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앤 더머, 언니와 형부>

by 변희영


언니가 우리 집에 또 왔다. 조만간 우리 동네로 이사 오니,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자주 들르는 것이다. 이번엔 형부와 동행이다.

“처제 얼굴 좋아졌네!” 형부가 인사말을 했다.

“응? 얼굴 좋아졌단 게 무슨 뜻예요?”

뭔가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혹시 예뻐졌단 뜻인가 싶어 내가 물었다. 우리 형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데,

“얼굴이 풍선 같네. 몸이 안 좋아서 부은 거가?” 이런다.

오랜만에 만난 처제한테 인사말치고는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아무리 내가 살이 붙었어도 그렇지 꼭 저렇게 대놓고 말한다 나는 그만 빈정이 상해서 마침 부엌에서 나오는 언니를 보며, “형부 마누라는 완전 만월이거등! ”했다. 언니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뭐 만 원 달라고?”헛소리를 하는데, 정말이지 하나도 안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처제야. 솔직히 니 언니는 예쁘잖냐. 우리 회사에서 니 언니 이쁘다고 소문이 파다하다.” 형부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가 거기서 뭐라고 해봤자, 형부는 팔불출이며 언니는 사오정인데, 저 둘의 치명적 헛소리를 어찌 당하랴 싶었던 탓이었다.

그런데 형부가 참외를 사 왔다며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지난번에도 참외를 세 봉지나 사오더니 이번에도 또 참외를 사 왔다. 비싼 참외는 왜 자꾸 사오냐고, 요즘 참외는 맛도 별로던데, 그냥 빈손으로 오면 어때서 그러냐고 내가 한마디 했다. “그래애? 참외가 맛이 없어? 그럼 딴 걸로 바꿀까? 근데 아까 봉다리 개봉했는데?” 언니가 울상을 지으며 형부를 쳐다봤다. “아니야, 바꾸긴 뭘 바꿔. 앞으로 안 사오면 되지.” 나는 정말이지 올 때마다 과일이며 고기를 잔뜩 사 들고 오는 언니 부부에게, 앞으로는 우리 집에 편안히 오가라는 의미로 했던 말이었다. 게다가 언니 말마따나 참외의 봉다리를 이미 열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언니 말을 들은 형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다시 묶어서 환불하면 된다. 가져와봐라.” 내가 괜찮다고 다시 묶으면 어떡하냐고 둘을 말렸지만, 언니와 형부의 ‘참외 봉다리 묶기’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묶음 안 되고 주둥이 안 딴 거랑 똑같이 묶어야지. 그래그래. 그렇지, 아니, 아니라고! 놔 둬봐라!” “그러게 내가 참외 사지 말랬지? 어휴, 이게 뭔 난리야.” 언니와 형부는 기어코 말다툼이다. 하도 시끄럽게 소란을 떠니까 방에 있던 엄마가 무슨 큰일 난 줄 알았다며 거실로 나왔다. 엄마가 “뭘 그걸 환불한다고 그러니, 그냥 냅둬라. 그거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장사하는 사람 생각도 해야지.”하고 좋게 타일렀다. 그러니까 갑자기 부부가 합심해서 말하기를, “아니, 쟤(나)가 맛없다고 당장 환불하라고 그랬어!”하면서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데, 함께 자란 형제고 뭐고 핏줄이고 뭐고, 가족이고 뭐고, 세상에 소중한 건 아무것도 없구나,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슬퍼져서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어제 언니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마치고는 느닷없이 우리 집으로 들이닥쳤다. 형부는 물론 언니가 키우는 강아지까지 함께였다. ‘미니핀’이라는 종자의 언니네 강아지는 어찌나 살이 불어났는지, 오 년 사이 흑염소로 변신해 있었다. 가뜩이나 새까만 연탄을 닮은 강아지가 십구 킬로그램이나 되는 비만이 되니, 이건 도저히 강아지라고 봐줄 수가 없다. 나도 강아지를 키우지만, 무슨 수를 쓰면 강아지를 흑염소로 변신시키는지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다. ‘미니핀’은 무슨 ‘미니핀’이냐, 딱 ‘피그핀’이네. 말하고 싶지만, 가뜩이나 강아지의 비만을 고심하는 언니가 상처받을까 싶어, 나는 입 밖으로 쏟아지는 말을 간신히 참아냈다. 허긴 저건 ‘피그’라고 할 수도 없다. ‘피그’는 귀엽기라도 하고 또 그나마 핑크빛이잖은가. 저 연탄색의 비만 강아지는 ‘흑염소’라 하는 게 딱 맞다.

