있는 6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예리한 총기는 보이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콧수염을 더듬으며 어흠, 어흠, 무슨 망해버린 양반가의 서자인 양 행동하던 이사는, 내가 입사한 지 삼 개월쯤 됐을 때, 사장이 내던진 두툼한 파일에 머리통을 정통으로 맞고 퇴사했다. 권위와 위엄을 가장 귀하게 여기던 ‘이사’는, “니 월급을 누가 주는데 일을 이따위로 하냐!”는 사장의 일갈에 짐을 쌌다. “다들 잘 지내고, 그동안 고마웠어. 나는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와서 말야. 아쉽게 됐네.”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직원을 향해 믿기지 않는 작별 인사를 하면서, 그는 회사 밖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내가 맡은 일은 ‘사보’를 제작하는 거였다. 함께 할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사보를 기획, 취재, 제작, 홍보하는 일 모두를 내가 혼자!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게 뭐 하자는 건지,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뭘 어쩌라는 건지, 자문자답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회사의 첫 한 달은 그렇게 지나갔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됐다. 아버지의 취업 요청은, 사장에게는 부당하지만 피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게다. 매달 월급을 줘야하는 입장에서 쓸모없는 직원을 어쩔 수 없이 고용해야 했으니, 아마도 속이 쓰렸을 거였다. 그러니 내가 사보를 만들든 뭉개든 팔아먹든 사장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어쩌다 사무실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사장은 내 눈을 피하거나 못 본 척 지나쳤다. 아, 딱 한 번 이렇게 물었다. “할 만 한가?” 전혀 할 만 하지 않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사장은 처음부터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듯 훌쩍, 가던 길을 가버렸으니까. 혼자 놀다 심심해지면 그만두겠지, 아마도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다.
그런데 사장은 그렇다치고 직원들마저 나를 유령 취급하는 것 당혹스런 일이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내 책상 위엔 그 흔한 인쇄물도 하나 놓여 있지 않았다. 텅 빈 책상에서 나는 할 일이 없어 빈둥대다 졸았다. 점심시간에도 외톨이였다. 여직원들은 모두 도시락을 싸 왔다. 엄마에게 부탁해서 나도 도시락을 준비했으나, 그녀들은 마지못해 그 자리를 허용했을 뿐이었다. 밥을 먹는 내내 그들은 잔인할 만큼 내게 무관심했다.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미친 척 내가 말을 걸면 그들은 간신히 대답했고, 곧 입을 다물었다.
<니들 나한테 단체로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니? 대체 이게 사람한테 할 짓이니?> 회사에 출근하면, 나는 아무도 들여다 봐주지 않는 일을 열심히 했는데, 바로 저런 질문을 마구 종이에 갈겨대는 일이었다. 얼핏 보면 뭔가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였을 테지만, 내가 종이 위에 끄적인 것은, 욕설과 원망과 그리고 상상을 버무린 시나리오 제작이었다. 나중에는, 차라리 아무나 붙들고 시비를 걸어볼까, 아무나 들이박고 멋지게 사표를 던져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훗날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기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삭막한 사막의 한 가운데서 미숙이를 친구로 사귀게 된 건, 내 생의 몇 안 되는 기적 같은 행운였다.
나는 자판기 커피가 가득 올려진 쟁반을 들고 있었고, 미숙이는 사무실 문을 열고 막 나오던 참이었다. 우리가 부딪힌 것이 누구 탓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커피가 모두 쏟아졌다는 것이고 우리가 입고 있던 유니폼이 온통 커피로 물들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함께 뒷수습을 했다. 쏟아진 커피의 잔해를 치우고 복도를 걸레질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당혹과 위기의 순간에서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감춰진 본성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순간은 인간관계에서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법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어쩐 일인지 그 일이 벌어진 이후, 미숙과 나는 급격히 친해졌다.
