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의 역사 13] 소련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었던 공포정치 전말
#. 아래 내용은 2023년 10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세계사편'의 서두 부분.
"자본주의의 포위가 지속되는 한, 소련 국경 너머에서 파견된 파괴자와 교란 분자, 간첩, 테러리스트가 존재하리라는 점을 기억하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토론이라는 옛 방법이 아니라 '분쇄와 절멸'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구사해야만 합니다." -1927년 스탈린 연설 中
현재 러시아의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올해로 23년째 집권하고 있다. 푸틴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좀처럼 등장하지 못하면서, 그의 장기 집권과 독재는 아무렇지 않게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차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과거 푸틴을 능가하는 독재자가 있었다. 바로 제2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자 소비에트 연방 총리를 역임한 '이오시프 스탈린'이다. 그는 무려 31년을 집권하며 공포정치를 행한 유일무이한 독재자였다. 다만 스탈린은 '볼셰비키 혁명'(러시아 혁명) 때나 소련이 건국된 직후에는 차기 지도자로서 크게 주목을 받았던 인물은 아니었다. 천재적인 레프 트로츠키 등 쟁쟁한 인물들에 비해 스탈린은 상대적으로 가려진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조용하지만 치밀하게 권력의 최정점으로 나아갔고 마침내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소련의 최고 지도자가 됐다. 초창기에 스탈린은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따라서 그의 다음 행보가 광기 어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친구였던 '세르게이 키로프'가 암살된 직후부터 스탈린은 악마적인 본색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반혁명분자', '인민의 적' 색출 등을 명분으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숙청'을 단행했다. 숙청의 칼날은 고위 공산당원에서부터 평범한 국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뻗어나갔다. 소련 사회 전체가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었으며 스탈린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었다.
대숙청을 이야기할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스탈린의 '기괴한 성품'이다. 그는 타인의 행동에 대한 병적인 의심과 더불어 타인의 의도에 대한 병적인 불신을 갖고 있었다. 현대 의학에서는 이를 '편집성 인격장애'라고 일컫는다. 혁명의 시기에 스탈린은 강도, 살인, 테러 등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때를 계기로 내면에 의심과 불신, 폭력성 등 부정적인 성품이 확고히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권좌에 올라선 이후에는 편집성 인격장애에 이어 암살과 축출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까지 더해졌다. 이로 인해 숙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대숙청의 '후과'(後果)는 매우 혹독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사라져 국가의 성장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최대, 최악의 전쟁으로 평가를 받는 '독소전쟁'에서, 소련은 유능한 군 지휘관들의 부재로 처참한 인적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스탈린의 시대에는 대숙청의 진상이 미화되거나 은폐됐다. 그가 사망한 후 '니키타 흐루시초프'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그동안 소련 국민들의 친근한 벗이자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스탈린은 일순간 잔혹한 독재자로 격하됐다. 다만 오늘날 스탈린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상술했듯 한편에서는 잔혹한 독재자로 평가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훌륭한 경제 및 전시 지도자로 평가한다. 이는 현재 취약한 러시아 상황에 대한 아쉬움과 과거 소련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음울한 역설의 한 단면인 것이다. 1930년대, 소련 국민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었던 대공포의 시대를 만들어낸 스탈린의 '대숙청'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