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의 역사 11] 혁명의 불꽃과 어둠의 심연 전말
#. 아래 내용은 2023년 10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세계사편'의 서두 부분.
"여러분이 세우는 정책의 첫 번째 원칙은 민중은 이성으로, 민중의 적들은 공포로 이끈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공화국 내외의 적들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공화국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혁명 정부는 전제정에 항거하는 자유의 독재입니다. 언제까지 독재자들의 분노는 정의로, 민중의 정의는 야만이나 반란으로 불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로베스피에르 국민공회 연설 中
서양 근대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손꼽히는 것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다. 왕실과 성직자, 귀족 등 기득권 세력의 억압과 불평등이라는 구체제의 모순 속에서 허덕이던 제3신분 평민들, 즉 '부르주아들'(상공업자, 금융업자, 법률가, 의사, 문필가 등)과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고일어나 구체제의 모순을 타파한 대사건이었다. 왕권은 신으로부터 왔다는 왕권신수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한 사회 및 국가의 성립은 평등하고 이성적인 개인들 간의 계약에서 비롯됐다는 해당 이론은 혁명의 이념적 기초였고, 이의 바탕 위에서 봉건제 폐지안 및 '인권 선언' 등 매우 선진적인 모습이 도출됐다. 혁명의 여파로 프랑스 국가체제는 기존의 절대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으며, 주변 유럽 국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이 미치면서 각종 전쟁과 시민 혁명이 촉발됐다. 아울러 프랑스 대혁명은 사실상 평민들이 국왕의 목숨을 앗아간 최초의 사건이기도 했다. 이전에는 국왕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고 축출을 한 주동자들이 주로 권세가 높은 귀족이나 다른 왕족이었다. 설령 국왕이 반란으로 축출된다 하더라도, 이후에 형사법을 적용받은 전례도 없었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 때는 이 모든 것들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국왕이었던 '루이 16세'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평민 세력에 의해 온갖 모욕을 당한 후 폐위됐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나가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본편의 주인공인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이 거대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명석한 두뇌와 확고한 신념을 기반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프랑스 급진파의 거두로 성장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 공화정, 보통선거 등과 관련한 신념을 그 어떠한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갔다. (현재 프랑스 공화국의 슬로건인 '자유, 평등, 박애'는 로베스피에르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를 통해 구체제의 모든 유산을 청산하고 완전히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실제로 권력을 잡은 후 민첩한 조치로 프랑스의 대내외적인 혼란을 진정시킬 때만 해도, 그가 바라는 이상향을 향한 전국가적 행진이 힘차게 전개될 것처럼 보였다. 일견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온전히 대변하는 인물로도 비쳤다.
하지만 빛과 어둠이 크게 엇갈렸다. 이상향에 대한 집착과 반동에 대한 불안감이 지대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공포정치'라는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혁명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반혁명분자는 물론 혁명성이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의 제물이 됐다. 프랑스 시민들은 혁명을 통해 국가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말미암아 부정적인 혁명의 극단성이 표출됐고, 시민들은 전례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무리수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행한 주체에게도 안 좋은 결과를 내고 만다. 공포정치의 후과는 로베스피에르 본인에게 돌아갔다. 주변에 수많은 정적들이 양산됨에 따라 그는 별안간 헤어 나올 수 없는 난관에 처했다. 결국 다른 사람을 단두대로 보내기만 했던 로베스피에르는 이번에는 본인이 단두대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비참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다. (빛과 어둠이라는 양면성이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고려시대 '광종'이 연상되기도 했다.) 비록 안 좋은 결말로 끝나긴 했지만, 로베스피에르가 가졌던 정치적 신념과 추구했던 이상향까지 싸잡아 매도할 순 없다. 그가 지향했던 것들은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면서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요구되는 역사탐구 자세이기도 하다. 전환기적인 대사건, '프랑스 대혁명'과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