미숙이는 여상을 졸업했고 입사한 지 오 년이나 지났으며, 회사에서 인기가 많은 사원이었다. 그녀와 내가 걸어온 삶은 많이 달랐다. 내가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그녀는 사무실 여직원이 됐고, 내가 캠퍼스나 길거리에서 설익은 노동 해방을 떠드는 동안 그녀는 토끼 눈알로 앉아 컴퓨터 액정을 보며 서류를 작성했다. 내가 얼치기 운동권으로 대학 4년을 마감했을 때, 그녀는 자판 위로 손가락이 날아다니는 타자 기술을 획득하고 있었다.
미숙이를 단짝 친구로 사귀게 된 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회사생활이 시작된다는 걸 의미했다. 직원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농담을 던지고 심지어 친근감을 과시는 사람들도 생겼다. 놀라운 변화였다. 그들이 보여줬던 지난날들의 푸대접은 좀 억울했지만, 그들의 리그에 나를 끼워주는 손길에 나는 감읍했다. 드디어 나도 조직원의 일부가 된 것이었다. 모가지에 쇠줄이 걸고 질질 끌려가듯 출근했던 생활은 끝이 났다. 아침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고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아침 공기가 그렇게나 신선하단 걸,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느끼고 있었다.
살다 보니 그런 순간이 있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순간들. 그것은 행운일 수도 있고 끔찍한 고통일 수도 있겠지만, 생이란 게 그런 거였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을 통과하며 가슴에 주름을 새겨넣는 것, 그게 바로 생이었다. 미숙이는 뜬금없는 행운으로 내 생에 뛰어들었고,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굵직한 주름으로 가슴에 새겨 넣었다.
사보를 제작하는 데 미숙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미숙이는 회사의 장기 근무자를 나에게 몇 명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서 회사에 관해 정보를 얻었고, 여러 부서를 취재하며 직원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사보를 제작해냈다. 잉크 냄새가 가시지 않은 사보가 도착했을 때, 나는 갓 구운 빵보다 구수한 냄새를 맡았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직원들은 신기하다는 듯 사보를 펼쳐보며 즐거워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이 한껏 포장된 사진과 글들, 직원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들, 그리고 함께했던 단체 사진 속 얼굴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모습이었다. 고맙다거나 고생했다거나 커피 한 잔 사겠다거나 하는, 격려와 기쁨의 인사가 쏟아졌다. 사장도 흐뭇한 듯했다. 외근을 나갈 때면 사장의 한쪽 겨드랑이에 사보가 끼워져 있었다.
해야 할 일도 해냈고 여직원들과의 사이도 돈독했다. 회사생활은 어느새 숨 쉬는 듯 익숙한 일상이 돼 버렸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만 반복하면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어떨까, 나는 언제부턴가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입사한 후, 어느새 사계절이 지나갔고 두 번째 봄이 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언덕길 때문인지도 몰랐다. 회사가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언덕길이 시작됐다. 출근길에 올려다보면, 언덕길은 제법 길게 이어지다가 불쑥 오른쪽으로 꺾여 있었다. 출근할 때마다 나는 언덕길을 올라가 오른쪽 길을 힐끗대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나 허겁지겁 당도하는 출근길에서 언덕길을 올라갈 여유는 없었다. 몇 번인가 미숙에게 함께 올라가 보자고 제안을 했지만, 그러자고 미숙도 대답했지만, 점심을 먹고 나면 늘 자투리 시간만 남았으므로 산책할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언덕길 너머에는 그저 그런 주택가가 계속될 작은 골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그곳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시퍼러둥둥하니 살아 있을 것 같았다. 스무 살 중반, 아직은 앳된 청춘이었다. 세찬 바람이 목깃을 파고들던 어느 출근길에 나는 생각했다. ‘한번 가볼까. 가보지 못한 길, 어쩌면 내 목을 조를지도 모를 길, 그렇지만 볼모로 잡히지 않을 길로 말이야.’ 그러자 첫사랑을 마주하던 어느 순간처럼, 나는 가슴이 설렜다.