“또또! 또또!”

언니는 끊임없이 흑염소, 아니 강아지를 불렀다. ‘또또’는 흑염소, 아니 강아지의 이름이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가 자꾸만 ‘또똥’으로 들렸다. 그래서 언니에게 ‘변’씨 성만으로 모자라서 개 이름도 ‘똥’씨냐고 투덜댔다.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노려봤는데, 그것은 어디서 감히 영험한 신전에 쌍욕을 하냔 듯한 표정이었다.


김치볶음밥을 차렸다. 고생한 언니 부부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형부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밥공기를 세 번이나 비웠고 수시로 반찬을 더 달라 요구했다. 형부는 홀로, 우리 가족 삼 인분의 밥을 본인의 입에 밀어 넣었다. 밥이 들어가는 속도가 숨 쉬는 속도보다 빨랐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춘단 말이 그토록 무색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끄어억!” 밥을 세 공기나 먹고 난 형부가 트림을 크게 뿜어냈다. 그리고 이제야 눈에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듯, 포만감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처제야. 니 아구찜 좋아하지? 조만간 먹으러 가자. 내 사줄게.“

김칫국물이 묻은 형부의 입술은 참기름과 범벅돼 번들댔다. 나는 아구찜보다 형부의 아구만 눈에 들어온단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도 예의에 어긋나는 말이었다. 언니는 한 숟갈도 먹지 않고 또똥이만 안고 있었다. 미신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언니는, 이사한 날엔 집에서 밥을 지어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삿짐이 들어가기 전날, 안방에 미리 밥솥을 들여놨다고 했다. 원래 이사 간 첫날에는 집에 가서 무슨 솥에다가 무슨 쌀로 밥을 해 먹어야 한다며 언니는 결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냐니까 그래야 잘 산다고 했다.

“뭐래, 그게 말이야, 방구야.‘ 내가 비웃었다.

"처제야. 저런 게 미신 홀릭이다."

홀, 하는 형부 입에서 밥알이 뿜어져 나왔다. 마침 언니의 팔에서 내려온 또똥이가 꼬리를 흔들며 떨어진 밥알을 핥아먹었다. 그걸 본 언니가 ”또똥! 니가 거지야?”하며 노여워했고, 미니핀을 빙자한 흑염소 또똥이는 꼬리를 말아 넣고 식탁 밑으로 숨었다.

언니네 가족이 오면 늘 이런 식이다. 일단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형부는 경상도 사투리를 격하게 사용하는데 목소리마저 우렁차서 몇 마디 내뱉는 것만으로 좌중을 압도하곤 한다. 이게 뭔 천둥 치는 소리야. 하고 주위를 살피면 어김없이 형부가 사방으로 침을 튀기며 일장 연설 중이다. 성량으로 분위기를 압도할 능력이 되니, 모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형부는 맘만 먹으면, 자신의 의지나 뜻을 관철하기에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형부의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처음 몇 마디엔 다들 귀 기울이게 되지만, 세 마디를 넘어가면 대부분이 고개를 갸웃대다가, 마침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형부의 사투리를 인내하지 못하고 귀를 닫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무조건 동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댓거리를 할 수도 없는 거였다. 그래서 다른 가족들은 그저 각자가 하던 일을 열심히 하는 척, 그래서 못 들은 척하느라 늘 골치가 아팠다. 그러면 약간 무색해진 형부는 잠잠해진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제일 만만한 내게 말하는 것이다.

“처제야. 니 아구찜 좋아하제?”


좀 전에도 혼자서 쌀 반 포대를 입 안에 밀어 넣은 게 미안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또 아구찜 타령을 했던 것이다. 착한 나는 또 형부를 생각하는 마음에, “그래, 가자. 형부. 어디 아구찜 잘하는 데 알아요?” 하고 묻는다. 그러면 언제나 그렇듯이 언니가 형부를 잡아끈다.

“아구찜 같은 소리하고 있네. 얼른 일어나. 우리 또또 힘들어. 빨리 집엘 가야 한다구!”

“아니, 왜? 내가 처제랑 아구찜 먹으려는데...”

형부는 자신의 권위가 땅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걸 견딜 수 없다는 듯 볼멘 목소리로 항의해보지만, 어느새 목소리 크기가 절반쯤 꺾였다. 그리고는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하긴 했냐는 표정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입을 닫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언니는 물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서 가서 밥솥에 밥을 해야 한다며 언니가 흑염소를 안았다. 그제서야 올챙이처럼 부른 배를 서서히 문지르며 형부가 말했다.

