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의 역사 12] 나치 돌격대 일거에 숙청한 친위쿠데타 전말
#. 아래 내용은 2023년 10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세계사편'의 서두 부분.
"인간은 영원히 강철의 법칙에 따라 반역을 파괴한다. 누군가 '왜 정상적인 재판을 열어 판결을 내리지 않았느냐'라고 우리를 비난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순간 나는 독일 민족의 운명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고, 이에 따라 나는 독일 민족의 최고 재판관이었노라고 말이다. 나는 이 반역죄의 주동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우리 내면의 우물을 오염시킨 종양을 빨간 살이 보일 때까지 잘라내고 소독하라고 명했다. 그 누구라도 우리 국민들의 존재를 위태롭게 만들고도 벌을 받지 않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구라도 국가를 향해 한방 먹이려고 손을 쳐들었다가는, 더욱 확실한 죽음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히틀러 의회 연설 中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인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해 최악의 독재자 반열에 오르내리는 '아돌프 히틀러'. 그는 처음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던 미술 학도였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 등 거센 파고를 겪으며 한 작은 정당(나치당)의 정치인으로 변모했다. 머지않아 국민들의 마음까지 얻어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이것이 단기간에 가능했던 것은 히틀러의 탁월한 '연설' 능력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해 어려움에 허덕이던 독일 국민들의 부정적인 감정에 적극적으로 감응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민들의 패배감, 불안, 분노의 감정을 이용하며 유대인과 서방국가 등 공격 대상을 끊임없이 설정했다. 다음으로 표적에 대응해 국민들의 총체적인 단결을 강조하며 지지세를 대폭 끌어올렸다. 1929년에 불어닥친 '세계 경제 대공황'은 이 같은 히틀러의 전략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후 계속된 선거 승리를 통해 나치당은 의회 1당으로 자리매김했고, 히틀러는 총리 자리를 거머쥐었다. 나아가 과감한 움직임을 통해 입법부의 권한까지 탈취하면서 '1당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불행한 역사적 사건과 국민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자란 한 '괴물'의 탄생이었다.
다만 히틀러가 권력의 최정점, 즉 '총통'의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이 있었다. 바로 극단적으로 좌편향된 '돌격대'였다. 한때 히틀러는 돌격대와 한 몸이었고, 사실상 돌격대의 도움이 없었다면 권력을 잡는 게 불가능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과거 친구였던 '에른스트 룀'의 영향 하에 있는) 돌격대는 급진적인 좌파 노선을 내세우며 히틀러를 곤경에 빠뜨렸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1934년 히틀러의 친위쿠데타, 일명 '장검의 밤' 사건이 발생했다. 과거의 친분과 앞으로의 활용 가능성이 충분함에도, 히틀러와 친위대는 절대권력을 향한 집념 하나로 매우 신속하게 룀과 돌격대를 숙청했다. 일각에서 명백한 불법 행위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다수 국민들은 히틀러와 친위대의 행동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며 힘을 실어줬다.
이를 계기로 히틀러는 '절대권력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국내를 완전히 장악한 그는 이제 국외로 시선을 돌렸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게르만 민족의 영토 확장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며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우리는 본편을 통해 돌격대 숙청 전말과 더불어 분노의 집단화와 전체주의, 마녀사냥식 폭력의 발현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목도한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가장 악한 본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이와 같은 비극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잘못된 유산은 현재 전 세계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신인종주의' 출현 등 여전히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게 함은 물론, 추후 광기에 찬 전쟁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던 중대한 단초. 히틀러의 '장검의 밤' 사건과 집권 과정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