그러나 그날은 언덕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건으로 불쑥 다가왔다. 토요일 점심 식사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여직원들은 고픈 배를 참았다가 퇴근하면서 함께 떡볶이나 라면을 사 먹었지만, 남자들은 달랐다. 주로 짜장면이나 짬뽕을 사무실로 배달해 먹었다. 토요일은 형식적인 출근이었지만, 그날따라 일이 많았다. 그녀 순정이는 여직원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이제 갓 여상을 졸업했다고 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됐는데 순정이는 유독 바빠 보였다. 그런데 그녀의 담당과장이 그녀를 불렀던 것이었다. “저기. 여기 짜장면 그릇 좀 치워줘.” 과장 주변의 책상 위에는 짜장면 그릇이 즐비했고, 선혈 아니, 짜장이 낭자했다. 그릇뿐 아니라 나무젓가락이며 숟가락까지, 마치 한바탕 잔치라도 끝낸 모습이었다. 내가 왜 그때 그런 행동을 했을까, 훗날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의협심 같기도 했고 어설픈 치기 같기도 했고, 아니면 그 전부인 듯도, 아닌 듯도 했다. 아무려나 나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내 심장이 쿵쾅댔고 손은 덜덜 떨렸다. 그리고 입에선 이런 말이 쏟아져 나왔다.
“자기가 먹은 걸 자기가 치워야 한단 건, 세 살 먹은 애들도 압니다.”
사무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수십 개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싶을 때였다. 과장이 사자처럼 포효했다.
“뭐야? 니가 왜 나서! 누가 너더러 치우랬어?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일하던 순정이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언니, 나 괜찮아. 내가 할게.” 그러나 거기서 가오를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나도 큰 소리를 냈다. “이거 놔!”
남자 직원까지 우르르 몰려와 짜장면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에이, 씨발!” 과장은 욕설을 하며 사무실을 나가 버렸고, 그제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웠고 창피하기도 했다. 그때 미숙이가 나를 끌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들과 함께 열심히 짜장 그릇을 치우고 어딘가 있을 과장을 찾아가 사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잘못을 빌 타이밍을 놓쳤고, 일은 이미 벌어졌으므로, 나는 딱히 잘못한 건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는 주말 내내 다가올 월요일을 걱정했다. 생각해보면 도발적이고 어설프고 아둔한 반란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같은 순간이 온다 해도 내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부당한 것에 눈 감는 건, 내가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른 척 지나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나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스스로 몰매를 맞아야 했고, 오랜 시간을 너덜한 가슴으로 버텨야 했다. 그랬다. 그게 내 스무 살의 성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배워서 익숙해지는 게 아니었으므로, 그것을 떨쳐낼 방법도 나는 알지 못했다. 뒷감당을 하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도발했고 두려움에 떨며 후회했고 다시 또 반항했다. 스물의 청춘은 그렇게 지나갔다.
월요일 아침, 나는 사표를 작성했다. 사장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더 좋은 직장에 가길 바란다면서 토닥여줬다. 아마도 내색은 안 했지만, 그는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했을 터였다. 미숙이는 과장에게 사과하고 그냥 회사에 있자며 제안했지만, 결국 나를 잡지 못한단 걸 그녀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하염없이 서운해했다. 나도 너처럼 회사를 그만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매달 받는 월급이 엄마와 동생의 생계였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사표를 쓸 수 있는 내가, 치기와 도발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사람인지 나는 그때 어렴풋이 짐작했다.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길고 진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울었던가, 그랬다. 꽤 슬프게 울었다. 그러나 그건 이별 탓이 아니라 술기운 탓이었다.
짐을 챙겨 회사를 나오던 날, 회사 앞 주차장에는 크고 굵은 목련이 뚜욱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봄이 오는 대낮의 풍경을 거닐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찬란한 슬픔’에 겨워 그만 울음보가 터질 것 같았다. 유치하고 품행이 ‘방종’했던 회사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언덕길을 올라가진 않았다. 그 길을 오르지 않아도 이제 나는 새로운 세상의 첫길에 섰으니까 말이다. 일 년 뒤 나는 학원 강사가 되었고, 인생은 여전히 막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