"처제, 그럼 오늘은 가고, 앞으로 내 맨날 여기 밥 먹으러 올게!"

"언제든 오세요. 형부. 절대 저는 찾지 말고."

나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하냐는 표정으로 대꾸해 준다. 매일 우리 집에 오겠다니, 쌀독에서 줄줄줄 쌀 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고마워. 처제 ”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형부가 사람 좋게 웃었다. 언니도 만족스럽다는 듯이 “또똥~”하며 흑염소를 쓰다듬었다. 흑염소, 아니 미니핀은 짧은 꼬리를 꼬리꼬리하게 흔들어댔다. 한 컷에 들어온 그들 셋 표정이 가관이다. 이들 가족이 어서 돌아가주길, 아까부터 나는 간절한 마음이다.

신발을 신다 말고 언니가 돌아서서 아파트 같은 현관에 미친 여자가 산다고 말했다. 미친 여자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던 여자의 머리털을 죄다 뜯어놨다고, 머리털을 뜯긴 여자가 112에 신고하고, 경찰차가 달려오고 아파트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단다.

“왜 머리털을 뜯었대? 그냥? 모르는 사람을?”

“응. 그랬대.”

“어머. 그럼 어떡해?”

“뭘 어떡해? 피해 다녀야지. 어휴, 근데 무서워서 어쩌냐? 우리 또똥이~?"

언니가 흑염소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흑염소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언니 품속으로 파고 들어가 제 머리통을 부비적댔다.

도대체 미친 여자랑 또똥이랑 무슨 관련이 있을까 나는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언니가 미친 여자 얘기를 할 계제는 아닌 것 같았지만, 역시 나는 입을 다물었다. 흑염소를 안고 있는 언니가 너무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언니는 디스크가 안 좋았다. 나는 두 개의 사람과 한 개의 흑염소를 밀치듯 내보내고서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우연히 언니 부부를 만났다. 형부는 며칠 전에 우리 남편이 타던(한때 열심히 주행했으나, 언제부턴가 소박당하고는 먼지가 삼십 센티는 쌓인) 자전거를 빌려 갔었다. 나는 인사말로, ”형부. 자전거는 탈만 했어요?“ 하고 물었다. 형부는 조용한 마트에서 예의 그 풍성한 성량으로 대답했다.

”처제야, 내가 그 자전거 타고 사타구니가 아파 죽는 줄 알았다.“

”헉.. 사타...“

나는 주변 사람을 살피면서도, 형부가 민망해 할까봐 웃어줬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이 사타.. 아니, 사태를 어찌 모면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부 그, 자전거 바지 있잖아. 엉덩이 보호해주는 거, 그거 입어야죠.“

그러자 울 형부, 뜬금없이 팔 자 걸음으로 엉거주춤 걷다 말고 하는 말이,

”글게 그거 입어야지 사타구니가 안 아플텐데. 하루종일 여 사타구니가 너무 아파서...“ 하는 것이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우리 옆을 씨익 웃으며 지나갔다. 나는 정말이지 창피하고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나까지 도매급으로 넘어가서 형부와 함께 ’사타구니 족‘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사타구니 아니, 바구니라도 뒤집어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언니. 형부 자전거 바지 하나 사 줘. 그리고 형부한테 좀 조용히 말하라고 해봐.“

내가 언니 옆으로 바투 붙어서 속삭였다.

”저 짠돌이가 돈 아깝다고 그 옷을 사겠냐?“

언니는 무슨 씨도 안 먹힐 소리를 하냐는 듯 말하더니, 형부를 향해 좀 조용히 하라고 인상을 썼다. 허긴 그건 그랬다. 우리 형부가 보통 짠돌이어야 말이지.


