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의 역사 17] CIA 정치 공작과 칠레 군부 인권탄압 전말
#. 아래 내용은 2023년 10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세계사편'의 서두 부분.
"민주주의란, 때로는 피로 목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꼼짝 마라, 내 허락 없이는 낙엽 하나도 떨어질 수 없다... 군정 시절에 사라진 사람들은 칠레의 전체 인구와 비교해 볼 때 아무것도 아니다." -피노체트 연설 취합 中
남북으로 길게 뻗은 특이한 지형을 갖고 있는 남아메리카 국가 '칠레'. 현재 비교적 잘 살고 평온해 보이는 이 국가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쓰디쓴 역사적 아픔을 겪었다. 1970년대,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인물이 혜성처럼 등장해 칠레를 사회주의 국가로 변모시키는 실험을 단행했다. 당시 칠레 국민들은 아옌데에게서 조국과 국민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한 정치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우파들의 집요한 정치공작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그와 그의 정부를 지지했다. 하지만 아옌데 정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CIA(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가 쿠데타를 감행해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후 출범한 피노체트 정부는 민주인사 및 일반 국민들을 강하게 통제하거나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단행했다. 칠레 국민들은 무려 17년 동안 정치, 사회적 암흑기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본편을 작업하면서 강렬하게 다가온 몇 가지 장면들이 있었다. 우선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재였다. 오래전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아온 (필자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은 자연스레 미국에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기 쉽다. 적어도 필자는 미국이 비교적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편에서만큼은 이 같은 생각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마치 '지킬 앤 하이드'처럼 느껴질 정도로 미국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목도했다. 그들은 각종 극악한 정치공작들을 동원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정부를 끊임없이 흔들어댔다. 급기야 군부 쿠데타라는 폭력까지 끌어들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무수한 인권 탄압을 자행해도 그저 뒷짐 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당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 즉 '냉전'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정도(程度)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행동이었다.
다음으로 '아옌데'라는 한 정치인의 존재였다. 그는 매우 영특했고 획기적이었으며 진심을 갖춘 정치인이었다. 아옌데가 추진했던 각종 사회보장제도 등 개혁 정책들은 현재에 더욱 각광을 받는, 시대를 앞서나간 묘안들이었다. 이는 비단 이성적인 사고를 넘어 칠레 국민들을 위하는 진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욱이 쿠데타 군에 포위돼 죽음을 앞둔 그 순간, 아옌데가 행한 마지막 연설은 개인적으로 큰 감동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았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치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끝으로 '국내 역사'와의 비교였다. 아옌데와 피노체트를 보면서 자연스레 '단종과 수양대군'을 떠올렸다. 단종은 정통성을 갖춘 왕이었지만,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겼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당초 왕위를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수양대군은 결국 그 자리를 무력으로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당대에 보면 단종은 패배자요, 수양대군은 승리자였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승리자와 패배자는 180도 달라진다. 현재 단종은 연민과 사랑의 대상이 됐지만 수양대군은 잔혹한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혀있다. 이는 아옌데와 피노체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당대에 패배했던 아옌데는 현재 칠레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됐고, 당대에 승리했던 피노체트는 현재 칠레 국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됐다. 경제 성장이라는 업적이 피노체트에게 있었음에도 국민들에게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 결국 단종과 수양대군의 경우처럼, 칠레 국민들 역시 업적보다는 올바른 도리인 '정의'에 입각해 아옌데와 피노체트, 그 시대상을 평가한 것이다. 이처럼 극적인 역사적 평가의 단초가 된 아옌데의 개혁 정치와 군부 쿠데타, '민주세력 숙청'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