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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히 용서를 말하는가..드골의 '민족반역자 숙청'

[숙청의 역사 14] 민족정기를 바로세운 준엄한 심판 전말

by 최경식
다운로드.jpg 샤를르 드골.

#. 아래 내용은 2023년 10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세계사편'의 서두 부분.


"우리들이 과거에 겪은 모든 불행은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숙청을 거부한데서부터 왔다. 오늘날 우리가 또다시 나치에 협력한 반역자들의 머리를 강타하길 주저한다면, 프랑스의 미래에 엄청난 위험이 닥칠 것이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 공화국은 절대로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프랑스문학 신문 사설 中


개인적으로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아쉬운 역사 중의 하나가 바로 '친일파 청산 실패'라고 생각한다. 무려 36년 간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친일파들이 있었지만, 해방 이후 제대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친일파들을 청산하기 위해 설립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강제해산을 당했다. 민족반역자들은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된 나라에서도 떵떵거리며 살았고 대를 이어 권력 및 재산을 세습했다. 비록 북한과 냉전이라는 특수한 요인이 있었지만 너무도 참담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이승만 정권은 북한과 공산주의의 팽창을 의식해 친일 관료 물갈이보다는 온존을 선택했다.)


이 같은 역사에 대한 아픔이 클수록 우리는 프랑스의 '민족반역자 숙청'을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는 4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나치독일에 점령당했다. 그럼에도 해방 후 매우 가혹하게 민족반역자들을 숙청했다. 친일파들을 옹호한 이승만과 달리, 당시 프랑스의 최고지도자였던 '샤를르 드골'은 고위급 인사들은 물론 가벼운 죄를 범한 나치협력자들까지도 모두 숙청 대상에 올렸다. 한국의 경우와는 180도 다른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후대에 이와 같은 민족반역자들이 다시는 나올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때를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정의로움을 말하고 부정한 것을 거부하는 기풍이 생겼다. 훗날 프랑스가 또다시 외세에 지배를 당하더라도 쉽사리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는 자들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올바른 '역사적 경험'의 힘이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 같은 경험의 부재로 인해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이로부터 파생된 사회적 갈등이 현재진행형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대한 역사의 분수령에서, 마땅히 해야 할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뼈아픈 결과는 오늘날까지 국가와 민족에게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우리 사회에 심대한 교훈을 던지는 드골의 '민족반역자 숙청' 전말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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