형부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고 당분간은 계속 안정적인 직장에 다닐 것이 틀림없는데, 경제 관념은 낼모레 퇴직할 사람처럼 늘 불안하고 위태로워서 온통 절약 정신으로 무장이 된 사람이다. 무조건 아껴야 하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셔야 한다. 웬만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철저한 자린고비 정신이다. 직장 생활하는 수십 년간, 형부는 (길거리에서든 지하철에서든)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번도 뽑아 먹은 적이 없다. 회사에 가면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밥도 마찬가지다. 회사 구내식당에서만 밥을 먹는다. 식당 밥이 맛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식당 밥? 그거 짬밥이지. 생각만해도 물린다 물려!“ 우리 형부가 늘 하는 말이다. 그래도 돈을 쓰면 안 되니까, 본인 돈으로 회사 밖에서 외식하는 일은 절대 없다. 형부가 제일 좋아하는 건 물론, 공짜밥이다. 누군가 공짜밥을 산다고 하면 체할 때까지 먹는다. 언제 또 공짜로 밥을 먹을지 모르니 기회가 왔을 때 무조건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쑤셔 넣은 밥은 늘 탈을 일으킨다.


언젠가는 공짜밥을 배 터지게 먹어대고 지하철을 탔는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고. 그날은 또 술까지 얻어먹어서 위장이 단단히 탈이 난 모양이었다. 형부는 지하철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비닐봉지(마침 주머니 안에 비닐봉지가 있었다. 사실 형부는 가방이나 주머니 안에 비닐봉지를 쑤셔 넣고 다닌다.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거나 혹여 뭔가 챙겨올 일이 있으면 아주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다.)를 들고 고개를 틀어박고 토하기 시작했다. 좋다고 신나게 과식했던 공짜밥은 끝도 없이 입 밖으로 배출됐다. 한 시간여 걸리는 탑승 시간 동안 형부는 쭈그리고 앉아 토악질만 했다. 결국엔 다리가 저려서 털썩 주저앉아서 토했다고 형부는 고백했다.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토하다 보니 기운이 다 빠져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형부는 목적지에서 두 정거장쯤 더 지나친 후에야 간신히 지하철에서 내렸다. 들고 있던 비닐봉지엔 형부의 위장을 역류한 음식물이 터질 듯 가득했다. 다행히 비닐봉지가 넘치기 전에 형부는 역사를 빠져나왔다고 했다. 자린고비의 최후는, 며칠간의 병원비에 약값 그리고 덤으로 얹어진 복통이었다


그런 걸 보면, 우리 형부는 재벌까진 못 됐어도 수십억의 자산쯤은 모아놨어야 하건만, 집 한 채 말고 딱히 재산이 없다.(고 언니 부부는 말했다.) 형부 말에 의하면, 주식투자로 모아둔 돈을 다 날렸기 때문이다. 철저한 절약 정신으로 총각 시절에 남들보다 빨리 종잣돈을 만들었던 형부는, 주식에 투자했다가 딱 한 번 이득을 본 후, ‘그래, 한번 제대로 걸어보자 인생 뭐 있나?’하며 통 크게 베팅했다가 제대로 말아먹었다고 했다.


자세한 사정은 나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모아둔 돈을 주식으로 날린 후, 형부는 크게 좌절했다. 돈 모으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쪼잔한 인간‘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모았던 돈이었다.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형부는 다르게 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통 크고 호탕한 인간이라는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월급을 받으면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기 바빴다. 밥도 사고 술도 사고 조카들 용돈도 주고, 마구 탕진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언니를 만났다. 형부는 결혼을 하고 싶었고, 그러자니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짠돌이가 됐다. 한 번 해봤던 일이라 두 번째는 쉬웠다. 아니 더욱 극심한 짠돌이로 환골탈태했다.


그런 인생사를 가진 형부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짠돌이가, 집에 있는 수많은 바지를 놔두고 자전거용 바지를 따로 구입할 리는 만무했다. 가만히 보니 형부는 면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면서 아프다는 사타구니와 사투를 벌일 생각인 것 같다. 마트 안에서 형부는 계속 어기적대며 걸었다. 사람들이 형부를 보며 힐끗댔다. 아무래도 사타구니 타령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그들 곁에 머무를 자신이 없었다. 급한 일이 생겼다며 먼저 집에 가보겠노라했다. ”응, 처제. 내 곧 밥 먹으러 갈게.“ 형부가 갈 지자로 어기적 걸음을 옮기며 인사했다.


오늘 또 언니가 찾아왔다. 며칠 전에 보낸 카톡에 반응이 없길래, ’뭔 일 있나? 한번 전화해 봐야지...‘하던 중이었는데 형부와 함께 우리 집으로 불쑥 찾아온 것이다.

”또똥이가 당뇨래.흑.“

언니는 얼굴이 달덩이처럼 부풀어 있었는데, 하도 울어서 그런 거라고 형부가 대신 말해줬다.

”어머.. 어쩌다가?“ 내가 물었다.

