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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전역의 사지화...폴 포트의 '킬링필드'

[숙청의 역사 18] 극좌적 망상에 기반한 대량학살 전말

by 최경식
다운로드.jpg 폴 포트.

#. 아래 내용은 2023년 10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세계사편'의 서두 부분.


"우리는 그동안의 투쟁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할 것이다. 과거로부터 모든 것을 단절하고 전통은 사라질 것이다. 화폐와 경제체제가 사라져 국가가 국민들의 모든 것을 돌보는 사회를 건설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캄보디아 건설을 위해 수도에 있던 300만의 국민들을 농촌으로 분산시켰다. 이제 농촌은 혁명의 전초 기지가 될 것이며, 인민들은 앞으로 사라지게 될 여러 도시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1975년 폴 포트 연설 中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독재자들이 수없이 존재했지만, 개인적으로 캄보디아의 '폴 포트'만큼 극단적인 폭정과 학살을 저지른 독재자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원래 유순한 학생이었던 폴 포트는 유학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접한 후 충실한 공산주의자로 변모했다. 그는 가슴 한편에 나름의 국가관을 설계한 후 조국으로 돌아왔고 '크메르 루주'라는 좌익 무장단체를 조직해 반정부 투쟁을 벌이며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과정에서 일반적인 범위를 벗어나 극좌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방식이 포트에 내재하게 됐다.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가 친미 정부인 론 놀 정부를 무너뜨린 후 캄보디아 전역을 손에 넣었을 때, 국민들은 내전의 아픔을 씻어내고 국가의 밝은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미 극좌화, 폭력화된 폴 포트 치하의 캄보디아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지옥' 그 자체가 됐다.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가 내세운 것은 평등, 농업, 집단 등이었다. 이를 위해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 극강의 노동을 하게 만들었고, 모든 국민들의 생활을 '자로 잰 듯' 평준화했다. 자율과 인권을 철저히 무시한 해당 정책들의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국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끔찍한 기근과 하향 평준화였다. 더욱이 매우 심각한 수준의 극좌적 망상에 사로잡혔던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는 '지식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자국민들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밀며 대량 학살했다. 노약자와 어린아이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폴 포트의 하수인들은 마치 학살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고 그 결과 인구의 4분의 1이 소멸됐다. 4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캄보디아 전역이 죽음의 땅이 되는 '사지화'(死地化), 즉 '킬링필드'가 됐다.


폴 포트의 사례는 무지하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지도자가 '신념'에만 강하게 경도되면 어떠한 국가적 비극이 초래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신병에 가까울 정도로 정치적 신념에 집착했던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는 악화되는 국내 상황 및 국민들의 고통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들 신념의 현실화만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이를 위해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여과 없이 총동원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지옥도에 머물게 했다. 이른바 '근대의 실패', '이성의 실패'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 보인다. 또한 공산주의의 내재적 폭력성과 경직성이 최대치로 발현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극좌적 망상에 매몰돼 캄보디아 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폴 포트.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학살자가 주도한 '킬링필드' 전말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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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식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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