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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유일 체제의 태동...김일성의 '파벌 숙청'

[숙청의 역사 15] 북한 절대권력 확립 전말

by 최경식
김일성.

#. 아래 내용은 2023년 10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세계사편'의 서두 부분.


"독초는 적시에 제거하고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한다. 지난 시기에 우리 인민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어 살이 찐 종파분자, 착취분자,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를 말려야 하고, 두 번 다시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만약 관리소 안에서 계급의 원수들이 번번이 폭동을 일으킨다면, 강력한 군대를 동원해서 모조리 쓸어버려라." -김일성 교시 中


북한은 권력자 1인을 중심으로 한 '유일적 통치체제'를 갖춘 국가다. 더욱이 3대째 권력을 세습하는 왕조적 특성도 갖췄다. 그 누구도 '신격화된' 김 씨 일가의 권력과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 세계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매우 기형적인 체제이지만, (너무 오래 목도하다 보니) 이는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북한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김일성이 절대권력자의 반열에 올라 지금과 같은 체제를 구축하기까지 수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이러한 난관들은 자칫 김일성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숙청'이라는 폭력적 수단을 효과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전,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김일성은 '보천보 전투'와 소련 지역으로의 이동을 계기로 극적인 운명의 전환을 겪는다. 야심이 강했던 김일성에게 비상의 날개가 달렸던 것이다. 해방 이후, 김일성은 소련의 후원 하에 북한 지역으로 넘어와 빠르게 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이전까지 박헌영 세력이 한반도에서 가장 큰 공산주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미군정의 탄압과 김일성의 용의주도함 등으로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북한에서 어느 정도 권력 장악에 성공한 김일성은 박헌영과 결탁해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김일성이 권력의 정점으로 나아가는 핵심 과정, 즉 '파벌 숙청'을 단행하는 첫 번째 계기가 됐다. 전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김일성은 책임 전가와 정적 제거를 목표로 박헌영과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세력을 전격적으로 숙청했다. 이를 통해 남침 실패라는 위기에서 벗어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소련의 흐루시초프 등장 등 국제 정세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김일성을 겨냥한 심대한 도전이 뒤따랐다. 그는 이번에도 숙청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 방어에 성공했고 이후에 나타난 또 다른 도전도 같은 방식으로 막아냈다. 이에 따라 북한 정계에서 김일성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는 최종적으로 절대권력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때 만약 역으로 김일성이 다른 파벌들에 의해 숙청됐다면 어땠을까. 폐쇄적인 성향의 국가가 나타날 순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매우 기형적인 체제는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리고 지금처럼 북한 주민들이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거나 틈만 나면 한반도에 핵전쟁의 암운이 드리우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그 당시 북한의 파벌 투쟁은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수령 유일 체제의 태동, 김일성의 절대 권력을 확립시킨 '파벌 숙청' 전말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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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식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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