언니는 그것 참 올바른 질문이라는 듯 최선을 다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또또가 미친 듯이 물을 먹는 거야. 너무 먹으니까 이상하더라고. 그래서 병원엘 데려갔더니, 의사 말이, 얼핏 보기엔 너무 너무 건강해 뵌다고 하는 거지. 허긴 코도 촉촉하고 털이 워낙 번드르르 기름진데다가 살집도 좀 있잖아. 우리 또또가.“

”살집은 개뿔, 그런 걸 살집이라고 하냐? 살이 디룩디룩한 게 완전 비만이지. 무슨 흑염소 같...“

나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형부가 되지도 않는 윙크를 하면서 나에게 말을 멈추라는 눈짓을 했기 때문이다.

”처제야. 니 언니 밥도 안 먹고 맨날 울었다.“

형부는 또다시 눈을 이상하게 뒤틀며 내게 윙크 같은 행위를 했다. 형부 얼굴이 찌그러진 인형처럼 괴기스럽게 변했다.

”응, 그랬구나... 그래서 어쨌는데?“ 나는 매우 안타까운 표정을, 애써 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다기 보다는 형부의 윙크질이 너무나 고약해서 얼른 형부의 그 짓을 멈추게 하고 싶었던 탓이었다.

”또또한테 건강해 보인다고 자꾸 의사가 그러기에, ’“아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 하면서 내가 우겨서 혈액검사 했거든. 그랬더니, 아, 글쎄 당뇨 수치가 오백이 나온 거야. 길어야 이 년 살 수 있다잖아. 그 의사 말이.

“오모. 세상에나! 근데 오백이란 게 높은 수치인 거야?”

당뇨 수치를 알 리 없는 내가 이렇게 물어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이런 무식한 사람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또똥이와 언니의 당뇨 투쟁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또똥이에게 언니는 직접 인슐린 주사를 맞히기 시작했고, 당뇨 사료를 따로 준비했으며, 현미밥(현미를 잘 빻아서 만든)을 지어서 먹이기 시작했단다. 혈당계까지 샀는데 또똥이가 하도 몸부림을 쳐서 도저히 피를 뽑는 건 못하겠더라나.

“게다가 니 형부는 돈 많이 들어간다고, 저 애물단지를 어쩌냐고 매일 걱정이지...” 언니가 이번엔 형부를 노려보며 말했다. 형부가 뭔가 말대꾸를 하려다 말고 언니 어깨를 토닥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알았다. 알았다. 내 안 그럴게.”

언니는 또 뭔가가 울컥하는지 눈시울이 붉어 오는데, 아무래도 이들 부부의 얘기는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언제까지 이 무용담을 들어야 하나, 나는 사뭇 아득해졌다.

“응. 우리 또또 말이지? 인슐린 맞히고, 다음 날 병원 갔더니 수치가 183으로 떨어졌어. 그리고 며칠 뒤 다시 갔더니 수치가 다시 78로 떨어진 거야. 다른 개들은 현미밥을 절대 안 먹는다는데, 우리 또또는 주는 대로 다 처먹고 또 달라고 그러더니, 효과가 있었나봐. 내가 처음엔 얘를 안락사를 시켜야 하나 싶어서, 그걸 어떻게... 얼마나 절망했던지... 흑”

언니가 휴지를 뽑더니 킁!하고 코를 푸니까, 형부는 크리넥스를 통째로 언니 앞에 갖다주며, 안쓰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덤앤더머도 아니고 어쩜 이다지도 죽이 잘 맞는 부부가 있을까. 나는 새삼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젠 얼마나 살 수 있대?”

나는 불안했다. 또똥이가 시한부 인생이 되면, 언니는 얼굴에 달덩이 두 개를 붙인 듯 부풀어 오를 것이고, 형부는 또 그 끔찍한 윙크질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환하게 웃었다.

“더 살 건가봐.”

뭐라는 거야... 나는 잔뜩 긴장했던 어깨에 힘이 다 빠지고 뼛속까지 흐물해지는 기분였다.

“어휴, 깜짝이야. 괜히 긴장했네. 아, 그니까 그 개새끼 운동을 시키라고 좀!” 내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처제야. 또똥이는 델코 나가면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안 움직인다. 갸 한번 들어봐라. 어찌나 무거운지 아나? 어제도 내가 좀 안고 다녔더니, 팔이 아파서 밤새 끙끙 앓았다.”

형부는 언니 대변인답게 열정적으로 변명하는데, 내가 보기엔 어찌나 처량한 표정인지,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옛말 하나도 그르지 않다는 걸 알겠다.

한참 동안 또똥 당뇨 투쟁기를 설파하던 언니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건, 또똥이의 밥시간이 됐기 때문이었다.

“이제 밥 주러 가봐야 해.”하며 일어서는 언니 눈 밑에 다크써클이 한가득이었다. 아침 8시면 언니 코앞에 앉아 밥 달라고 흐응,흐응 울어대는 또똥이 때문에, 늦잠을 잘 수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언니는 불면증이 심해서 새벽 늦게야 간신히 잠이 드는데, 그나마 잠이 든 시간에 또똥이가 언니를 깨워댄다는 것이다. 형부는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언니를 부축했다. 그리고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언니가 들으면 큰일 날 것처럼 예의 그 윙크질을 하면서 말이다.

“처제야 내가 이렇게 고단하게 산다.”

그날 밤 나는, 저 부부가 정신줄 잡긴 고사하고 목숨줄이라도 부지하려면 또똥이, 그 미니핀을 빙자한 비만견이 반드시 당뇨를 이겨내야 하리라고,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울 형부 얘기는 그냥 제대로 시트콤이다. 그러나 멀쩡히 직장 생활 잘하는 형부를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순 없다. 그래서 가끔 어디 구덩이라도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발악이라도 해야 하나, 나는 속이 답답하다.

언니 집엘 갔던 것은 모과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식탁이며 테이블 위에 아이 머리통만한 모과가 쟁반 가득 담겨 있었던 거다. 형부는 나에게 모과향을 맡아보라며 모과를 들이 밀었다. 은은했다. 조금 더 익어야 제대로 향이 나올 것 같았다. 형부는 그게 아니다. 벌써 다 익었다. 하면서 자신의 모과 따기 모험담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걸 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고, 아무리 나무를 흔들어도 안 떨어져서 젖 먹던 힘까지 다 썼는데, 갑자기 두어 개가 투투툭 떨어지더니 지나가던 사람 발밑에 떨어졌다고, 그 사람이 이게 웬 떡이냐며 주워가는 걸 차마 막지는 못 했다고, 나중엔 나무를 타고 올라갔는데, 어떤 아줌마가 위험하다며 당장 내려오라고 소리를 질러서 내려왔다고, 아줌마가 간 걸 확인하고 다시 나무 털기를 시도했다고, 형부는 내가 결코 궁금 안 한 얘기를 가래떡 뽑듯 줄줄이 뽑아냈다.

“내가 처제 줄라꼬 어제부터 챙긴 기다. 차 안에 둬둬라. 응?”하고 건네는데, 모과 두 알이다. 부엌 복도 쪽에 바구니 하나 가득 든 모과를 내 두 눈으로 분명히 봤건만, 두 알이 뭐냐. 두 알이.

“아, 형부! 모과를 저렇게 쌓아두고 요게 뭐야. 어휴. 치사해서 안 가져가!”

내가 일어나서 집에 가려니까 형부가 버선발로 뛰어나오더니,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저기 쌓인 거는 모과청 만들어서 우리 처제 주려고 한 거라며, 형부를 뭘로 보냐며, 내가 한때 기마이 좀 썼던 쏴나이라며, 그러면서 어떤 커피를 타줄까, 블랙? 믹스?“ 한다. 내가 그래도 기분이 안 풀려 앉아있었더니, 옆에 있던 언니는, 흑염소 또똥이만 어루만지며, “또또야. 저 성질 드러운 애한테 가서 물어라. 물어!” 이러면서 좋다고 웃는데, 나는 그만 멀미가 나서 커피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역시 언니와 형부는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며칠 뒤에 언니는 모과청을 가지고 가라며 전화를 했다. 도착해보니 세 병이나 담아놨다. 모과차를 너무도 좋아하는 나는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모과주를 담갔단다. 형부는 몸이 안 좋아서 술 마시면 큰일 나니까 냉큼 와서 가져가란다. 세상에나! 도착해서 보니 모과주를 항아리만한 통에 가득 담갔다. 일 년 이상은 지나야 먹을 수 있다고 뚜껑도 열지 말고 냅둬야 한다고 형부가 당부했다. 집에 오니 모과주 통이 너무 커서 보관할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신발장 앞에 고이 모셔두었다. 요즘에 신발을 신고 벗을 때마다 모과주 통을 보며 나는 흐뭇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함께 자란 형제며 핏줄이며 가족이며 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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